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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기부하면 떠오르는 건 불우이웃 돕기 행사나 연말연시 모금함처럼 돈이나 물품으로 하는 활동이 전부였다. 지금 같은 기부문화가 자리 잡기 전이라 기부는 큰 기업이나 유명인 혹은 부자들이 베푸는 시혜라는 인식이었다.

20대가 되고 나서 기부에 대해 생각이 바뀐 계기가 있었는데, 내가 일하던 노인복지관에 소액이지만 해마다 금일봉을 놓고 가던 익명의 기부자가 있었다. 또박또박 쓴 손 편지에는 "젊은 시절 돈을 훔친 죄책감으로 남몰래 기부하기 시작했고, 하다 보니 남을 돕는 일에서 느끼는 즐거움이 커서 계속하고 싶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좋은 사회복지사를 꿈꾸던 시절이라 노인 특유의 손글씨가 기억에 오래 남았다. 우리는 이런 분들을 기부 천사라고 부른다.

요즘은 누구나 작은 관심만 있으면 새롭고 다양한 방법으로 기부자가 될 수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재능이나 능력을 기부할 수 있고, '퍼네이션' 같은 재미(fun)와 기부(donation)를 합성한 기부활동도 이슈다. 

10년 전 아이가 초등학생일 때, 도움이 필요한 아기들을 위해 해피빈 콩을 기부하면서, 마치 게임 실적을 쌓는 것처럼 기부에 열을 올렸다. 네이버 지식인에게 상담을 해주고, 해피빈 콩이 늘어날 때마다 기부할 생각에 방방 뛰며 즐거워했는데, 최근 '퍼네이션'이 기부문화의 트렌드가 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부동기 순위 그래프/ 자료출처 기빙코리아
 기부동기 순위 그래프/ 자료출처 기빙코리아
ⓒ 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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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기빙코리아의 기부 동기 설문조사에 따르면, 동정심이 가장 큰 이유였고 다음으로 ▲사회적 책임감  ▲개인적 행복감 ▲종교적 신념 ▲세제 혜택이 뒤를 이었다. 그러나 최근 온라인 기부 서비스의 발달로 새로운 방법의 기부문화가 조성되면서 기부 목적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빠르게 바뀌는 추세다.

이제는 굶주리고 불쌍한 아이들의 모습으로 동정심이나 죄책감을 유발해 후원을 유도하는 방식이 잘 통하지 않는다. '불쌍한 이웃 돕기' 식의 호소보다 기부를 사회에 참여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접근하는 선진국형 기부문화가 환영받는다. 

사회복지사로 나름 기부문화의 흐름에 주목해 왔지만, 최근 들어 기부문화에서 세대 차이를 확연히 느낀다. 밀레니엄 세대와 MZ 세대는 학교의 의무 봉사, 동아리 활동을 통해 어렸을 때부터 사회적 활동에 참여할 기회가 많아서인지 그만큼 자기만의 기부 색깔을 가지고 있다.

금전적인 부담에서 벗어나 '얼마'를 기부하느냐보다 '어떻게' 기부하느냐에 초점을 맞춰 일상에서 나눔을 생활화하고, 기부 프로그램이 맞으면 적극적으로 참여해 흥미와 즐거움을 찾는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열고 걷다 보면 어느새 쌓인 금액을 기부하는 앱(빅워크)이 있는가 하면 영어단어 게임을 통해 쌀을 기부할 수 있는 앱(Freerice)도 있다. 쇼핑할 때 구매 금액의 일부가 자동으로 기부되는 서비스도 진즉 나왔다.

반려견을 산책시키면서 기부할 수 있는 앱(펫핑)도 생활 속 즐거운 기부에 해당한다. 유튜브 수익금을 기부하는 '착한 유튜버'들도 증가하고 있어서 구독을 통한 기부활동도 캐주얼해 보인다.

X세대인 필자는 돈으로 하는 기부를 선호한다. 가장 오래된 시민단체이자 종교단체인 YMCA, 장학사업으로 인재를 양성하는 한국장학재단 그리고 고향에 있는 조그마한 개척교회에 꾸준히 기부하고 있다. 내가 기부하는 단체의 공통점은 궂은일을 잘하는 곳들이다.

시민운동을 120년째 하는 YMCA, 경제적 여건에 상관없이 누구나 공부할 수 있도록 돕는 한국장학재단, 시골 노인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미자립 교회. 하고 싶지만 못한 일을 묵묵히 해내고 있는 단체를 지원하는 즐거움 또한 내적 '퍼네이션'일 것이다.  

내가 기획한 기부 프로그램을 통해 기부자를 얻는 것은 큰 수확이고 보람이다. 소중한 사람들을 돕는 일에 대한 관심을 일깨우는 것, 내가 꿈꾸는 사회복지사의 역할이다. 그러자면 기부를 외치는 나부터 기부 천사가 되어야 한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자면 내가 '더 나은 사회복지사'가 되어야 한다. 모두가 즐겁게 참여하고 모두에게 보장이 되는 기부는 보편적 사회복지와 짝꿍이다. 누구나 참여하고 싶은 건강한 기부문화를 만드는 데 보탬이 되기를 오늘도 꿈꾼다.
 
김은혜 용인시가족센터 품앗이 활동가
 김은혜 용인시가족센터 품앗이 활동가
ⓒ 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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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기자명 김은혜 용인시가족센터 품앗이 활동가입니다. 이 기사는 용인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용인시민신문,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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