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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치유 글쓰기 프로그램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입니다. 20대(Z), 30대(M), 40대(X)까지 총 6명의 여성들로 이뤄진 그룹 'XMZ 여자들'은 세대간의 어긋남과 연결 그리고 공감을 목표로 사소하지만 멈칫하게 만드는 순간을 글로 씁니다.[편집자말]
정신을 차려보니 창백한 타일 바닥 위로 긴 머리카락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가뿐해진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이자 무중력 상태라도 된 듯 고요함만 맴돌았다. 방금 전까지도 탯줄처럼 내 몸에서 뻗어나온 가닥들이 등 뒤에서 부드럽게 나풀거렸는데.

가위질 몇 번에 힘을 잃고 나가떨어진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매일 긴 머리를 빨래하듯 감고 말리고, 머리 끝이라도 상할까 다독여가며 헤어팩을 했던 지난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더이상 내가 아닌 지푸라기 더미를 측은하게 보고 있는데, "어, 뒤통수가 예쁘시네요?" 의외의 말이 돌아왔다.
 
몸처럼 여겼던 내 몸이 아닌 것들
 몸처럼 여겼던 내 몸이 아닌 것들
ⓒ 조성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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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제 머리가요?"

손바닥으로 뒤통수를 쓸어내릴 때마다 정수리부터 급경사로 푹 꺼진 듯한 느낌. 나는 늘 그게 못마땅했고 의심 없이 납작통수라고 믿어왔다. 갓난아기 시절, 동그란 머리를 만들어주려 매 시간마다 눕는 위치도 바꿔줬는데 전혀 소용없었다는 엄마의 증언도 내 믿음에 한몫했을까.

계절이 바뀔 때쯤 '숏컷', '단발'을 검색해 쏟아지는 이미지를 훑다가, 그런 건 두상이 예뻐야 어울린다는 말에 괜히 휩쓸려 여러 해를 보냈다. 길게 덮어 가리는 것만이 최선이라 여기며 나는 항상 '긴 머리의 걔'를 자처했다.

근데 내 뒤통수가 예뻤다니? 의심의 눈빛을 거두지 않자 미용사님은 조곤조곤 짚어가며 내 두상의 볼륨감을 해명해주셨다. 머리를 쳐내고 나서야만 마주할 수 있었던 아주 낯선 사실.

옛날 드라마에선 실연의 아픔을 잊으려 긴 머리를 과감히 자르는 장면이 종종 등장했는데, 나는 그저 세 달 전부터 글쓰기를 시작했을 뿐이었다. 집 앞 도서관에서 열린 글쓰기 수업에 우연히 발을 들였다가 짧은 에세이 몇 편을 쓰게 됐다.
 
글 쓰는건 낚시와 비슷할까
 글 쓰는건 낚시와 비슷할까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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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이라도 걸어놨는지 매주 수업마다 비가 내리던 여름, 주제에 맞춰 한 주 동안 쓴 내 꼬깃꼬깃한 글을 사람들 앞에서 소리내어 읽어야 했다. 일기장에나 묻혀야 할 지극히 평범하고 사소한 내용이었는데.  

'글'에 붙는 말이 왜 '쓰기'인지 매번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투박한 글 한 편조차 시작과 끝을 묶어 완성하는 건 왜 이렇게 어렵던지. 번뜩이는 생각을 손가락이 겨우 따라잡으며 미친듯이 좌우로 키보드를 두들기는 장면을 꿈꿨지만, 햇병아리에게 글을 쓰는 순간은 말 그대로 '썼다'.

모니터 앞에 앉아 멍하니 멈춰있다가 차라리 바다 한가운데에서 낚시로 상어를 잡는 게 더 빠를 수도 있겠다며 괴로워하던 나. 아주 가끔 떠오르는 것들을 낚아채기라도 하면 단어 하나, 조사 하나 무얼 붙이면 더 나을지 고르다 마감의 끝의 끝까지 허덕이던 늦은 밤들이 또렷했다.

수업 덕분에 알게된 책, <글쓰기의 최전선>에서 잊지 못할 표현을 만났다. '글을 쓰고 싶은 것과 글을 쓰는 것은 쥐며느리와 며느리의 차이다.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세계다. 하나는 기분이 삼삼해지는 일이고 하나는 몸이 축나는 일이다.' 언젠가 글을 쓰게 되면 재밌겠다고만 생각하다니, 정말 무지했구나.

말하기 욕심이 없어 '경청'으로 버티던 날을 뒤로한 채, 머리를 쥐어짜며 나를 이야기하는 글자를 짜내는 일은 운동 연습과 비슷했다. 이런 걸 써도 되나, 머뭇거릴 때마다 수업을 함께하는 글 친구들의 넘치는 다정함 덕분에 조금씩 더 나아갈 수 있었다.

글로 빚어내려면 먼 바닥까지 똑똑히 봐야만 했다. 밑으로 계속 내려가다보니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것들이 잠겨 있었다. 누군가 쫓아온다고 착각하며 묻어 놨던 생각들과 내가 정하지도 않은 기준에 맞추느라 둥글게만 깎아놨던 것들. 검은 그림자로 떠오르다 바늘에 걸려 줄줄이 뭍으로 끌려 나왔다.

다시 만난 그것들은 고맙게도 싱싱한 재료가 되어 사소한 목소리로 선보일 수 있었고. 여전히 느려터진 속도에 몸부림치지만, 있는 그대로를 발견하고 드러내는 일은 재밌었다. 조금 더 오래 하고 싶었다.

머리를 자르는 순간, 고무줄 튕기듯 살짝 고개가 올라갔던 느낌을 되새긴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무거운 머리카락으로 가려져 있던 것들. 처음 알게 된 두상이 예쁘다는 사실. 은근히 숨겨온 거북목과 빈약한 등 근육. 길었던 고민의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짧은 머리는 꽤 괜찮았다.

20년이 지나 앨범을 뒤적여도 한눈에 찾아버리는 지루한 인간일 뻔 했는데. 무슨 머리 모양이 어울릴지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그럭저럭 만족하며 마냥 길러오기만 한 세월은 좀 많이 웃기다.
 
상해서 기부할 수도 없는 머리카락
▲ 지푸라기 상해서 기부할 수도 없는 머리카락
ⓒ 조성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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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퇴사를 결정했다. 정년까지 보장된 안전한 껍데기를 벗어던지는 일은 조금 더 용기가 필요했다. 때마침 글을 썼고, 때마침 머리를 잘랐다.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직장'이라는 단어는 결국 바닥에 늘어져있는 머리카락 만큼이었다고 우겨본다. 나는 땀이 많은 편이었고 목덜미를 수북히 덮은 머리카락 탓에 더 많은 땀을 흘렸었는데. 막상 자르고 나니 거추장스러운 긴 머리를 어떻게 버텼나 싶다.

다시 숏컷에서 짧은 단발, 그 다음 어깨에 닿았다가 어깨선을 넘는 단발을 지나 긴 머리로 다시 도착할 지도 모른다. 대나무 자라듯 매번 변하게 될 내 모습이 별로면 어떡하지 엄살 부릴 때도 있고, 예상 밖의 조화로움을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처음 맨몸으로 나온 세상에 해 보고 싶은 일이 너무 많은데. 짧아진 머리만큼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동시에 그 어떤 것도 못할 것만 같다. 기대와 불안, 그 한 끗 사이에서 오르락 내리락 열심히 시소를 탄다. 적어도 의미 없는 일은 아니니까. 무의미한 일은 질렸다.

아직 어디서나 흔히 보는 시덥잖은 글이지만 일단 쓴다. 하나씩 주워 담아 바구니가 꽉 차게 되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별 거 없을 수도 있고. 어쨌든 머리가 금세 길어 묶일 정도가 됐다. 미용실에 전보다 더 들락거려야 하는건 솔직히 귀찮지만.

그룹 'XMZ 여자들'은 세대간의 어긋남과 연결 그리고 공감을 목표로 사소하지만 멈칫하게 만드는 순간을 글로 씁니다.
태그:#글쓰다생긴일, #용기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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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문장들로 나를 설명하기 위해 여백의 시간을 즐기는 30대 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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