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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우리나라 의과대학과 수련병원에서 성소수자 의료를 전혀 교육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랍고 안타깝지만, 다시 한번 근본적인 질문에서부터 시작해보자. 의료인과 예비 의료인을 위한 성소수자 의료교육은 왜 필요한가?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에서 성소수자들이 어떻게 의료를 경험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 의뢰로 숙명여대 홍성수 교수 연구팀이 수행한, 국내 트랜스젠더 59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서 단서를 얻을 수 있다.1)
 
국내에는 성소수자를 차별하지 않으면서 적절한 의료를 제공할 수 있는 의료인
이 너무나 부족하다.
 국내에는 성소수자를 차별하지 않으면서 적절한 의료를 제공할 수 있는 의료인 이 너무나 부족하다.
ⓒ brighamandwomensfaulkne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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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부족한 성소수자 친화적 의료기관, 의료인

우리 사회에서 성소수자, 트랜스젠더는 국내 의료기관을 이용하면서 여전히 많은 어려움과 차별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이 지난 12개월 동안 성전환과 관련한 의료적 조치를 받기 위해 국내 의료기관을 이용하면서 겪은 어려움이나 차별에 관해 물었을 때, 도리어 의료진에게 성전환 관련 의료적 조치에 대해 가르쳐줘야 했던 경우가 6.2%, 모욕적인 발언이나 불필요한 질문을 들은 경우가 8.3%, 관련 상담이나 진단, 의료적 조치를 거부당한 경우가 7.4%에 달했다.

이러한 경험은 성전환 관련 의료적 조치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감기 치료나 건강검진 등 일반적 의료 이용 중에도 의료인이나 직원으로부터 접수된 이름 또는 성별이 맞는지 질문을 받았던 경험을 한 경우가 25.8%, 모욕적인 발언이나 불필요한 질문을 들었던 경우가 10.7%로 나타났다. 이러한 차별적 경험은 자연스럽게 의료 이용의 위축으로 이어지게 된다.

같은 조사에서, 지난 12개월 동안 트랜스젠더 정체성과 관련하여 국내 의료기관 방문이 필요했지만 포기한 경험이 있는 경우가 27.8%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현재 한국에서 성전환과 관련한 의료적 조치를 받기 위해서는 성주체성장애에 대한 정신과 진단을 받아야 하는데, 이를 제대로 진단해주는 정신과를 찾을 수 없어 아직 진단받지 못했다고 응답한 경우도 26.3%였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가능하면 성소수자 친화적인 의료기관을 찾아서 이용하려고 하지만 그러한 의료기관은 턱없이 부족하다. 성전환에 필요한 호르몬 처방을 받기 위해 의료기관까지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물어본 질문에 편도 1시간 이상 3시간 미만이라고 응답한 참여자가 50.8%로 가장 많았고, 3시간 이상이라고 응답한 비율도 9.6%나 되었다. 지방일수록 성소수자 친화적인 의료기관이 더 드물기에 진료를 받기 위해 먼 거리를 이동해야만 하는 것이다.

성소수자 친화적이고 전문적인 의료기관이 부족한 현실은 성소수자의 의료접근성 저하로 이어지게 된다. 호르몬 요법, 성전환 수술 등 성전환에 관련된 의료적 조치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주로 이용하는 방식을 중복 응답으로 물어본 질문에 인터넷 검색이 63.8%로 가장 많았으며, 트랜스젠더 관련 웹페이지 또는 인터넷 카페에서 찾는다는 응답이 60.6%, SNS 이용이 54.2%, 의료적 조치를 받아본 친구 또는 지인에게 물어본다는 응답이 49.9%로 그 뒤를 이었다. 병원에서 필요한 정보를 구하는 경우는 33.0%에 불과하였다.

이러한 현실은 의료정보 접근의 문제만이 아니라, 의료 이용이 제한되거나 왜곡되는 문제로까지 나아가게 된다. 위 조사에서 병원 처방 없이 호르몬제를 구매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참여자가 33.8%였는데, 정신과 진단서가 없어서가 70.8%로 가장 많았고, 31.5%가 호르몬제를 처방받을 수 있는 병원을 몰라서, 25.8%가 병원에서 불쾌한 시선을 받을까 봐 두렵기 때문이라고 응답하였다. 이렇듯 병원 처방 없이 호르몬제를 구매하는 문제는 오늘날 성소수자, 트랜스젠더가 경험하고 있는 의료 현실을 집약해서 보여준다.

평등의 적극적 옹호자인 의료인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의료인과 학생을 위한 성소수자 의료교육은 왜 필요한가? 국내에는 성소수자를 차별하지 않으면서 적절한 의료를 제공할 수 있는 의료인이 너무나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내 의과대학과 수련병원에서는 성소수자의 존재와 성소수자가 필요로 하는 의료에 대해서 전혀 교육하지 않았다. 의과대학에는 성소수자 의료 수업이나 교육과정이 없고, 내과, 가정의학과, 정신과, 산부인과, 성형외과 등 임상과 수련 과정에도 성소수자 의료 관련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소수의 의사만이 해외로 유학을 다녀오거나 독학을 통해 성소수자에게 필요한 의료를 제공하고 있다.

의료인 혹은 예비 의료인을 대상으로 성소수자 의료를 교육할 때,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가? 교육받은 의료인과 예비 의료인은 무엇을 할 수 있어야 하는가? 교육 목표가 결국 교육 내용과 방법을 결정하게 된다. 가장 기본적인 교육 목표는 의료인과 예비 의료인이 진료실에서 만나는 성소수자를 편견과 차별 없이 대하도록 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성소수자가 겪는 건강 불평등을 해소하고, 성소수자의 건강과 삶의 질을 높이는 노력에 동참하는 적극적인 옹호자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성소수자 의료교육의 시작은 일단 우리 사회에 성소수자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많은 의료인과 예비 의료인이 성소수자 환자 혹은 당사자를 거의 만난 적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성소수자는 스스로 충분히 드러내지 못하고 있을 뿐, 존재하고 살아가고 있으며 의료서비스를 필요로 한다. 2020년 미국에서 18세 이상 성인 1만5000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갤럽 조사에서 응답자의 5.6%가 자신을 성소수자로 규정하였으며, 0.6%가 트랜스젠더라고 응답하였다.2)

우리 사회에서도 성소수자가 장벽 없이 의료서비스를 마음 편히 이용할 수 있게 된다면, 의료인은 진료실에서 하루에 최소한 한 번은 성소수자 환자를 만날 수 있고, 일주일에 한 번은 트랜스젠더 환자도 만날 수 있다. 차별과 편견이 없는 진료실에서 의료인과 성소수자 환자가 서로 믿고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날을 앞당겨야 하지 않을까?

1) 홍성수 외. (2020).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 국가인권위원회.
2) https://news.gallup.com/poll/329708/lgbt-identification-rises-latest-estimate.aspx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윤현배 님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휴먼시스템의학과 교수입니다.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월간 '일터' 11월호에도 실립니다.


태그:#트랜스젠더, #성소수자, #의학_교육, #의료_교육, #반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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