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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오전 전남 영암군 영암읍 한 주택에서 일가족 사망 사건 현장 감식이 이뤄지고 있다.
 지난 16일 오전 전남 영암군 영암읍 한 주택에서 일가족 사망 사건 현장 감식이 이뤄지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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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살해의 책임을 부모나 가족뿐만 아니라 국가로까지 넓혀야 한다."

지난달 발생한 영암 일가족 사망 사건, 인천 부녀 사망 사건에 이어 최근 송파 일가족 사망 사건 등 일가족 사망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이 사건들 대부분은 부모가 자녀를 살해한 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비속살해'로 추정된다.

최아라 광주대 아동학과 교수는 작년 6월 완도 가족 실종 및 사망 사건을 계기로 자녀 살해 문제를 연구해왔다. 그는 26일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자녀 살해 후 극단 선택 사건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모두 사망해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이 종결되는 경우가 많아 통계가 잡히지 않는다"며 "국가 차원에서 통계 시스템을 구축하거나 정확한 실태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가족을 살해해 더 중한 범죄라는 시선보다는 아동의 생명권을 침해했다고 봐야 한다"며 "미국 대다수 주가 아동살해죄를 묻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최 교수와의 주요 일문일답.

"국가가 자녀 책임진다는 믿음 부족... 정확한 실태조사로 대책 마련"  
 
최아라 광주대 아동학과 교수
 최아라 광주대 아동학과 교수
 
- 비속살해 사건이 계속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복합적이지만 가장 큰 이유는 부모가 자녀를 소유물로 생각하는 잘못된 인식이다. 지금까지 일어난 비속살해 사건의 유서나 증언을 보면 '내가 없으면 우리 자식은 살 수 없어', '아이와 함께 가는 게 아이한테도 더 나을 거야'라는 생각들을 일관되게 확인할 수 있다. '자녀를 양육할 책임이 있으니 자녀의 생사권도 나에게 있다'는 왜곡된 사고를 하는 거다.

두 번째로는 자녀가 부모보다 신체적·정신적 힘이 약하기 때문이다. 송파 사건의 자녀는 10대였고, 영암의 경우 성인이긴 하지만 장애가 있었다. 부모가 신체적인 힘을 이용해 자녀를 살해하거나, '자녀 혼자 살아가는 것보다 우리랑 같이 가는 게 낫다'라는 가스라이팅을 하는 경우 살해에 취약해진다.

마지막으로, 국가나 지역사회가 자녀를 책임져줄 것이라는 믿음이 부족해서다.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지 못할 때 국가나 지역 사회가 (양육을) 대신해 줄 거라는 믿음이 있다면 이런 끔찍한 선택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

- 왜 한국 사회는 자녀 혹은 가족을 소유물로 여기는 걸까.

"동양 문화권은 부모와 자녀를 운명공동체로 보는 경향이 있다. '가족은 무엇이든 함께 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부모가 자녀를 살해한 뒤 극단적 선택을 했을 때 '동반 자살'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았다. 반면 서양은 가족 구성원의 독립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자녀 살해와 부모의 극단적 선택을 별개의 것으로 받아들인다.

또 다른 이유는 아동 권리에 대한 교육 부족을 들 수 있다. 아직 우리 사회는 자녀가 부모로부터 독립된 개체라는 인식이나 스스로 생명권을 가진 존재라는 인식이 부족하다. (자녀를) 여전히 보호해야만 하는 취약한 존재라고 보는 게 문제다."

- 이 문제를 가족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최근 이런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 많은 시그널이 있었을 거다. 국가는 그 시그널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하고 적절히 개입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 일례로 영암 사건은 자녀들이 장애인이었는데 복지 서비스를 신청하지 않았다. 국가가 더 적극적으로 이들을 방문하거나 찾아갔다면 좋지 않았을까.

또,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면 현황을 파악해야 하는데, 실태조사나 통계조사가 이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다. 그런데 자녀 살해 후 극단 선택 사건의 경우 피해자와 가해자가 모두 사망해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종결 되는 경우가 많다. 범죄통계에 잡히지 않아 정확한 실태 파악에 어려움이 있다.

해외의 경우 아동 사망 사례를 검토하는 위원회가 있어 실태 파악이나 대책 마련이 용이한 반면, 우리나라는 동반 자살 또는 일가족 사망이라고 단정하고 깊이 있게 접근하지 못했다. 국가 차원의 통계 시스템이나 정확한 실태조사를 마련한다면 더 깊이 있는 원인분석과 대책 마련이 가능하다."

- 우리나라는 자식이 부모를 죽이면 가중처벌하지만, 부모가 자식을 해하면 아동학대 정황만 없으면 일반 살인과 똑같이 5년이상의 징역이다. 비속살해를 현행보다 엄격하게 처벌해야 할까.

"패륜이라는 이유로 가중처벌 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모든 생명은 소중하고, 생명을 앗아가는 살인은 모두 똑같이 처벌되는 게 맞는 것 아닌가? 아동은 발달적으로 취약하기 때문에 성인에게 보호받아야 할 권리가 있는 존재다. 부모가 일차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

따라서, 가족을 살해했으니 더 중한 범죄라고 보기보다는 아동의 생명권을 침해했다는 시선으로 전환이 필요하다. 그러면 아동 살해의 책임을 부모나 가족뿐만 아니라 국가로까지 넓힐 수 있다. 미국 다수의 주가 아동살해죄가 있다. (주마다 기준 연령은 조금씩 다르지만) 18세 미만 아동을 살해할 경우 피해자의 연령을 살펴 가해자 처벌가중요건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 과거에는 '일가족 동반자살'로 표현했는데 지난해 완도 사건을 계기로 '자녀 살해'라고 쓰기도 한다. 

"언론이 사건을 어떤 용어로 명명하는지가 독자들의 인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 사건에 대한 정확한 분석을 통해 신중하게 단어를 선택해야 한다. 동반자살의 경우 모든 가족구성원이 죽음에 동의했음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가해자가 없다. 그러나 자녀 혹은 일가족 살해는 당사자가 죽음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명백한 가해자가 있다. 송파 및 영암 사건의 경우 '일가족 사망'이라고 보도되는데 이런 부분도 더욱 자세한 조사를 통해 명확한 용어로 보도돼야 한다."
 

태그:#비속살해, #존속살해, #일가족 사망, #자녀 살해 후 극단선택, #송파 일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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