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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 학생회관 앞 게시판. 총학생회 후보들의 공약이 게재돼 있다.
 2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 학생회관 앞 게시판. 총학생회 후보들의 공약이 게재돼 있다.
ⓒ 박수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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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캠퍼스를 향한 차별·혐오 정서가 연세대 총학생회 선거의 공약으로까지 이어지며 학교 안팎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달 말 치러지는 연세대 신촌캠퍼스(서울) 총학생회 선거에 출마한 'Closer(이윤재 후보, 경제학과 20학번)' 선본과 'Yours(함형진 후보, 신학과 19학번)' 선본은 모두 캠퍼스 간 소속 변경 제도(전과)를 손봐야 한다는 공약을 내놨다.

2007년부터 연세대에서 실시된 소속 변경 제도는 결원이 생긴 정원에 한해 신촌캠과 미래캠(원주캠) 간 학적 이동을 가능케 한 것으로 서류와 면접을 통해 심사가 이루어진다. 소속이 변경되면 석차와 장학금 심사에서 차별받지는 않지만 최우등·우등 졸업은 불가하다. 연세대 외에도 고려대, 건국대 등에서 캠퍼스 간 교류를 위해 소속 변경 제도를 운영중이다. 

'Closer(클로저)' 선본은 미래캠퍼스(원주)에서 신촌캠퍼스로 소속 변경 시 미래캠퍼스에서 받은 성적을 그대로 유지시키지 않아야 하며, 성적 또한 별도로 표기하자고 공약했다.

이들은 정책자료집을 통해 "캠퍼스 간 소속 변경을 한 학생들의 성적이 편입생과 다르게 기존 캠퍼스에서 받은 대로 유지되는 것이 문제"라며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신촌캠퍼스와 미래캠퍼스에서 획득한 성적이 나뉘어 표기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21일 진행된 정책토론회에선 "신촌캠퍼스 학생들이 역차별 받는 상황에서 차별 없는 사회로 가기 위해 고안한 공약"이라고 주장했다. 

'Yours(유어스)' 선본은 아예 캠퍼스 간 소속 변경을 못하도록 하자고 공약했다. 이들은 정책자료집을 통해 "캠퍼스 간 소속 변경 제도가 도입된 이래로 신촌캠퍼스에서 미래캠퍼스로 소속을 변경한 학생이 한 명도 없었고 캠퍼스 간 복수전공을 이용한 신촌캠퍼스 학생도 존재하지 않았다"며 "캠퍼스 간 교류를 장려하는 등의 목적을 상실한 제도로 이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정책토론회를 통해선 "해당 제도 폐지가 오히려 미래캠퍼스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종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공약 발표 후 이어진 온라인 '혐오 발언'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 학생들이 이용하는 커뮤니티 '에브리타임' 갈무리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 학생들이 이용하는 커뮤니티 '에브리타임' 갈무리
ⓒ 에브리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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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공약이 공개되자 신촌캠퍼스 재·졸업생이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는 미래캠퍼스 학생들을 향한 차별 발언이 쏟아졌다.

한 익명의 이용자는 "소변(소속 변경 제도) 폐지는 되어야 하는 게 맞다"면서 "(학교 측이) 원주(미래캠퍼스) 홍보할 때마다 '신촌캠퍼스랑 학사 교류가 있다'고 대놓고 장사하는데 일방적으로 걔네(미래캠퍼스 학생들)가 우리 학교로 넘어오는 게 교류냐"는 글을 올렸다.

댓글엔 "교류 이 XX하는 게 제일 웃기다. 이건 교류가 아니라 그냥 한쪽으로 흐르는 것 아니냐", "이 글 내용 반박하면 원주캠생(미래캠퍼스 학생)이거나 소변생(소속 변경 학생)이다" 등의 내용이 이어졌다. 

지방 캠퍼스를 향한 차별·혐오는 그동안 꾸준히 지적돼왔다. 최근에는 연세대·고려대 간 교류 축제인 '연고전(고연전)'을 전후로도 온라인에서 문제 발언들이 쏟아졌다.

두 학교의 서울 소재 캠퍼스 학생들은 "연고전 와서 사진 찍고 인스타 올리면 네가 정품 되는 것 같지?", "너흰 그냥 짝퉁이야 저능아들", "차별당하는 게 당연하다", "왜 멸시받으면서 꾸역꾸역 기차·버스 타고 서울 와서 고연전 참석하려는 것?" 등의 글을 올리며 지방 캠퍼스 학생들을 힐난했다.

"차별·혐오 부끄럽다... 포퓰리즘 공약"

22일 오전 신촌캠퍼스에서 만난 학생들은 총학생회 후보들의 공약을 살펴보며 복잡한 심경을 내보였다. "포퓰리즘"이라며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문과대학 4학년 A(22)씨는 "미래캠퍼스 학생들 중에서는 신촌캠퍼스 수업을 수강하고 싶은 학생이 분명히 있을 텐데 (총학생회가 기존의 제도를) 막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래캠퍼스를 차별·혐오하는 이들은) 대학에도 계급이 있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일 것"이라며 "자기보다 낮은 계급이라고 생각했던 학교 학생들이 자신들이 다니는 학교에 온다는 것 자체에 불만이 있어 보이는데 부적절한 생각"이라고 꼬집었다.

사회과학대 4학년 B(25)씨도 "총장은 '두 캠퍼스 간의 교류를 활성화하겠다'고 했는데 총학생회장 후보들은 반대되는 공약을 들고 나왔다"며 "소속 변경 제도 선발 기준에 부합한 (미래캠퍼스) 학생들이라면 (신촌캠퍼스에 와서도) 잘할 수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사회과학대를 졸업한 C(26)씨는 "취업이 힘든 이유는 (신촌캠퍼스로 소속을 변경한) 미래캠퍼스 학생들 때문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가 훨씬 큰데, 분노할 대상을 잘못 찾고 있는 것 같다. 학생들이 계속해서 그런 식의 차별·혐오 행태를 보이는 게 졸업생으로서 굉장히 부끄럽다"고 전했다.

공약에 공감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이들 또한 공약의 실현 가능성을 낮게 바라봤다. 

문과대학 4학년 D(24)씨는 "소속 변경 제도를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대한민국 입시 제도 하에서는 좋은 성적을 받아야 좋은 대학교에 갈 수 있고, 교육 수준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얻을 수 있는데 소속 변경 제도는 이에 역행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만 D씨는 "총학생회 후보들의 공약이 실현 가능할 것이라 보지 않는다"며 "소속 변경 제도가 있기 때문에 미래캠퍼스에 대한 수요도 있을 텐데 학교 측이 그 수요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음악대학 4학년 E(23)씨는 "신촌캠퍼스 학생들 입장에서는 미래캠퍼스 학생들이 소속 변경 제도를 통해 신촌캠퍼스 학생으로 졸업한다면 불평등하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이어 "한편으로는 '미래캠퍼스 학생들도 고충이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라며 "두 캠퍼스 간 절충안을 잘 찾아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2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 정문.
 2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 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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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캠퍼스 학생들 "애교심 그대론데 이럴 땐..."

미래캠퍼스 학생들에게선 강한 질타의 목소리가 나왔다. 

정경대학 4학년 F(27)씨는 "소속 변경 제도가 학생들에게 열심히 공부하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며 "신촌캠퍼스 총학생회 선거가 경선이다 보니 한 표라도 더 가져와야 하는 상황이라 학생들이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는 제도를 공약으로 가져온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어 "(혐오·차별 발언은) 실제로 소속 변경을 한 학생들이 얼마나 노력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얘기"라며 "정말 우월한 사람이라면 남을 폄하하기보다는 인정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인문대학을 졸업한 G(26)씨는 "내가 분교를 다닌다는 이유로 부끄러워하거나 애교심이 사라지지 않는데, 이런 차별적인 발언을 들을 때 가끔 그런 적이 있었다"며 "과거 신촌캠퍼스에서 미래캠퍼스 인문대학으로 소속 변경을 한 학생도 있었다. 소속 변경 제도 폐지는 1차원적인 공약"이라고 반박했다.

박고형준 학벌없는사회를위한시민모임 상임활동가는 22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같은 대학인데 어느 캠퍼스인지에 따라서 불합리한 대우를 하는 건 사회 통념에 맞지 않는 차별적 처우"라며 "(현재 후보들이 내세운 공약은) 학생 다수의 권익을 보장하고 교육 공동체를 만들어야 할 학생회 본연의 역할과 거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해당 공약으로) 향후 학생 피해가 가중되거나 학생들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없다면 시민모임이 학내 인권센터 등에 진정을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세대 대학본부 관계자는 "학생들이 내놓은 공약이기 때문에 학교 측의 별도 입장은 없다"라고 밝혔다. 

<오마이뉴스>는 21~22일 연세대 총학생회 후보 양측에 전화, 문자, 공식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취재를 요청했으나 답을 듣지 못했다.

태그:#연세대, #총학생회, #소속변경, #미래캠, #신촌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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