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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으로 농작물을 재배하는 박해성씨의 농장.
 유기농으로 농작물을 재배하는 박해성씨의 농장.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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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인불발(堅忍不拔)과 기호지세(騎虎之勢).

경북 포항 기계면에서 농사를 짓는 박해성(57)씨를 만나며 떠올린 이 두 사자성어는 예기치 않은 불행과 그 불행을 넘어서려는 그의 노력을 가장 간명하게 표현한 게 아닐까 싶다.

서울에서 태어나 별다른 부침(浮沈) 없이 살아온 박씨는 20대 후반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는 남편의 치료를 위해 경상북도를 찾았다. 일정 기간이 지나자 남편의 병이 호전되는가 싶었는데, 또 다른 고난이 박씨를 찾아왔다. 자기가 암에 걸린 것.

낯선 포항에서 문구점과 레스토랑 등을 운영하던 그는 "자연이 병을 치료해줄 수 있다"는 말에 기대 생전 처음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한다.

"놀랍게도 육체적으로 힘든 농사일이 가슴과 자궁 안으로 번져가던 암세포의 증식을 거짓말처럼 막아냈다. 그때 생각했다. 흙을 만지며 사는 게 앞으로의 내 삶이 될 수도 있겠구나."

결심은 실행으로 이어졌다. 포항시 북구 기계면으로 들어가 깨와 감자, 무 등을 심기 시작한 것. 마흔을 넘겨 늦깎이 농사꾼이 된 박씨는 자신을 치료해준 고마운 땅이니 농약 없이 유기농으로 농작물을 가꾸게 된다. 처음엔 실패와 고생이 없을 수 없었다.

새벽 5시부터 해가 질 때까지 일에 열중했지만, 수확량은 다른 농지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었다. 당연지사 거기서 이익이 나올 수 없었다. 그러나, 노력은 사람을 배신하지 않는 법.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땀과 눈물을 쏟아 부은 땅은 얼마 전부터 박해성씨에게 '은혜'를 갚기 시작했다.

그가 운영하는 농업회사 하이청이 공력을 쏟아 부어 만든 금화규 마스크팩이 뷰티센터 이용자들에게 호평 받았고, 21세기형 환경 친화제품이라 할 대체육도 꼼꼼하고 까다로운 평가 과정을 통과해 대형마트와 백화점에 입점하게 된 것.

사실 이전에도 박씨는 작지 않은 사업성과를 올린 바 있다. 포항에서 미국으로 처음 무를 수출했고, 저 멀리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로 시래기를 수출하는 저력을 보이기도 했다.

17년 전 치유가 힘든 암을 앓았던 여성이 고통과 절망에 굴하지 않고 지금과 같은 열정적인 삶을 살 수 있었던 배경엔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까?

앞서 언급한 견인불발은 '어떤 상황에서도 꺾이지 않는 굳센 의지'를, 기호지세는 '달려온 길을 더 정열적으로 뛰어가는 힘'을 의미한다. 지난 3월 24일. 이 두 사자성어가 딱 어울리는 박해성씨를 만났다. 아래 그날 주고받은 이야기를 요약한다.
 
운영하는 농업회사의 생산 설비를 살피고 있는 박해성씨.
 운영하는 농업회사의 생산 설비를 살피고 있는 박해성씨.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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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사를 짓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2006년쯤이다. 가슴에 암이 생겼다. 몇몇 사람들은 암에 걸리면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한다. 나 역시 비슷한 심경이었다. 처음엔 암에 좋다는 와송(瓦松)을 키웠다. 농사를 시작하면서 놀랍게도 암이 호전됐다. 자궁에 생긴 혹도 사라졌다. 아마도 흙이 주는 에너지 덕분 아니었을까."

- 무를 재배해 해외 수출도 했다던데.

"농업회사를 만들어 미국과 캐나다로 무차와 무말랭이, 시래기 등을 보냈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 방식으로 키워낸 농작물이었다. 환자인 내가 먹어도 안심할 수 있는 무와 깨, 감자를 키우고 싶었다. 또한, 기계면에서 함께 농사짓는 동네 어르신들의 판로도 열어주려 했다."

- 농약 없이 농사짓는 게 쉬운 일은 아닐 듯하다.

"맞다. 새벽부터 나와 하루 종일 잡초를 뽑는 것보다 간단하게 제초제 한 번 치는 게 더 효과적이다. 하지만, 병을 치유해준 땅을 위해서라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7~8년가량 되니 땅도 '농약 없는 농사'에 적응하는 것 같다. 이제 내가 사는 동네에도 유기농을 하는 분들이 많아졌다. 사실 이런 게 생활 속 환경보호의 실천 아닐까?"

- 고기 없이 고기 맛을 내는 대체육을 만들었다고 들었다.

"알다시피 소, 돼지, 양을 키우려면 수질 오염과 메탄가스로 인한 지구 온난화를 걱정해야 한다. 대체육 생산은 건강은 물론, 환경보호까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새로운 사업이다. 우리가 만드는 대체육에는 직접 농사지은 유기농 무와 동해에서 해녀가 채취한 돌미역이 들어간다. 여기에 자연산 해조류에서 추출한 '아미노산 복합체'를 더했더니 맛 또한 좋아졌다. 이제 소비자의 직접 평가를 받는 일이 남았다."

- 농사와 농업회사를 하며 잊을 수 없는 일은.

"우리가 만든 시래기를 맛보고 격려해준 미국과 두바이 교민들을 잊을 수 없다. 만드는 사람의 수고를 가장 잘 아는 건 소비자다. 그러니, 먹는 걸 생산하는 이들은 무엇보다 정직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은 차(茶)로 마실 수도 있고, 가루로 만들어 수프에 장식용으로 뿌리는 것도 가능한 시래기 가공품이 완성 단계에 있다. 향후 유럽 수출도 준비 중이다."

- 변하지 않고 지켜갈 사업의 원칙이 있다면.

"이익만 생각한다면 오래 가지 못한다. 좋은 차와 커다란 집만으로는 온전한 행복을 만들 수 없다.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며 봉사하는 삶을 지향하고자 한다. 평생 힘든 육체노동을 한 탓에 허리가 굽은 동네 할머니들을 보며 내가 그분들을 위해 무얼 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직원과 함께 농장을 둘러보는 박해성씨.
 직원과 함께 농장을 둘러보는 박해성씨.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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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업이 큰 성공을 거둔다면 동네 어르신들을 위해 뭘 할 생각인가.

"운전을 못하는 노인이 시골에서 병원에 다니려면 아침 일찍 출발해 종일 진료실에서 기다렸다가 짧은 시간 물리치료를 받는 힘겨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무료 셔틀버스 운행은 그분들을 돕는 방법 중 하나다. 농사를 하며 생긴 질병을 치료할 땐 지원도 해주고 싶다. 쉽지 않겠지만 농촌 노인을 위한 전문병원도 세울 수 있으면 좋겠다."

- 덧붙이고 싶은 말이 남았는지.

"농사를 통해 암을 이겨냈고, 유기농 농산물 수출과 농작물로 만든 제품을 생산하며 작지 않은 보람을 느꼈다. 앞으로도 성실한 농사꾼으로, 이웃과 더불어 나눌 줄 아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남들은 '왜 그리 바쁘게 사냐' '힘들게 새로운 사업을 뭐하러 벌이느냐'고 하는데, 그건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우리 공장엔 어르신들이 자주 놀러 온다. 농사일로 일생을 보낸 그분들이 환하게 웃을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을 만드는데 작은 도움이나마 될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북매일>에 게재된 것을 일부 보완한 것입니다.


태그:#하이청, #박해성, #대체육, #무 수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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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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