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킹덤>과 <지금 우리 학교는>, 영화 <부산행>과 <살아있다> 등 2010년대 중반 이후 쏟아져 나온 좀비 드라마와 영화들에서는 '감염된 사람에게 물리면 좀비가 된다'는 정보를 대중들에게 주입시켰다. 실제로 좀비물은 소재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매력으로 사극은 물론 현대물로 만들어도 상당히 잘 어울리기 때문에 국내에서 좀비물의 유행은 한동안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물론 좀비 영화가 처음 등장한 곳은 한국이 아닌 서양이지만 사실 서양에서는 좀비 만큼 피를 좋아하고 존재가 따로 있다. 바로 '드라큘라' 또는 '흡혈귀'라고도 불리는 뱀파이어들이다. 실제로 할리우드에서는 <언더월드>와 <트와일라잇> 시리즈,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황혼에서 새벽까지> <반헬싱> <렛미인> <블레이드> 시리즈 등 뱀파이어들이 등장하는 영화들이 다양한 장르로 제작된 바 있다.

뱀파이어가 워낙 서양 이미지가 강하다 보니 국내에서는 좀비영화에 비해 뱀파이어 영화의 입지가 상대적으로 좁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도 박찬욱 감독의 <박쥐>와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 등 뱀파이어가 등장하는 작품들이 제작되기도 했다. 그리고 2006년에는 '흡혈모기에 물린 뱀파이어 형사'라는 독특한 소재의 코믹액션 영화 <흡혈형사 나도열>이 개봉해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김수로의 첫 주연작이었던 <흡혈형사 나도열>은 전국 180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김수로의 첫 주연작이었던 <흡혈형사 나도열>은 전국 180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 (주)쇼박스

 
누구보다 연기열정 넘치는 배우

어린 시절부터 배우를 꿈꾸던 김수로는 무려 5수 끝에 서울예대 연극과에 입학했다. 만약 김수로가 자신의 나이에 맞게 '현역으로' 서울예대 연극과에 입학했다면 동갑내기인 황정민과 류승룡, 정재영, 안재욱, 신동엽 등과 함께 서울예대 '전설의 90학번' 멤버가 됐을 것이다. 1993년 <투캅스>에서 위병소 의경 역으로 연기를 시작한 김수로는 1999년 <쉬리>에서 최민식이 이끄는 북한 특수8군단의 요원 역을 맡았다.

김수로가 관객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작품은 같은 해 개봉한 코미디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이었다. 김수로는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다혈질의 중국집 배달원을 연기하며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이 캐릭터는 2002년에 개봉한 <재밌는 영화>에서 '셀프 패러디'되기도 했다. 김수로는 2000년 김지운 감독의 <반칙왕>에서 주인공 대호(송강호 분)의 마지막 상대 유비호 역을 맡아 고난도의 레슬링 기술들을 선보였다.

2001년 <달마야 놀자>와 <화산고>에서 비중 있는 조연을 연기한 김수로는 2002년 <재밌는 영화>와 2004년 <바람의 전설>을 통해 주연으로 데뷔했다. 같은 해 한국의 두 번째 천만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는 영신(고 이은주 분)을 살해하는 악랄한 청년단장으로 특별출연했다. 그렇게 충무로의 개성 있는 배우로 자리를 잡아가던 김수로는 2006년 <흡혈형사 나도열>을 통해 데뷔 후 처음으로 단독주연을 맡았다.

기대와 우려의 공존 속에 개봉한 <흡혈형사 나도열>은 전국 180만 관객으로 흥행에 성공하며 '주연 김수로'의 가능성을 발견한 작품이 됐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하지만 김수로는 이어진 <잔혹한 출근>과 <쏜다> <울학교 이티>가 나란히 흥행에 실패하면서 상승세가 한 풀 꺾였다. 김수로는 2010년대 들어 <공부의 신>과 <신사의 품격> 등 드라마 히트작은 꾸준히 나왔지만 영화에서는 이렇다 할 흥행작을 내지 못했다.

지금도 많은 대중들이 김수로를 '게임 잘하는 예능인' 정도로 생각하지만 사실 김수로는 연기에 대한 열정이 매우 강한 배우다. 특히 2011년에는 '김수로 프로젝트'를 통해 20편에 가까운 연극을 기획, 제작하며 공연계에 활기를 불어 넣기도 했다. 유명한 축구팬이기도 한 김수로는 지난 2019년 잉글랜드 프로축구 13부 리그 첼시 로버스FC의 구단주가 됐다. 김수로는 <으라차차 만수로>라는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도 여전히 첼시 로버스의 구단주로 남아있다.

흥분하면(?) 강해지는 뱀파이어 히어로
 
 김수로는 <흡혈형사 나도열>을 촬영하면서 장시간 특수렌즈를 끼고 이에 접착제를 붙이는 연기투혼을 발휘했다.

김수로는 <흡혈형사 나도열>을 촬영하면서 장시간 특수렌즈를 끼고 이에 접착제를 붙이는 연기투혼을 발휘했다. ⓒ (주)쇼박스

 
<흡혈형사 나도열>은 한국형 히어로 영화를 만들려는 기획에서 출발했다. 여기에 관객들에게 익숙한 형사물과 흡혈귀가 등장하는 뱀파이어물을 조합했고 주인공 나도열이 성적으로 흥분하면 뱀파이어로 변하면서 초능력이 생긴다는 유쾌한 설정이 더해졌다. 그리고 액션연기와 코믹연기가 두루 가능한 떠오르는 배우 김수로가 주인공 나도열 역으로 캐스팅되면서 영화가 완성됐다.

사실 허점투성이인 주인공(이 영화에서는 주인공 나도열이 비리형사로 나온다)이 우연찮은 기회에 특별한 능력을 얻게 되고 빌런의 악행을 목격하면서 히어로로 거듭난다는 설정은 여러 영화에서 흔하게 등장하는 설정이다. 하지만 <흡혈형사 나도열>은 '흡혈귀 형사'라는 설정과 김수로의 물 오른 코믹연기가 더해지면서 색다른 재미를 선사했다. 특히 나도열이 싸움에 들어가기 전 야한 동영상을 보며 기를 모으는(?) 장면은 상당히 유쾌하다.

지금은 봉준호 감독과 함께 칸 영화제와 아카데미 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을 정도로 유명한 배우가 된 조여정도 <흡혈형사 나도열>이 영화에서의 첫 번째 주연작이었다. 조여정은 <흡혈형사 나도열>에서 나도열의 여자친구 연희 역을 맡았는데 연희는 나도열이 정체를 숨기기 위해 가면으로 얼굴을 가렸음에도 나도열을 한 번에 알아본다. 연희는 후반 탁문수(손병호 분)에게 납치돼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등 히로인으로서 상당한 고초를 겪었다.

제작초기 단계부터 시리즈물로 기획됐던 <흡혈형사 나도열>은 영화가 흥행하면서 속편 제작이 본격화됐다. 하지만 주연배우 김수로의 스케줄과 제작비 등 여러 문제로 인해 속편 제작은 최종적으로 무산됐다. 김수로가 <흡혈형사 나도열> 이후 출연했던 영화들이 차례로 흥행에 실패했고 이시명 감독 역시 <흡혈형사 나도열>을 끝으로 장편영화 연출작이 없었던 점을 고려하면 결과적으로 속편 무산은 큰 아쉬움으로 남게 됐다.

하지만 <흡혈형사 나도열>은 꼭짓점 댄스라는 '위대한 유산'을 남긴 영화가 됐다. 김수로는 2006년 1월 영화 홍보차 예능프로그램 <상상플러스>에 출연해 꼭짓점 댄스를 선보였고 꼭짓점 댄스는 방송 후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당시 <흡혈형사 나도열>은 몰라도 '김수로의 꼭짓점 댄스'는 모르는 사람이 없었을 정도로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고 김수로는 2006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많은 프로그램에서 꼭짓점 댄스를 추며 인기몰이를 했다.

'명불허전' 손병호의 무르익은 악역 연기
 
 '악역 연기의 대가' 손병호는 <흡혈형사 나도열>에서도 독특한 빌런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악역 연기의 대가' 손병호는 <흡혈형사 나도열>에서도 독특한 빌런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 (주)쇼박스

 
국내외를 막론하고 형사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에서는 파트너로 등장하는 두 형사가 끈끈한 유대관계를 형성할 때가 많다. 관할검사조차도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제 멋대로 행동하는 <공공의 적>의 강철중(설경구 분)은 파트너 김형사(김정학 분)와는 농담도 주고 받으며 돈독한 사이를 유지했다. 드롭킥을 주고 받으며 첫 만남을 가졌던 <살인의 추억>의 박두만(송강호 분)과 서태윤(김상경 분)도 함께 미제사건을 쫓으면서 점점 손발이 맞아갔다.

<흡혈형사 나도열>에 등장하는 강형사(천호진 분)와 나도열은 관객들이 친형제라고 오해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매우 가까운 사이로 나온다. 서로 호형호제하는 것은 물론이고 나도열은 강형사의 아내를 '형수님', 강형사는 나도열의 애인 연희를 '제수씨'라고 매우 자연스럽게 부른다. 나도열이 뱀파이어 변신에 '흥분의 힘'과 더불어 '분노의 힘'이 있다고 알게 된 계기 역시 강형사가 탁문수 일당에게 피습을 당한 후였다.

<파이란>과 <효자동 이발사> 등에서 악역 연기를 선보이며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던 배우 손병호는 <흡혈형사 나도열>에서도 메인빌런 탁문수를 연기했다. 여느 히어로 영화의 빌런들처럼 특별한 능력이 생겨 나도열과 1대 1로 맞서 싸우진 못했지만 온갖 비열한 방법을 동원해 나도열과 주변 사람들을 괴롭힌다. 하지만 종국에는 연희를 높은 곳에서 떨어 트렸다가 분노한 나도열에 의해 목을 물어 뜯기며 최후를 맞는다.

독특한 발성과 연기톤을 앞세워 2000년대 여러 영화에 출연했던 오광록은 <흡혈형사 나도열>에서 '뱀파이어 헌터' 비오 신부를 연기했다. 나도열은 성당에서 노신부(고 김인문 분)의 소개로 비오 신부를 만난다. 비오 신부는 나도열이 뱀파이어임을 확인하고 칼을 꺼내 그를 죽이려 하지만 자신의 무고를 강력하게 주장한 나도열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보내준다. 그리고 영화 막판에는 나도열을 따라 다니면서 그의 히어로 활동을 뒤에서 조용히 돕는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흡혈형사 나도열 이시명 감독 김수로 조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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