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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도둑고양이'었다. 어느 샌가 길고양이로 불렸다. 그리고 지금은 털이 난 바퀴벌레라는 뜻의 '털바퀴'로 부르는 이들과 동네에서 함께 사는 고양이라는 뜻의 '동네 고양이'로 부르는 이들로 나뉘어 있다. 우리 주변에서 자생적으로 살아가는 고양이에 대한 시선은 이토록 극과 극이다.

사실 예나 지금이나 고양이는 변함이 없다. 먹이를 구하고, 그루밍을 하고, 번식을 한다.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생각과 시선만이 달라졌을 뿐이다. 사람과 고양이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품고, 5월 8일 김정희 유성동네고양이보호협회 회장과 만났다. 김정희 대표의 대답은 너무나 의외였다.

"저희는 목표하는 게 있어요. 고양이들이 태어나지 않게 하자." 
 
갑천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고양이
▲ 갑천의 고양이 갑천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고양이
ⓒ 김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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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회장과 고양이의 인연은 4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네에서 고양이를 키우던 집이 거의 없던 시절, 중학생인 김 회장의 집에서는 고양이를 키웠었다. 그때는 고양이를 집에서만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 없었고, 고양이들은 자유롭게 집 안팎을 돌아다녔다. 그러던 고양이가 누군가가 놓은 쥐약을 먹고 죽었다.

"제가 집에 들어와서 보니 고양이가 마루 밑에 들어가 있었어요. 전혀 손이 닿을 수 없는 곳이었죠. 거기서 24시간을 울다가 죽었어요. 너무 깊숙이 들어가 있는 바람에 부모님도 걔를 어떻게 꺼내야겠다는 생각을 못 하셨어요. 병원에 데려가야겠다는 생각 자체를 안 하신 것 같아요. 그때 동물에 대한 트라우마가 크게 남았어요. 충격도, 상실감도 컸던 것 같아요."

김 회장이 고양이와 다시 인연을 맺은 것은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서울에서 대전으로 이사 온 후 동네 갑천을 딸과 함께 산책하다 고양이를 발견한 게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딸이 고양이들에게 먹을 것을 챙겨주기 시작했다. 딸이 타 지역으로 떠난 뒤 혼자 산책 나간 김 회장에게도 고양이들은 반갑게 다가왔다. 그렇게 '캣맘' 활동이 시작됐다.

"나는 고양이에 관심이 없으니까 갑천에 고양이가 있는지도 몰랐어요. 처음에는 딸의 눈에 고양이가 띄었던 거예요. 딸이 며칠 있는 동안에 매일 먹을 것을 싸가지고 갔죠. 나중에 딸은 서울로 가고 나서, 나는 더 이상 줄 게 없었어요. 그런데도 고양이가 저를 반가워 해주는 거죠. '애가 주던 것을 나도 사야 되나?' 생각에 캔 몇 개 사고, 닭가슴살 몇 개 사던 것이 보따리가 커졌어요."

"'다 없애버리겠다'는 협박까지... 조 짜서 순찰했죠"
  
동네의 고양이들은 살해 위협에 시달리기도 한다
▲ 갑천의 고양이 동네의 고양이들은 살해 위협에 시달리기도 한다
ⓒ 김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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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와 함께 '협회'까지 만들 생각은 처음에 전혀 없었다. 그저 갑천을 돌며 고양이 몇 마리 보살피는 것에 만족했었던 그는 4년 전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협회의 회장까지 맡게 됐다. 함께 알고 지내던 다른 '캣맘'의 권유로 길고양이 사진으로 유명한 김하연 작가의 강연에 참가한 것이 시작이었다.

강연장에 온 30명의 참석자 중에 13명이 유성구 주민이었고, 이들을 중심으로 카톡방을 만들고 소통을 하다 보니 협회까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그날 김하연 작가는 참석자들에게 '혼자서 고양이에게 밥을 주면 안 된다. 여럿이 모여서 작은 단체라도 만들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여럿이 함께 해야 하는 이유는 고양이를 지키기 위한 것도 있지만, 사람을 지키기 위한 이유가 더 컸다.

"동물 학대 때문이죠. 특정 사이트 이름은 말씀드릴 수 없지만, 오늘도 인터넷에 저희를 조롱하는 글이 올라가고 있어요. 저희 협회 카페에 고양이 소식을 올릴 때 위치가 노출되지 않게 하라고 회원들에게 강조하고 있어요. 고양이를 싫어하고 혐오하는 이들이 그 장소를 찾아가서 고양이를 해코지하거나 심하면 죽이는 경우도 발생해요.

인터넷에서는 고양이를 '털바퀴'라고 불러요. 고양이 학대하는 영상을 사이트에 서로 경쟁적으로 올려요. 인적이 드문 곳에서 철제 포획 틀 속 고양이에 인화물질을 뿌리고 차마 표현할 수 없는 몹쓸 짓을 했어요. 또 한 번은 누군가 갑천에 사는 고양이 사진들을 쭉 올리고 살해 예고를 하기도 했어요. '얘네들 다 없애버리겠다'고 협박을 한 거죠. 그 때 저희들이 조를 짜서 순찰을 돌기도 했어요."
  
인터넷에서는 오늘도 고양이들을 위협하는 게시물이 끊이지 않고 올라온다
▲ 갑천의 고양이 인터넷에서는 오늘도 고양이들을 위협하는 게시물이 끊이지 않고 올라온다
ⓒ 김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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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길에 사는 고양이들이 눈에 밟혀 시작한 일이었다. 다른 생명을 돌보는 선한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실제 세상에서는 여러 다른 사람들과의 갈등이 생겼다. 고양이를 위한 급식소와 겨울을 날 수 있는 집은 철거 민원의 대상이 됐다. 민원인 그리고 공무원과의 갈등이 시작됐다. 같은 일을 하는 캣맘 사이에서도 갈등이 있었다.

"사실 가능하면 아무 일 없이 지나가는 게 좋잖아요. 그런데 민원이 들어가면 공무원들은 대처를 할 수밖에 없죠. 인사고과가 달려있으니까요. 공무원들이 민원에 시달린 나머지 그냥 철거하는 것도 마음으로는 이해가 가요. 그런데 그러면 캣맘들은 가만히 있나요? 새끼를 밴 고양이가 있으면 철거를 조금만 미뤄달라고 사정도 하고요. 공무원들을 잘 설득하려고도 하죠.

간혹 캣맘들 중에 공무원을 비난하고 욕부터 하는 사람도 있긴 해요. 저는 너무 안타까워요. 그분들도 민원인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매뉴얼이 없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거든요. 캣맘들이 잘 알려드리고 설득을 해야 하는데, 욕부터 해대면 나중에 그 사람들이 고양이를 혐오하게 돼요.

맹목적인 캣맘도 있긴 해요. 어느 집단이든 소수는 있기 마련이잖아요. 과한 분들이 정말 간혹 있는데요. 문제는 이분들도 처음부터 이러지는 않았다는 거예요. 고양이를 돌보는 사람에게 쏟아지는 사회적 비난이 많아요. '미쳤냐? 돈도 많다', '그 돈으로 밥 굶는 사람이나 돌봐라' 이런 욕을 너무 많이 먹다 보니, 움츠러들고 방어적으로 변하고 말아요. 외부와 소통을 끊고 외골수가 되는 사람도 있는 거죠. 환경이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시민들이 거니는 갑천에서 고양이도 함께 살아가고 있다
▲ 갑천의 고양이 시민들이 거니는 갑천에서 고양이도 함께 살아가고 있다
ⓒ 김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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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회장은 캣맘을 향한 일부의 따가운 시선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규모는 적어도 여럿이 모여서 행동을 하고 제도를 개선해야 했다. 처음에 무언가 거창한 철학적 배경으로 시작한 일은 아니었지만, 이제는 고양이와 사람 사이 조화로운 공존을 위해 행동에 나서고 있다.

"저희는 목표하는 게 있어요. 고양이들이 태어나지 않게 하자. 태어나지 않게 하되 이미 태어난 애들은 건강하게 살도록 하자.

고양이들로 인한 대부분의 민원은 소음 문제가 커요. 발정 소음이 문제죠. 개체수를 조절하기 위해서라도 지금으로써는 TNR(포획, 중성화, 방사의 줄임말) 사업이 중요해요. 소음문제, 개체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입니다. 당장에 동네에 고양이들을 다 잡아 없앤다고 해서 고양이가 사라지지 않아요. 다른 영역에 있던 고양이들이 넘어오게 되면 끝이 없죠.

고양이에게 기본권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을 수 있지만, 얘네가 집고양이처럼 풍족하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생명의 위협은 느끼지 않게 해야 하는 건 아닐까' 바람이 있어요. 길에서 고양이들은 태어나자마자 가장 많이 죽어요. 다음으로 어미의 젖을 떼고 1년 사이에 많이 죽습니다. 한국의 겨울은 고양이들에게 혹독하기 때문에 겨울 집만 있어도 적당하게 겨울을 나는데, 민원으로 철거당하면 또 많이 죽어나가죠.

혹자는 너무 지저분하다고 민원을 넣으시는데요. 제가 봐도 지저분한 부분이 있어요. 어떤 분은 밥만 주고 가는 게 아니고, 제가 가져다둔 겨울 집에 이것저것 덧붙여서 꾸며두시거든요. 그러다보면 처음의 겨울집의 크기가 3~4배로 커져있는 경우도 있어요. 이걸 눈에 띄게 만들고 싶지 않은데 그래서 그런 데코레이션을 좀 안 해주셨으면 하는 마음도 있죠."


"다른 생명들과 같이 사는 세상이잖아요"
  
길에서 태어난 고양이들은 다양한 이유로 1년을 채 살기가 어렵다
▲ 갑천의 고양이 길에서 태어난 고양이들은 다양한 이유로 1년을 채 살기가 어렵다
ⓒ 김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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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국에 흩어져 있던 80여 개의 길고양이 보호협회들이 모여 힘을 합쳐 '전국길고양이보호협회연합'을 만들었다. 고양이의 씨를 말릴 수는 없는 이상 결국 남는 선택지는 고양이와 조화롭게 살기 위한 제도 정비이기 때문이다. 외국 사례를 찾아 논문을 공부하고 각 지자체에 정책을 제안하는 것은 결국 시민들의 몫이 된다. 계란으로 바위치기일지언정 공존하기 위한 노력을 멈출 수는 없다고 한다. 현재 각 지자체에서 시행 중인 TNR사업과 조례에도 개선할 부분이 많다고 지적한다.

"TNR이 초창기에 비해서는 많이 발전하고, 예산도 늘어난 것은 사실이에요. 그런데 실제 운영에서는 개선할 것이 아직 많죠. 고양이들을 포획틀에 넣어 운반하는데요. 중성화 수술을 하면 외부에 상처가 생김에도 불구하고, 포획틀은 전혀 소독되지 않아요. 또 포획틀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데요. 그걸 트럭에 여러 층 겹쳐서 쌓거든요. 그 안에서 고양이들이 똥오줌을 누게 되면, 바이러스에 피부병까지 전염병이 돌아요.

서울의 일부 지자체에는 고양이 급식소 설치가 조례로 제정되어 있는데요. 지자체장과 담당 공무원의 성향에 따라 오히려 악용되기도 해요. 원래라면 고양이를 위한 공공급식소를 설치해서 지역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이었는데요. 도리어 지자체에서 '합의하지 않은 급식소는 설치할 수 없다'고 강제하게 되기도 합니다. 고양이가 아니라 결국에는 사람들 간의 문제입니다."

  
고양이를 둘러싼 갈등의 핵심은 '생명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있다
▲ 갑천의 고양이 고양이를 둘러싼 갈등의 핵심은 '생명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있다
ⓒ 김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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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동네고양이보호협회는 마을 공동체 사업 하나를 시작했다. 유치원으로 교육을 나가서 아이들에게 생명 존중과 기본적인 펫티켓을 알려주는 활동이다. 5월 말 첫 수업을 위해 협회는 분주하게 준비 중이다. 동물을 만났을 때 인사하는 방법, 다가가고 만지는 방법, 목줄 착용과 배변 봉투 지참 등 기본 매너를 교육할 예정이다. 우리 사회 고양이를 둘러싼 논쟁의 핵심은 결국 '사람들이 다른 생명을 대하는 태도'에 달려있다는 게 김 회장의 생각이다.

"요즘 생명을 너무 경시하는 풍조가 있어서 큰일이에요. 처음에는 풀벌레부터 죽이다가, 개구리, 고양이 그리고 강아지까지... 끔찍한 강력범죄자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사실 다 교육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을 해요. 공교육에서 생명을 존중하는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 지역에도 강아지와 고양이를 파는 가게가 많잖아요. 저는 한 번도 안 가봤지만 동물을 사고파는 것이 거의 산업이 된 것 같아요. 그런데 생명을 다루는 것은 산업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동물을 사고파는 사이 유기견과 유기묘들이 생겨나고요. 이 동물들을 보호하는 시설에 또 세금이 들어가게 되죠. 인식칩을 의무화하는 제도가 생겨났지만, 단속도 없고 인식칩 없는 동물들을 여전히 팔고 팔립니다.

다른 생명들과 같이 사는 세상이잖아요. 그런데 아파트 단지에서는 경비소장이 고양이들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어요. 사회가 너무 자기의 아픔만 크게 느끼고 다른 아픔은 나 몰라라 하는 것 같아 아쉬워요. 전체적으로 좀 다 같이 함께 사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인터뷰를 마친 김 회장은 자신이 돌보는 고양이들을 만나기 위해 갑천으로 갔다. 모처럼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어서 즐거운 시간이었다는 말을 남긴 채... 갑천의 고양이들은 내일도 먹이를 구하고, 그루밍을 하고, 번식을 할 것이다. 고양이를 바라보는 사람들 사이에 갑론을박도 이어질 것이다. 우리가 다른 생명들과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끝내 찾아낼 수 있기를 바라본다.

태그:#길고양이, #동네 고양이, #생명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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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의 시민활동가입니다. 우리 지역 현장 곳곳을 다니며,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마이크가 필요한 분에게 마이크 드리는 것이 제 역할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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