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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 경남유족회는 8일 오후 창원마산 오동동 문화광장에서 합동추모제를 열었다.
 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 경남유족회는 8일 오후 창원마산 오동동 문화광장에서 합동추모제를 열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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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영령들이시여. 동족상잔의 아픔 속에 제 생을 다하지 못하고 쥐도 새도 모르게 죽임을 당한 님들의 제단 앞에 엎드려 맑은 술 한 잔 올리니 음향하시고 부디 평화로운 저승에서 안식하시길 빕니다."

8일 오후 창원마산 오동동 문화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이름이 빼곡하게 적힌 무대 펼침막 앞에 엎드려 제사를 지내며 밝힌 축문이다. 이들은 "후손들은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실규명과 명예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모든 원한 내려놓으시고 편히 영면하옵소서"라고 빌었다.

72년 전 한국전쟁 전후 경남지역에서 군인과 경찰 등 국가에 의해 희생당한 민간인들을 기리는 추모제가 열린 것이다. 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 경남유족회(회장 노치수)는 올해로 여섯 번째 합동추모제를 열었다.

이날 행사는 서봉석 가톨릭농민회 사무총장의 사회로 추모제‧추모식으로 나눠 진행되었다. 먼저 경남민예총 마산지부 춤패 '랑'이 '잃어버린 것들을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초혼무를 추었다.

이어 정연조 경남유족회 부회장이 초헌, 이재천(산청)‧강창남(거창)‧석용환(합천) 유족회장이 아헌‧종헌‧첨작으로 참여해 전통제례가 열렸다. 심우태 의령유족회장은 축문을 통해 "유족 일동은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하고 어느 하늘 아래에서 떠돌고 계시는 영령들을 위하여 조촐하나마 모여 맑은 술을 올립니다"라고 고했다.

노치수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이승만 정부가 많은 국민을 아무런 죄목과 재판 절차도 없이 경찰이나 군인을 앞세워 자국의 국민들을 가족도 모르게 산골이나 계곡, 바다에 수장 학살하여 죽임을 당하게 한 지도 어느덧 7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고 말했다.
  
이어 "전쟁이 일어나자 영장도 없이 형무소에 예비 구금시켜 죽였거나 군인들이 빨갱이라 지목하여 남녀노소를 모아 놓고 군사 작전하다시피 죽였다. 경찰이 잠깐 보자며 데려가 지금까지 소식이 없는 이도 있다. 지금까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임을 당하셨는지 잘 모르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아비를 잃은 여인이나 부모를 잃은 자식들이 연좌제의 굴레 속에 어렵게 살아오면서 하소연 한 마디 못하고 힘든 세월을 살아온 가슴 속 깊이 멍든 유족들이다"라고 했다.

이어 "죽임을 당한 자 중에는 일제의 억압 속에 독립운동을 하셨던 독립군도 계셨고, 한반도가 남북으로 갈라치는 것을 염려해 단복정부반대 또는 농지개혁 등을 외쳤던 진정한 애국자와 학생을 가르치던 선생, 농촌을 지켰던 순수 농민과 심지어 어린 고등학생이나 젖먹이 어린아이까지 빨갱이로 몰아 무차별 죽임을 당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노치수 회장은 "아직도 진실 규명을 못 한 유족들을 위해 제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구성돼 활동하고 있는데, 이번이 마지막 진실규명이라 더 많은 유족이 진실규명 되기를 바라며 철저하게 진실이 밝혀지길 기대해 본다"고 희망했다.

거창, 진주, 창녕에서 증언채록사업 진행 중
 
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 경남유족회는 8일 오후 창원마산 오동동 문화광장에서 합동추모제를 열었다.
 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 경남유족회는 8일 오후 창원마산 오동동 문화광장에서 합동추모제를 열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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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수 경남도지사는 서면으로 보낸 추모사를 통해 "잊혀 가고 있는 과거사의 진실규명에 한 걸음 나아가고자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며 "경남도는 정부와 함께 여러분들의 명예 회복과 진실규명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진부 경남도의회 의장도 서면 추모사를 통해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했다"며 "6‧25의 민족적 비극과 그때 희생되신 많은 영혼의 애통함을 잊는다면 우리는 미래를 약속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정근식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은 추모사에서 "72년 전 희생된 여러분의 명복을 빌고, 오랜 세월 동안 온갖 고통과 어려움을 감내해오신 유족께도 심심한 위로의 말씀 올린다"며 인사했다.

정 위원장은 "올해 진실화해위는 총 6곳에서 유해발굴사업을 하기로 결정하고, 현재 발굴 담당자를 공모하고 있는데 경남에서는 진주가 포함돼 있다. 거창, 진주, 창녕에서는 증언채록사업이 진행 중이다"라고 설명했다.

오는 12월 9일로 진실규명 신청이 마감되는 것과 관련해, 정 위원장은 "아직도 진실규명 신청을 하지 못한 유족들이 많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며 "여러 과제가 원만하게 해결될 수 있도록 유족께서도 힘을 보태주시면 감사하겠다"고 요청했다.

김복영 전국유족회장은 "할 일이 많다. 위령제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 시민들을 만나 알리고, 유족과 피해 사실을 찾는 끊임없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며 "우리 세대만이 아닌 이후의 세대와 함께하는, 국가폭력 없는 세상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영만 경남평화회의 상임대표는 추모제 자료집에 실린 "골로 간다, 거기가 어디죠"라는 제목의 글에서 아픈 기억을 떠올리며 "1950년 초, 한국 전쟁이 한창일 때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이후 학교에서나 동네 골목에서 동무들과 어울려 놀다 보면 별것 아닌 일로 종종 다투는 일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그때마다 너나 할 것 없이 첫마디가 '야! 네 골로 가고 싶나?'라는 말로 시비를 걸면 상대는 '어라! 네가 진짜로 골로 가고 싶나?'라고 받아치며 싸웠다. 뜻도 모르고 주고받는 아이들의 이 말싸움은 어른들의 언행을 그대로 보고 배운 것이다"라고 부연했다.

이어 "비록 어린 나이에도 그 말이 죽음을 뜻하는 말이라는 정도는 짐작할 수 있어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른들에게 '골이 어디 있어요?'라고 묻지 못했다"며 "철이 들고 나서야 이 말이 군경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을 뜻하는 은어였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정말 화가 치밀고 어처구니가 없었다"고 성토했다. 

민간인 학살사건 규명 활동을 벌인 김 대표는 "2005년 5월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이 국회에서 통과되고, 곧바로 '전국유족회'가 서울에서 발족했을 때 저도 그 자리에 참석하여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고 회상했다.

추모제 참가자들은 1960년대 유족회 표어였던 "무덤도 없는 영혼이여. 천년을 두고 울어 주리라. 조국의 산천도 고발하고 푸른 별도 증언한다"라는 말을 떠올리며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외쳤다.

태그:#한국전쟁, #민간인학살, #경남유족회, #이승만, #진실화해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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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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