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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사건이 북한 김일성 지시에 의해 촉발된 사건이라고 말해 논란을 야기한 태영호 국민의힘 최고위원 후보가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제주 4·3 사건이 북한 김일성 지시에 의해 촉발된 사건이라고 말해 논란을 야기한 태영호 국민의힘 최고위원 후보가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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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사건 배후에 김일성이 있다'는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의 주장에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태 의원의 주장은 역사적 사실과 다르고 잘못된 내용이다. 특히 그는 제주4.3사건에 대한 김대중 대통령의 발언까지 인용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이어가고 있다. 태 의원은 김대중 대통령이 1998년 11월 23일 미국 CNN과의 회견에서 한 말을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제주4.3사건 관련 질문에 대해 "원래 시작은 공산주의자들이 폭동을 일으킨 것이지만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공산주의자로 몰려서 억울하게 죽음을 당했습니다. 이 문제는 세월이 많이 지났지만, 그들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해서 유가족을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태 의원 뿐만 아니라 제주4.3사건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삼는 일부 우익 인사들은 자신들의 주장의 설득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김대중 대통령의 이 발언을 인용하곤 한다. 2018년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대표도 같은 결의 말을 해 여론의 비판을 받았었다.

그런데 1998년 김대중 발언 취지는 4.3 전개 과정 중에 있었던 남로당 무장봉기를 강조하려고 한 것이 아니고, 그때까지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이뤄지지 않고 있던 4.3에 대한 해결의 필요성을 강조한 데 있었다. 1998년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국민들은 제주4.3의 실체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다. 따라서 김대중 대통령의 발언은 그동안 금기시됐던 피해자의 목소리에 국가가 호응하고 적극적인 역할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었다.
  
과거사 해결이 자유민주주의 발전의 핵심
 
2000년 1월 11일 김대중 대통령이 4.3유족대표와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을 초청한 가운데 청와대에서 4.3특별법에 직접 서명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2000년 1월 11일 김대중 대통령이 4.3유족대표와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을 초청한 가운데 청와대에서 4.3특별법에 직접 서명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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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일부 우익 인사들이 제주4.3사건에 대한 문제제기, 사실상 잘못된 팩트에 근거한 색깔론 제기를 지속적으로 하는 이유는 뭘까? 필자가 판단하기에 이들은 우리나라의 기본 가치인 자유민주주의 형성과 발전 등 역사적 과정에 있어 자신들이 진보 진영보다 정통성이 있고 우월하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으로 판단한다. 그런 맥락에서 냉전시기 남북간의 체제대결, 체제경쟁 논리를 국내에도 적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자유민주주의 발전에 있어 과거사 청산, 과거사 해결이 갖는 중대한 정치적·역사적 의미에 대해서 잘 모르는 같다. 과거사 해결은 과거의 잘못에 대한 정확한 파악 및 정리, 오류를 직시하고 인정하는 용기, 피해자와 소통하고 위로하는 관용과 연대의 정신, 파국적인 갈등관계를 화해와 협력의 관계로 전환하는 치유와 상생의 의지 등이 종합적으로 결합돼 있는 고난도의 정치적 과정이다.

자유민주주의는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다. 여러 역사적 변동을 거치면서 쟁취한 가치이며 그 과정에서 과거사 해결은 중요한 과제였다. 특히 한국의 경우, '압축적 근대화'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근현대사 전개 과정 속에서 극심한 사회변동을 겪었다. 일반적으로 역사적 전환기에는 여러 이유로 수 많은 사람들이 큰 피해를 경험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사회통합은 불가능하며 결국 고신뢰 사회로 발전할 수 없다. 과거사 해결을 통한 사회통합은 단순히 피해자구제 차원에서만 의미있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발전을 통한 선진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 과제다.  한국이 여기까지 발전할 수 있었던 중요 원인 중의 하나는 이와 같은 문제를 단계적으로 하나씩 하나씩 해결한 데 있다.

만일 광주 5.18민주화운동이 여전히 '공산폭도들에 의한 좌경폭력혁명 시도였다'는 식으로 규정돼 있다면 지금 우리나라는 어떻게 돼 있을까? 그랬다면 오늘날의 대한민국 발전은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민주주의 발전과 심화는 과거사 해결과 긴밀한 관련을 갖는다. 그 과정에서 자유, 화해, 소통, 관용, 평화 등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고 더욱 발전시켜야하는 인류 보편적 가치가 생성되는 것이다.
  
제주4.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그리고 자유민주주의 발전
  
제주4.3희생자 평화공원 제주지역 행방불명희생제주4.3희생자 평화공원 제주지역 행방불명희생자 위령비(2014년 4월 3일 촬영).
 제주4.3희생자 평화공원 제주지역 행방불명희생제주4.3희생자 평화공원 제주지역 행방불명희생자 위령비(2014년 4월 3일 촬영).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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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관점에서 제주4.3사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한국 자유민주주의 역사 발전 단계에서 갖는 의미에 대해서 살펴봐야한다. 먼저 제주4.3은 과거사 청산, 과거사 해결 과제 중에서 최대 난제였다. 제주4.3은 수만 명의 제주도민이 학살당한 한국전쟁 전후 시기 발생한 대표적인 민간인 학살사건이다.

이 시기에 발생한 민간인 학살사건의 경우 전쟁 전후의 극심한 혼란상황과 맞물리면서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특히 공산폭동으로 규정된 이 사건에 대한 공론화는 금기시됐다. 이런 상황에서 사건의 진상규명과 희생자 및 유가족에 대한 명예회복 및 보상 역시 이뤄지기 힘들었다.

국내 상황이 그렇다보니 제주4.3을 알린 최초의 시도는 재일교포에 의해 이뤄졌다. 일본에 거주한 제주도 출신 소설가 김석범은 1957년 일본에서 발표한 소설 <까마귀의 죽음>을 통해 제주4.3에 대한 공론화를 최초로 시도했다. 국내에서는 1978년에 나온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이 제주4.3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의 최초 시도였다. 그리고 이 사건에 대한 최초의 정치적 공론화 시도는 김대중에 의해서 이뤄졌다.

1987년 13대 대통령 선거에서 평민당 후보로 출마했던 김대중은 1987년 11월 30일 제주도 유세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주도민은 4.3의 비극을 겪었다. 나는 제주인의 한과 고통과 희망을 같이 하겠다. 나도 용공조작 피해자의 한 사람이다. 내가 집권하면 억울하게 공산당으로 몰린 사건 등에 대해 진상을 밝히고 억울한 사람들의 원한을 풀어 주겠다."

지금과는 비교하기도 힘들 정도로 색깔론에 의한 정치적 음해와 공세가 심했던 시절에 나온 제주4.3 관련 김대중의 공약은 매우 용감한 것이었다.

이러한 입장을 갖고 있던 김대중이 대통령이 된 이후 1999년 12월 16일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에관한특별법'이 통과됐다. 그리고 이 법에 의해서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가 출범해 2003년 10월 15일 제주 4.3사건의 진상에 관한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가 확정됐다. 이 보고서에 근거해서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제주4.3 당시 국가 공권력의 과오에 대해서 공식 사과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현재에 이르게 된 것이다.

제주4.3에 대한 진상규명, 명예회복은 오랜 기간 금기시됐던 한국전쟁 당시 발생한 민간인학살 문제 해결을 위한 우리 사회의 의지와 능력을 보여준 것이다. 역사적 진실은 때로는 어둡고 불편하기 때문에 은폐하고 회피하고 싶은 충동이 생길 수 있다.

그런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정면으로 직시하면서 역사적 팩트를 정확하게 밝히고 과오를 인정하며 피해자를 위로하고 보상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질적인 성숙과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 필수적인 일이다. 우리 사회는 그것을 이뤄낸 것이다. 이처럼 제주4.3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은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있어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태영호가 김대중으로부터 배워야 할 지점은
  
1998년 11월 23일 김대중 대통령이 미국 CNN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1998년 11월 23일 김대중 대통령이 미국 CNN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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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호는 자유민주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자유민주주의는 우리 사회의 기본 가치로서 앞으로도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그는 과거사 해결과 사회통합에 관한 김대중의 철학과 방법론을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제주4.3 관련 김대중의 발언 취지는 남로당봉기를 강조하려고 한 것이 아니고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통한 사회통합에 있었다.

김대중은 한국전쟁 당시 공산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사건 당시 죽을 고비를 넘긴 적이 있었다. 김대중의 첫 번째 죽을 고비였다. 그리고 한국의 독재 정권에 의해서 테러와 사형선고 등으로 죽을 고비를 넘겼다. 이러한 역경을 극복하면서 화해, 용서, 관용의 정치를 통한 연대와 평화를 추구한 인물이 김대중이다. 김대중은 한국 민주주의의 심화 발전에 큰 공헌을 세웠으며 여기에 그의 화해통합형 과거사 해결 원칙과 전략은 큰 비중을 차지한다.

냉전시기의 극단적 이분법에 근거한 세계관은 현 시점에서 볼 때 낡아도 너무 낡았다. 그 시절의 자유민주주의와 지금의 자유민주주의는 천양지차다. 안타깝게도 우익 진영의 상당수는 자유민주주의를 상당히 고루하고 협애한 관점에서 이해한다.

이렇게 하면 할수록 과거의 늪에서 헤어나기 힘들다. 다시 강조하건데 자유민주주의 발전과 심화는 과거사해결을 통한 사회통합과 궤를 함께한다. 그런 점에서 태영호 의원은 김대중 발언의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사회학 박사이며 김대중 연구자입니다. 김대중 재평가를 위한 김대중연구서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과 현대사>(시대의창, 2021)를 썼습니다.


태그:#김대중, #제주4.3, #태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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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박사이며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에서 사료연구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김대중에 대한 재평가를 목적으로 한 김대중연구서인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과 현대사'(시대의창, 2021)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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