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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은평구 불광동 카페 '흔적' 주인장 이하연. (사진: 정민구 기자)
 서울 은평구 불광동 카페 '흔적' 주인장 이하연. (사진: 정민구 기자)
ⓒ 은평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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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 학교 앞 문구점과 떡볶이 가게가 우리를 붙잡고, 집으로 가는 길에는 친구들의 집을 하나둘 세며 가던 기억. 서울 은평구 불광동 연신초등학교 앞 골목은 여전히 그 기억 속 모습이 가득하다. 

'흔적'은 그 사이에 아주 슬그머니 들어선 카페다. 무심한 가판대를 보며 '여긴가?' 싶은 마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검은 벽과 바닥, 우드톤의 가구들과 따듯한 빛들이 반전을 선사한다. 때로는 지나가는 동네 주민들이 쉬어가며 물 한잔 마시고 한숨을 돌리고 가는 공간이 되기도 하고 산책 나온 강아지가 지나치다 꼭 들리는 필수 코스가 되기도 한다. 안과 밖이 다른, 하지만 결국엔 어우러지는 공간 흔적에서 주인장 이하연을 만나봤다.

외부음식 반입도 가능... 모두에게 열린 공간

-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맞아요. 어린이와 장애인, 청년이 행복한 세상을 꿈꾸며 다채로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카페 주인장 역할도 하고 대학 교단에서 창업 관련 강의를 하기도 하고 가끔 쇼호스트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카페 운영시간이 매주 다르답니다."

- 흔적이라는 이름의 의미는?

"사람들이 오고가면서 많은 흔적들을 남기고 가잖아요. 예를 들면 커피를 마셨던 잔과 같은 거죠. 그냥 오고 가는 과정만이 아닌 각각의 발자취가 된다고 느껴졌고 하나하나 기억하고 생각하고 싶은 마음으로 흔적이라고 지었어요. 지나가는 것들 중에서 의미 없는 것은 없다고 항상 생각하거든요. 방명록에도 실제로 많은 분들이 자신의 이야기나 그림 등을 남기고 가면서 공간에 차곡차곡 흔적이 쌓이고 있어요."

- 카페 간판은 '은혜수선'인데요, 기존 간판을 그대로 둔 이유가 있나요?

"동네와 톤앤 매너를 맞추고 싶었어요. 지금 이 거리의 모습을 좋아해요. 외관적으로 큰 변화를 주지 않는 게 가장 잘 녹아들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부는 세련된 느낌의 인테리어로 반전을 주고 싶기도 했고요. 한편으론 이 간판 또한 흔적이잖아요? 그 자체를 기억하는 의미도 있어요. 실제로 은혜수선의 손님들이 반가워하면서 더 자주 찾아주시기도 합니다."

카페 흔적에는 점자 메뉴판이 준비돼 있어 시각장애인이 음료를 주문할 수 있고 청각장애인도 사장님과 수어로 이야기하며 편하게 공간을 즐길 수 있다. 수어의 날, 세계 여성의 날, 강아지의 날과 같은 잊혀지기 쉬운 기념일에는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이를 알리고자 노력한다. 장애인 안내견뿐만 아니라 반려동물, 어린이, 노약자 등 모두에게 편히 열려있는 공간이다.

또한 카페에서 제공하기 어려운 디저트나 음식들을 가져와 음료와 함께 먹는 것이 가능하다. 우리가 너무 익숙해서 몰랐던 인식들과 불편함에 대해 당연하다고, 또 당연하지 않다고 말해준다. 
 
서울 은평구 불광동 카페 '흔적'의 점자 메뉴판. 오소리 커피는 '흔적'의 전 상호다. (사진: 류혜림 기자)
 서울 은평구 불광동 카페 '흔적'의 점자 메뉴판. 오소리 커피는 '흔적'의 전 상호다. (사진: 류혜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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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자메뉴판, 수어를 통한 소통, 락토프리 우유 등 소수를 위한 배려가 가득해요.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장애인도 당연히 소비자로 생각한다면 점자메뉴판도 있어야 하죠. 수어를 공부해 소통하려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고요. 장애인들도 감성카페를 이용하고 싶지만,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는 카페가 거의 없거든요. '아예 없는 것'과 '그럼에도 있기'에 희망을 갖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비록 '차별 없는 세상이다', '모두가 마음껏 다닐 수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우리를 위한 공간이 있네. 살만하다'라는 희망을 드리고 싶어요. 락토프리 우유도 자칫 지나칠 수 있는 유당불내증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편안하게 다양한 음료를 마실 수 있도록 하고 싶은 마음에서 준비했습니다."

- 수어의 날에는 수어와 필담으로만 주문하는 등 다양한 캠페인도 함께하고 있어요. 작은 운동같이 느껴집니다.

"소수를 위한 또는 그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언젠가 열렸으면 하는 마음으로 나부터라도 작게나마 실천하게 된 것 같아요. 제 마음에 항상 그런 부담이 있었어요. 지하철역을 가는데 시각장애인이 길을 잃으신 것 같으면 못 지나가겠는 거예요. 그렇다고 함부로 다가갈 수도 없고요. 

미디어를 통해 이런 상황들을 자주 접하면서 '그들과 더불어 사는 세상은 왜 없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들도 분명 우리와 같이 살아가는 존재인데, 왜 그들이 편히 살 수 없는 세상이 된 건가 싶더라고요.

캠페인도 사실 굳이 안 보여줘도 되지만, 보여줌을 통해 몰랐던 사람들이 알 수 있게 되고,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지면서 '이게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해주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 작지만 그 움직임으로 누군가가 희망을 얻고, 조금은 더 알 수 있게 된다면 그 또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희망 얻어갈 수 있는 공간 만들고 싶어요"

- 외부음식 반입을 허용하지 않는 카페가 많은데 이곳에서는 허용하고 있어요.

"페어링이라고할까요? 커피에도 어울리는 디저트를 저희가 준비를 하지만 원하지 않은 메뉴일 수도 있잖아요. 또 손님이 커피와 같이 먹고 싶은 디저트가 있을 수 있고요. 제공해드리지 못하는 음식은 직접 가져오셔서 커피와의 페어링을 즐기실 자유를 드리고 싶었어요. 그렇게 하는 것이 곧 저희가 제공하는 음료 또한 100% 즐기실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 최근에는 새벽에 문을 열기도 하던데 어떤 이유인가요?

"이곳을 지나가시는 분들이 밝은 거리를 만나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른 아침 오픈을 간간이 하고 있어요. 이 거리에는 새벽에 여는 곳이 하나도 없거든요. 동트기 직전 쯤, 가로등도 꺼진 시간에는 거리 자체가 굉장히 깜깜해요. 하지만 그 이른 시간에도 하루를 시작하는 분들이 있어요. 출근길, 어두컴컴한 거리 작은 빛을 만난다면 조금은 밝은 하루를 가지실 수 있지 않을까요?"
 
서울 은평구 불광동 카페 '흔적' 내부 모습. (사진: 정민구 기자)
 서울 은평구 불광동 카페 '흔적' 내부 모습. (사진: 정민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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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은평구 불광동 카페 '흔적' 내부 모습. (사진: 정민구 기자)
 서울 은평구 불광동 카페 '흔적' 내부 모습. (사진: 정민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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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새로운 커뮤니티 모임을 시작하셨어요.

"동네에 자취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은데, 다들 타지에서 오신 분들이라 동네 생활을 같이 할 친구들이 없더라고요. 원래 살고 있던 주민들이 먼저 다가가지 않는 이상 다가오기 조금 힘든 것이 타지 생활이라고 생각하고요. 이런 분들을 위해 조금 열려 있는 공간이 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들 간 서로 얘기도 하고 또 뭔가를 하면서 각자 자신에 대해 알고 동네에도 애정을 갖길 바라는 마음으로 모임을 기획했습니다."

- 커뮤니티 모임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나요?

"'썸띵앤나잇'이라는 큰 주제 아래 매번 다른 활동을 하는 모임이에요. 첫 번째는 디지털 디톡스로 서로 가진 디지털 기기를 내려놓고 자신에게 집중하며 쉬는 시간을 기획해봤어요. 이후 향림도시농업체험원에서 피크닉을 하거나, 동네 밤 산책을 같이 하는 활동을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카페를 차릴 당시 청년들이 모일 수 있는 동네의 사랑방 같은 공간을 만들고 싶었는데, 드디어 그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돼 기대돼요. 나중에는 청년반상회 같은 동네 청년 커뮤니티도 만들고 싶어요."

- 카페가 번화가에 있는 것도 아니어서 수익을 내기 어렵지 않을까 해요. 수익보다 공간에 더 많은 의미를 두신 건가요?

"물론 경제적인 수익도 중요하죠. 하지만 돈을 버는 공간보다는 희망을 만들어가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돈보다는 조금 더 나은 가치가 있고, 그걸 지키고 싶은 마음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물론 아무리 해봤자 크게 봤을 때 세상은 안 변하겠죠.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두 명이 변할 수 있잖아요. 그 한두 명이 또 한두 명으로 연결되고 또 연결되고 하다보면 언젠가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럼에도 지켜야할 건 지키고 할 수 있는 건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그 희망을 안고 하는 거예요. 

세상엔 그러한 가치들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분들이 많아요. 때로는 자신만의 외로운 고군분투인 것 같아 지치시는 경우가 있죠. 저 또한 가끔 그럴 때가 있고요. 그럴 때마다 동네의 찾아주시는 손님들이, 점자메뉴판을 알고 찾아와주신 장애인분들의 고맙다는 작은 한마디가 그럼에도 내가 잘 지켜내고 있다고 희망을 얻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내가 희망을 얻듯 내 행동이 또 누군가의 도전과 용기에 힘을 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 흔적이 어떤 공간이 됐으면 좋겠나요?

"크게 두 가지인 것 같아요. 첫 번째는 희망을 주고 그들의 이야기가 흔적으로 남는 공간. 누군가는, 어디에선가는 '우리를 위해 이런 것도 하는구나' 하고 오고 쉬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는 앞서 말했듯 동네의 사랑방 같은 공간인데요. 잠시 들렀다 쉬어가는 휴게소가 되기도,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교류를 하는 공간이 돼 동네에서의 삶에 즐거움을 줄 수 있길 바랍니다."

* 흔적 : 서울 은평구 연서로41가길 6 오른쪽
 
서울 은평구 불광동 카페 '흔적' 주인장 이하연. (사진: 정민구 기자)
 서울 은평구 불광동 카페 '흔적' 주인장 이하연. (사진: 정민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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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은평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흔적, #이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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