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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기자들이 취재 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10일 오후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부산 당원과의 만남에서 셀카를 찍고 있다. 2024.1.10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10일 오후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부산 당원과의 만남에서 셀카를 찍고 있다. 2024.1.10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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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에서 롯데 야구를 봤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0일 부산을 방문해, 2020년 자신이 부산에 좌천됐을 때를 회상하며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 위원장의 이 발언은 당시에도 논란이 됐고, 지금은 다른 형태의 논란이 진행 중입니다. 우선 현재 진행 중인 논란은 이 질문으로부터 시작합니다.

- '사직에서 롯데 야구를 봤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정답 후보를 2개로 압축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사직 구장을 방문해서 롯데 야구를 봤다는 것. 두 번째는 부산 동래구 사직동의 어느 곳(가령 호프집 등)에서 롯데 야구를 봤다는 것. "사직에서 롯데 야구를 봤다"는 말은 해석의 여지가 이렇게 나뉠 수 있습니다.

야구장이 있는 부산 사직의 상징성을 생각해 보면 답이 정해진 질문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시점에선 언론사의 정정 보도가 달린 문제이기도 합니다. 한동훈 위원장이 지난 19일 해당 발언을 비판한 <오마이뉴스> 등 언론사들을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했기 때문입니다.

"사직구장에서 야구를 봤다" 보도가 심각한 명예 훼손?
 
ⓒ 최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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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위원장이 문제 삼은 <오마이뉴스> 보도는 지난 13일 자 기사('사직구장 봉다리 응원 사진에 더 난감해진 한동훈' https://omn.kr/272aj)입니다. 한 위원장이 부산 좌천됐을 당시인 2020년에는 '코로나 무관중 방침'이 한창이던 때여서 사직구장 관람이 불가능했고, 국민의힘이 공개한 '한 위원장 사직구장 봉다리 사진'도 2008년 사진이라는 점을 지적한 보도였습니다.

한 위원장 측은 언론중재위에 낸 신청서를 통해 "한동훈 위원장의 실제 발언은 사직에서 롯데야구를 봤다는 것으로 사직구장에서 야구를 봤다고 발언한 바 없어 이를 바로잡고자 한다"고 적시돼 있습니다.

"사직에서 롯데야구를 봤다"는 발언을 "사직구장에서 야구 관람했다"고 쓴 부제를 문제 삼은 것입니다. 한 위원장 측은 그러면서 해당 보도로 인해 "심각하게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었다"라고도 주장했습니다. 이에 따라 조만간 열릴 언론중재위에서는 "사직에서 롯데야구를 봤다"는 말에 대한 의미론적 해석도 다투게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사직에서 롯데야구를 봤다'는 말을 듣고, '사직구장에서 롯데야구를 본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혹시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주변에 몇몇 부산 출신에게도 물어봤습니다. 그들의 답변도 같았습니다. '사직에서 롯데야구 봤다'는 건 '사직구장에서 롯데야구를 봤다'는 뜻이라는 겁니다. 사직동에서 야구장이 아닌 야구를 관람하는 어떤 상징적 장소가 있는 것도 아니랍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지난 2020년 4월 10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프로야구 롯데자이언츠 자체 청백전이 야간경기로 치러지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지난 2020년 4월 10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프로야구 롯데자이언츠 자체 청백전이 야간경기로 치러지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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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친지들이 모두 부산에 살고 있는 한 언론학자는 "부산에서 사직구장이 갖는 상징성으로 인해, 사직이라는 지명은 '부산에 있는 야구장'을 뜻하는 고유명사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라면서 "사직에서 야구 봤다는 것은 부산 사람은 물론 야구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사직구장에서 야구를 봤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언어가 일반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지는 의미론적 관점에서 본다면, '사직에서 야구를 봤다'는 건 '사직구장에서 야구를 봤다'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상식입니다. 

'사직 발언'이 논란이 될 당시, 국민의힘이 한 위원장이 야구장에서 '봉다리'를 메고 찍은 사진을 공개한 것도, 같은 관점에서 발언을 받아들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를 전제로 한 <오마이뉴스> 보도 역시, 허위 사실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물론 한 위원장 측의 제소가 단순히 자신의 발언을 바로잡으려는 의도일 수도 있습니다. 분명 한 위원장의 발언은 "사직에서 롯데야구를 봤다"는 것이었고, 오마이뉴스 기사의 부제는 "사직구장에서 야구 봤다"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단순히 독자 이해를 돕기 위해 '구장'을 덧붙인 게 정정이 필요한 허위보도이며 얼마나 심각한 명예 훼손 사유가 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한동훈 위원장은 정치인입니다. 특히 집권여당의 차기 대권 후보로 거론되는 유력 정치인입니다. 정치인은 공적 지위를 가진 공인이고, 때에 따라서는 숱한 비판과 논란도 감수해야 합니다.

많은 정치인은 그런 시련을 발판으로 성장하고, 큰 정치인으로 커나갑니다. "본인 부고 기사 빼고는 모든 기사가 좋다"는 말은 정치권에선 진리와도 같은 말입니다. 그래서 정치인들이 본인 비판 기사에 대해 법적 대응을 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입니다. 

그러나 '사직 논란'을 두고 언론에 대응하는 한 위원장의 모습은 큰 정치인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그릇 큰 정치인이 아니라, 상대방의 작은 흠집조차 용납 않는 평검사의 옹졸한 오기마저 느껴집니다. 이는 법무부 장관 시절, 자신을 취재하던 1년차 기자를 '스토킹'으로 고소하고 맹비난하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관련기사 : "취재를 범죄로 모는 한동훈"... 경찰 수사 받는 '더탐사'의 일침 https://omn.kr/21hfk)

국민이 한 위원장에게 바라는 모습이 이런 형태의 언론 대응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한 위원장 취임 한 달이 넘어서고 있습니다. 쓸데없는 논쟁에 시간을 소비하기보다는 진정 국민을 위한 큰 정치를 고민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법의 극치는 불의의 극치다'(summum ius summa iniuria)라는 라틴어 문구도 되새겨보시길 부탁드립니다.   

태그:#한동훈, #사직발언, #사직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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