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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21일 당시 박근혜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인천 송도에서 열린 삼성바이오로직스 제3공장 기공식에서 발파버튼을 누르고 나서 단상을 내려오고 있다.
 2015년 12월 21일 당시 박근혜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인천 송도에서 열린 삼성바이오로직스 제3공장 기공식에서 발파버튼을 누르고 나서 단상을 내려오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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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매니지먼트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한국 정부가 패소했다. 9900억 원의 손해 배상을 청구했는데 7%만 인정됐다. 그래도 크다. 690억 원에 법무 비용과 이자까지 포함하면 1300억 원을 지급해야 한다. (관련기사: 세금 1300억 헤지펀드에 날릴판... 박근혜·이재용에 구상권 청구할까?  https://omn.kr/24gzp )

이 사건이 왜 중요한가 

-  한국 정부가 삼성전자 이재용 일가의 3세 승계를 도우려고 국민연금을 동원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 표를 던지게 했고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친 사실이 인정됐다.
- 이재용 일가와 제일모직 주주들이 이익을 챙겼고 삼성물산 주주들이 손해를 입었다. 삼성물산 주식을 들고 있던 헤지펀드가 손해 배상을 청구해서 이겼고 그 배상금을 국민들 세금으로 물어줘야 하는 상황이다.
- 한국경제신문은 "사실상 승소"라는 표현을 썼고 한국일보는 "선방했다"고 평가했다.

이 사건의 본질은 이것이다

- 박근혜(당시 대통령)가 문형표(당시 보건복지부 장관)를 시켜 홍완선(당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에게 삼성에 유리한 방향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라고 지시했다.
-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으로 국민연금이 입은 손실은 최대 5865억 원에 이른다(평가하기에 따라 다르다). 분명한 것은 만약 국민연금이 반대 표를 던졌다면 합병이 부결됐을 거란 사실이다.
- 이재용은 합병을 도와준 대가로 박근혜와 최순실에게 433억 원의 뇌물을 건넸다.
- 박근혜는 징역 22년형을 선고 받았지만 사면으로 풀려났고 이재용은 징역 5년을 선고 받았다가 파기 환송심에서 2년6개월로 줄었고 그나마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문형표와 홍완선도 각각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 받았다가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더 깊게 들어가 볼까

- 그때나 지금이나 이재용의 아킬레스건은 삼성전자다. 그룹의 핵심인데 지분이 적다. 2015년 기준으로 이건희와 이재용 지분을 다 합쳐도 4% 밖에 안 됐다.
- 대신 삼성생명과 삼성물산이 삼성전자 지분을 각각 7.2%와 4.1% 확보하고 있었고 제일모직이 삼성생명 지분을 19.3%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재용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을 지배하면 몇 다리 건너 삼성전자를 지배할 수 있는 구조였다.
- 이재용 일가가 보유한 제일모직 지분을 다 더하면 42.2%인데 삼성물산 지분은 1.4% 밖에 안 됐다. 삼성물산이 또 약한 고리였고 그래서 두 회사를 합병하는 게 후계 구도의 핵심이었다. 당연히 이재용 지분이 많은 제일모직 기업 가치를 높게 평가 받는 게 유리한 상황.
- 그래서 내놓은 게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을 1대 0.35로 합병하자는 안이었는데 삼성물산 주주들 입장에서는 펄쩍 뛸 일이었다.
- 실제로 나중에 공개된 국민연금 내부 감사 결과를 보면 적정 비율을 1대 0.64로 잡았다가 하루만에 1대 0.39로 낮춰 잡았고 다시 1대 0.46로 만든 사실이 확인됐다. 3500억 원 이상 손실을 입게 될 거라는 걸 알면서도 삼성물산의 가치를 낮춰잡았고, 이런 계산을 근거로 찬성 표를 던진 것이다.

들통날 걸 몰랐을까

-  엘리엇 등이 합병 비율이 부당하게 산정됐다며 가처분 신청을 내면서 반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엘리엇은 삼성물산 지분 7.1%를 보유하고 있었다.
-  그 사이에 홍완선이 이재용을 여덟 차례 만난 사실이 확인됐다. 투자위원회를 이틀 앞두고 홍완선이 위원 12명 가운데 3명을 교체했고 이들이 모두 찬성표를 던진 사실도 확인됐다.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조직적으로 움직였다는 이야기다.
- 오죽하면 합병 다음날 조선일보가 사설에서 "주식회사 대한민국이 총동원돼 삼성의 후계자 체제 안정을 도와준 셈"이라면서 "삼성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대한민국 전체가 삼성을 위해 뛰어줄 것이라고 낙관해서는 곤란하다"고 지적할 정도였다.
-  너무나도 노골적으로 발가벗고 뛰는 바람에 엘리엇이 소송을 걸면 무조건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사실상의 승소? 선방한 건 맞나

-  정신 승리일 뿐이다. 애초에 엘리엇이 주장한 손해 규모가 지나치게 컸다.
-  엘리엇은 합병 직전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해서 지분을 털고 나갔다. 손실 규모가 100억~700억 원 정도일 거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  엘리엇은 소장에서 7180억 원의 손실을 입었다고 주장했지만 합병 비율을 1.6 대 1로 잡아야 한다는 계산에 근거한 것으로 당시 시장의 평가에서 크게 벗어난 규모였다.
-  엘리엇이 1300억 원을 챙긴다면 손실을 만회하고도 남을 정도라고 할 수 있다.

다시 정리해 보면,
- 대통령까지 나서서 거든 이 빅딜의 결과, 이재용 일가의 삼성물산(제일모직) 지분은 30.4%로 늘어났다. 국민연금이 자체 추산한 적정 비율보다 3%포인트 정도 지분이 늘어났는데 당시 주가로 환산하면 8000억 원에 육박한다.
- 결국 국민연금이 3500억 원 손실을 본 대가로 이재용 일가는 8000억 원을 챙겼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헤지펀드에 1300억 원을 또 국민들 세금으로 물어주게 됐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 다른 헤지펀드가 낸 소송이 하나 더 남아있다. 정확히 같은 내용의 소송이다. 메이슨캐피털매니지먼트는 삼성물산 지분 2.2%를 보유하고 있었다.
- 일반 주주들 손실까지 감안하면 국민들 피해는 1조 원이 넘는다. 

론스타 사건과 무엇이 같고 다른가

- 론스타가 나쁜 놈들인 것과 별개로 한국 정부의 과실이 명확했다. 애초에 외환은행 인수 과정에서 절차적 문제가 있었지만 그걸 승인한 게 한국 정부라 론스타에 문제를 삼긴 어렵다. 론스타가 팔고 나가겠다고 했을 때 먹튀 논란을 의식해 매각 승인을 거부했던 건 명분이 부족했다. 결국 2억1650달러를 배상했다.
- 엘리엇은 선의의 피해자라고 주장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 당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앞두고 삼성물산 주식을 사들였던 사람들은 한국 정부가 이렇게 작정하고 삼성물산 주가를 후려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 ISD 소송은 한 번으로 끝난다. 무효소송을 내도 뒤집힐 가능성이 전혀 없다.

교훈

- 과거의 잘못을 바로 잡으려면 정부는 이 사건의 책임자들에게 구상권을 청구해야 한다.
- 1300억 원은 박근혜와 이재용이 나눠서 내는 게 맞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슬로우뉴스에 동시 게재됩니다. 필자는 <투기자본의 천국> 저자입니다.


태그:#삼성, #박근혜, #이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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