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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바깥으로서의 여행

고산병으로 며칠 고생한 끝에 드디어 히말라야 칸첸중가1) *(하단 설명 참조)를 마주했습니다. 텅 빈 아침, 산정 위 타르초2) *(하단 설명 참조)들만 바람에 펄럭이고 사방이 고요합니다. 도대체 뭘까요? 생명도 없이 차갑게 얼어붙은 저 만년 설산이 왜 이리 사람의 마음을 자꾸만 격양시킬까요. 그리고 이곳이 신성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요.

나는 단순한 답을 얻었습니다. 이곳은 생활이 자리잡지 못할 만큼 척박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복잡다단한 생활 세계의 반대편에 서서 나는 이런 말을 되뇌었습니다. 생활에 지친 자들은 누구라도 산정에 오를 수 있어야 하고, 외로운 산정에 지친 이들은 사람 사는 마을로 내려와야 한다고요. 그리고 그 둘 사이가 넓게 열려있어야 건강한 사회라고 말입니다.

여행이란 어쩌면 내 생활 세계의 반대편인 만년 설산을 찾아가는 길 아닐까 싶습니다. 자신의 일상이 어떤 한계에 이르렀을 때라면 우리는 일상의 바깥 어딘가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길어와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여행이 상품이 된 지는 이미 오래입니다. 관광지들은 별반 다를 것도 없는 차이를 소리 높여 과장합니다. 작은 차이도 상품이 된다는 것은 소비문화의 큰 가르침 아니던가요. 한 장소가 품고 있던 삶의 내용들이 대부분 사라진 관광지에서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길어올 수가 있을까요. 요즘은 생활에 비해 여행이 너무 크게 인플레이션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여행이 거대하게 부풀어서 현지의 삶을 다 집어삼켰는지 유명 관광지에 가보면 방대한 공해처럼 여행의 아우성만 가득합니다.

여행이란 일상을 벗어나 다른 지역의 다양한 자연과 문화를 돌아보는 일입니다. 나의 생활을 벗어나 누군가의 생활 속에서, 두고 온 나의 생활 자리를 다시 돌아보는 소중한 체험이지요. 하지만 현실에서 이런 여행은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만 같습니다. 모처럼 휴가를 떠났다가 별 변별력도 없는 관광지의 난개발에 먹이만 던져주고 오는 꼴이 되기 십상입니다.   
 
전북 임실에 위치한 옥정호 국사봉에 올라 바라본 풍경
 전북 임실에 위치한 옥정호 국사봉에 올라 바라본 풍경
ⓒ 유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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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퍼런스 왕국에 갇힌 여행

남과 다른 나만의 여행을 꿈꾸지만, 그러면서도 여행을 준비할 때 SNS와 유튜브 검색부터 시작하는 건 참 모순적입니다. 끝없는 참고와 참고와 참고. 마치 '최선의 여행'이란 것이 따로 있는 것처럼 열심히 많은 것들을 참고합니다. 이쯤 되면 가히 레퍼런스3) *(하단 설명 참조)의 왕국이라 할 만합니다. 여행뿐인가요. 행복도 꿈도 외부의 기준치를 따라잡기 여념이 없습니다.

하지만 여행의 근간은 오히려 그 반대편이 아닌가 싶습니다. 여행이 소비상품이 아니라 그에 대한 저항이 될 가능성도 그곳에 있지요. 세상에 이미 '아름다운 것'들이라고 이름 붙여진 것들을 찾아가는 것은 여행이 아닙니다. 그런 것들을 모으는 것은 큐레이터의 업무일 겁니다.

여행은 오히려 아직은 알 수 없는 낯선 것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지요. 시스템의 여러 규율 속에서 분열된 나의 감수성을 다시금 모아보는 시간입니다. 이런저런 여행경비를 지불한다지만, 그렇다고 이 새로운 장소를 내가 소비하러 온 것은 아닙니다. 소비라기보다 오히려 조심스레 깃들어야 하는 것이지요. 이미 좋은 것들이 잘 갖춰진 곳으로 그저 쉬러 가고 싶을 만큼 우리의 일상은 피곤하지만, 그 어느 곳도 감히 나의 피로를 쓰레기처럼 버리고 올 곳은 없습니다.

진정한 휴식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지만, 그 바람 자체에 뭔가 의심쩍은 부분이 있습니다. 그 바람에는 나의 이유만 있고, 내 바깥이 하나도 보이지 않지요. 여행지의 난개발을 문제라 여기지만, 그것에 먹이를 던져주는 것은 늘 이렇게 여행자들이고 말이지요.

1982년 제니 홀저(Jenny Holzer)는 뉴욕 타임스퀘어의 대형 전광판에 이런 문장을 전시했습니다. "Protect Me From What I Want." 내가 원하는 것으로부터 나를 지켜달라는 이 묘한 문장은 수많은 이들에게 강인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끝없는 구매 선동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주라는 이 말은 소비주의에 관한 경종일 겁니다. 내가 가진 욕망에 개입된 다양한 권력관계, 정치 그리고 자본의 힘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 말입니다. '하루하루의 생활에서 힘들었던 자신에게 여행을 선물하고 그 여행에서만큼은 자신이 원하는 것들만 하며 시간을 보내고 싶은 욕망'은 어쩌면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즐거움과 편안한 휴식이 있다고 당신을 초대한다면 조심하세요. 어쩌면 그곳은 늪이랍니다. 여행자는 가이드라인을 따라 어떤 장소를 소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여행지를 발굴하는 이들이지요. 구매 선동만 가득한 관광지를 멀리하고 현지인들의 삶을 함께 할 수 있는 곳을 발굴하는 일이야말로 여행의 큰 즐거움입니다. 여행은 나를 위해 떠나지만, 뜻밖에도 내가 원하는 것들을 가장 줄일 때라야 나의 바깥에서 새로운 생기를 얻습니다. 누구나 이 생활의 바깥에 자신이 관여된 자리 하나쯤 마련해둬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려면 자신이 속해있는 생활세계 못지않게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생활의 바깥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잉여의 자리가 아닙니다. 가족과 일이 있는 나의 생활만큼 중요한 자리입니다. 죽음은 삶의 바깥이자 진정한 타자이지만, 죽음이 없다면 삶의 의미를 도대체 가늠할 수가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드러냄이 아닌 숨김의 여행

자신이 속한 생활세계의 바깥을 찾아가는 여행은 그런 의미에서 '드러냄'이 아니고 오히려 '숨김'에 가깝습니다. 세상 가득한 인정투쟁의 소음들로부터 한 걸음 벗어나는 일이라 할 만합니다. 그리고 나의 인정욕구를 줄이는 일이기도 합니다. SNS에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사진을 올리러 떠나는 것이 여행은 아니지요.

차라리 여행은 자신이 몸소 겪은 경험을 소중한 비밀로 품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일입니다. 어차피 여행은 온전히 여행한 자의 몫이랍니다. 그러니 여행자의 우선순위를 따져 정렬될 경험치란 건 따로 없지요. 심지어 여행은 아무것도 아니어도 됩니다. 누군가가 매겨놓은 평점들을 굳이 다 체험해볼 필요는 없는 것이지요. 무슨 무슨 이름이 붙은 길들을 정신없이 완주할 필요도 없는 일입니다.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큰 만족을 누리려고 떠나는 것도 아닙니다. 여행에서마저 성과와 효율성의 강박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별로 다를 것도 없는 이런저런 관광지에서 나를 소비시키기보다는 세월을 두고 정성을 들일 곳을 스스로 발굴하는 것은 여행의 꽤 괜찮은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각자의 만년 설산을 마련해둔다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시간과 애정이 필요합니다. 형식적이고 거친 스토리텔링으로 대충 재단해버려서는 한 장소가 간신히 지켜오는 차이를 알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여행자는 늘 섬세한 마음씨를 품고 있어야 하지요. 섬세하지 못한 마음은 상대와 나에게 늘 상처를 입히는 법입니다.

나의 바깥을 공대하세요. '나'를 줄이면 당신의 환한 바깥이랍니다. 그렇게 당신도 그리고 당신이 찾는 여행지도 오래오래 고운 숨소리를 내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네팔과 인도의 국경에 위치한 히말라야 산맥의 일부분을 이루는 산
2 경전을 적은 오색의 깃발
3 정보를 얻기 위해 찾아본 참고사항

덧붙이는 글 | 글 유성용 여행생활자. 이 글은 참여연대 소식지 <월간참여사회> 2023년 7-8월호에 실립니다. 참여연대 회원가입 02-723-4251


태그:#오버투어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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