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학교 복도.
 학교 복도.
ⓒ unsplash

관련사진보기

 
전직 후 첫 번째 민원이었다. 담임교사 한 분이 학부모 항의 때문에 힘들어한다는 이야기를 학년 부장을 통해 들었다. 해당 교사에게 자초지종을 들었다. 수업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 학부모와 전화 상담을 하면서 대안교육을 언급했는데, 이를 문제 삼는다는 거였다. 자신의 자녀를 이상한 아이 취급한다며 거세게 항의했다는 것.

학부모님께 내교를 요청해 학부모, 담임교사, 교감이 한 자리에 모였다. 담임교사가 대안교육기관으로 보내라는 게 아닌,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은 대안학교를 가는 경우도 있다고 안내한 것임을 분명히 밝혔다. 그럼에도 담임교사가 자신의 자녀에게 편견을 가졌다는 의구심을 거두지 않았다. "학부모께서 오해하셨다면 매우 유감이다"라는 담임교사의 사과에도 학부모는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나는 결단을 내려야겠다고 판단했다. 때로는 단호한 태도가 필요하다. 학부모들 커뮤니티를 통해 교사, 교감, 교장의 평가가 회자되는 점을 활용해야겠다고 판단했다.

"더 이상 합리적 대화가 불가능하네요. 담임 선생님께서 아이에게 특별한 관심과 애정으로 상담하고 적응을 도우려 애쓰는데, 이렇게 담임교사를 불신하면 어떻게 교육이 가능하겠어요? 그냥 돌아가십시오. 담임선생님도 퇴근 시간이 훨씬 지났으니 어서 퇴근하세요."

그 후 한 주가 지나 학부모가 나를 다시 만나고 싶다는 뜻을 담임교사에게 전해왔다. 나는 대안교육의 의미와 유형을 자세하게 설명했고, 담임교사의 말은 아이의 학교 적응을 돕는 여러 가지 방법을 고민한 결과이니 오히려 감사해야 한다는 취지로 이해를 구했다. 다행히 서로의 진의를 이해하고 원만하게 마무리했다.

최근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의 안타까운 부음을 접한 이후 현장 교사들은 학부모의 악성 민원을 이번 사건의 주요 원인으로 인식하고 있다. 교원단체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교권보호 강화'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그 처방은 각기 다르다. 이는 문제의 원인 진단을 달리하기 때문이다. 학교폭력이나 교육활동 침해 행위는 사안마다 그 성격과 맥락이 다르다. 학교의 문화, 학교를 둘러싼 환경 등을 종합해야 상황을 이해할 수 있고 그 맥락이 보인다. 학부모 민원도 마찬가지다. 관계 법령과 매뉴얼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이유다. 

따라서 학부모 민원을 해결할 수 있는 명쾌한 답은 그 누구도 단언할 수 없다. 따라서 내가 소개하는 사례도 참고 사항에 불과할 뿐이다. 그럼에도 용기 내어 사례를 소개하는 이유는 고민을 나누고 지혜를 모으는 과정에 함께하고픈 소박한 연대 의식 때문이다.

나는 도교육청 전문직에서 학교로 전직할 때, 학부모 민원이 많은 학교를 원했다. 마침 그런 학교에 자리가 있어 발령을 받았다. 나의 짧은 첫 부임 인사의 요지는 "선생님들 섬기는 자세로 일하겠다. 어려움은 서로 협력해서 풀어가자"라는 것이었다.

법령과 규정에 발목 잡힌 교사들

교사들은 늘 긴장 상태였고, 모든 사안을 세세한 부분까지 교감에게 확인받아야 결재가 올라온다. 법령과 규정에서 벗어나는지를 살피는 것에 매우 민감했다.

아! 바로 이거였구나. 소문대로 대부분의 교사들이 민원 포비아(공포)에 시달리고 있었다. 민원을 직접 겪지 않은 교사들까지 이심전심으로 민원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민원에 대비하기 위해 완벽한 근거 자료를 갖추는 것이 학교 문화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니 교사들의 행정업무가 늘어날 수밖에. 교사들의 자발성과 창의성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이는 곧 활발한 교육 활동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소문을 확인한 이상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다. 나는 교사들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말씀을 드렸다.

첫째, 규정과 지침을 너무 보수적으로 해석하지 말고 스스로 판단하고 유연하게 하시라.

둘째, 만약 민원이 생겨도 선생님께 책임 묻지 않고 교감과 교장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

셋째, 선생님 개인이 민원을 받으면 혼자 고민하지 말고 교감에게 알려 함께 해결하자.

넷째, 간단한 문의 전화는 직접 응대하되 답변하기 곤란한 내용은 교감에게 전화를 돌려달라.

정당한 건의와 민원의 경계는?

학부모의 건강한 학교 참여는 마땅히 권장해야 한다. 늘 문제는 일부 학부모의 지나친 개입이다. 그렇다면 정당한 건의와 민원의 경계는 무엇일까? 교사가 심리적 부담을 느껴 교육 활동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정당한 건의로 보기 어렵다.

이른바 악성 민원의 유형은 대략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었다.

첫째, 답변이 뻔한 문제다. 즉 학교가 해결하기 어려운 걸 알면서도 학교를 괴롭히기 위한 무리한 요구

둘째, 법령이나 상급 기관의 지침에 명시된 학교장 권한 밖의 요구

셋째, 자기 자녀 이해관계와 직결되는 것으로 자녀의 이익관철을 위한 요구

넷째,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을 때까지 담당 부장, 교감, 교장에 이르기까지 반복하는 요구 등이다.

학부모 민원은 생활지도 과정에서 비롯된 교사의 언행을 문제 삼는 내용, 평가와 관련한 내용, 자기 자녀를 위한 맞춤형 교육(동아리, 방과후교육 등)을 요구하는 내용 등이 주를 이뤘다. 심지어 담임교사를 포함하는 학급별 커뮤니티 공간을 담임 재량에 맡기지 말고 학교 차원에서 강제해 달라는 요구도 있었다(이 요구는 수용하지 않고 담임교사 재량에 맡겼다).
 
ⓒ pixabay

관련사진보기

 
민원 창구를 교감으로 일원화하다

학부모의 민원도, 지역 주민의 민원도 창구를 교감으로 일원화했다.

"선생님들은 민원에 개별적으로 응대하지 말고 저에게 맡겨주세요. 그리고 학생 교육활동에만 전념해 주세요. 선생님들은 학생을 보호할 책무가 있고, 교감과 교장은 교사를 보호할 책무가 있으니 부담 갖지 마세요. 절대 혼자 고민하지 말고 함께 해결해요. 설령 선생님이 실수했을 경우라도 교감이 먼저 사과하면 문제를 쉽게 풀 수 있어요. 우리 같이 노력해요"

교사들은 고맙다는 말과 함께 나를 걱정하는 내용으로 화답했다. 이에 "교육청에서 워낙 많은 민원을 응대한 경험이 있어 민원 내성이 생겼으니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교사들을 안심시켰다.

교육청에 제기한 민원은 담당 장학사가 교감에게 직접 연락하는 시스템이어서 교사에게 알리지 않고 내가 직접 응대했다. 전화 민원이 주를 이뤘는데, 민원인이 화를 내고 언성을 높이는 경우에도 나는 침착함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전화를 끊고 나면 가까운 자리에 앉은 선생님들의 위로를 받곤 했다.

억지 주장을 하는 경우나 자세한 안내를 했음에도 수용하지 않는 경우는 내교를 정중히 요청했다. 내교를 허락하면 일정을 잡아 면담을 했고, 자세한 설명을 듣고 나면 대부분 수긍하고 돌아갔다. 억지 주장을 하는 경우는 단호한 입장을 취했다. 학교가 그동안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도 자세하게 알려주었다.

민원 소통 부재와 왜곡된 정보의 유통 탓

나는 학부모의 건강한 학교 참여가 학부모 민원을 줄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학부모회와 대화 모임을 정례화했다. 첫 모임에서 나는 "우리 학교가 교사들의 기피 학교라는 사실을 알고 계시냐"고 물었고, 학부모들은 금시초문이라는 반응과 함께 그 이유가 뭐냐고 반문했다. "학부모 민원이 많은 학교라는 소문 때문"이라는 나의 답변에 조금은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선생님들이 마음 놓고 교육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학교 문화를 함께 만들어 가자는 부탁을 드렸고 서로 노력하기로 약속했다.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여하는 학부모들은 학교에 대한 정보를 자주 접하지만,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가정통신문을 통해 정보를 얻는 수준이었다. 매월 1회 정례모임을 통해 교육과정 운영과 관련한 세세한 내용까지 공유하고, 학부모들의 건의 사항도 들었다. 모든 학부모님들을 다 만날 수 없으니 대표성을 가진 임원 분들이 다수 학부모의 의견을 수렴해 달라는 당부도 곁들였다. 그 결과 부임 2년 차부터는 학부모 개별 민원이 현저히 감소했다.

학부모들이 건의한 내용은 교직원 회의를 통해 수용 여부를 결정했다. 그리고 반드시 피드백을 해 주었다. 수용이 불가한 내용은 그 이유와 근거를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왜곡된 정보가 유통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경우는 소문의 근원을 밝혀 오해를 풀어주는 노력도 병행했다.

교사 기피 학교에서 교사 선호 학교로

그야말로 지역에서 대표적인 교사 기피 학교였다. 매년 3월 정기인사 때 관내 내신을 통해 전입하는 교사가 단 한 명도 없었다. 학부모 민원에 시달리는 학교라는 게 이유의 전부였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오명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나의 부임 3년 차부터 관내 내신을 통해 전입하는 교사가 부쩍 늘었다. 교사가 근무하고 싶은 학교로 거듭난 것이다.

올해부터는 학부모의 학교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학부모 학교 참여의 날'을 운영하고 있다. 학급별로 날짜를 정해 학생들의 교육활동 참관과 급식 모니터링, 학생들의 안전 도우미 역할도 한다. 이후 담임 교사와 대화 시간, 교장(교감)과의 대화 시간도 마련하고 있다. 희망하는 학부모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지금 현장의 교사들이 한목소리로 갈구하는 것은 구성원 모두가 안전하고 행복한 학교다. 한 선생님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모두의 지혜를 모으자. 이번에는 편 가르기도, 진영 논리도, 정략적 접근도 철저히 배제하자.

위기가 곧 기회라 하지 않았는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교육전문언론<교육언론창>(www.educhang.co.kr)에도 실렸습니다.
*조성범 전 교감은 현재 경기 군포공익상담소장 겸 <교육언론창> 에디터입니다.


태그:#민원 공포
댓글6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