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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대구지검 김천지청의 불법파견 무혐의 처분 후 대구지검 로비에서 점거 농성을 한 아사히글라스 해고자들과 지역 노동조합 활동가들.
 2017년 12월 대구지검 김천지청의 불법파견 무혐의 처분 후 대구지검 로비에서 점거 농성을 한 아사히글라스 해고자들과 지역 노동조합 활동가들.
ⓒ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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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건의 불법을 증명해내려다 우리에게는 13건의 전과가 남았다. 검찰은 증거도 다 갖고 있으면서 회사 불법파견을 무혐의 처분했다. 결국 4년 뒤 기소했지만, 불법에 맞서 우리가 불법을 감수하지 않았다면 검찰은 절대 스스로 기소하지 않았을 거다. '국민을 섬기고 봉사하는 검찰'? 본 적 없다." (차헌호 지회장)

2015년 7월, 노조를 만든 직후 해고돼 7년 2개월 째 길바닥에서 복직 투쟁을 하고 있는 차헌호(49) 금속노조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지회장은 "법은 정의도, 진실도 아니"라고 말했다. 대신 "싸워야만 확인할 수 있는 정의"라고 했다. 법전은 노조파괴나 불법파견을 불법이라 하지만, 법률가들이 불법이 아니라며 가진 자들을 보호해주는 광경을 무수히 봤다는 것이다.

단연 두드러진 기관이 검찰이었다. 지난해 회사 대표가 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불법파견은 검찰이 5년 전 무혐의라며 종결한 사건이었다. 기소 권한으로 불법을 뭉개는 모습에 분노한 해고자들이 점거와 농성으로 분노를 표현하자 다시 결론이 바뀌었지만, 여기까지 오는 데 4년의 세월이 흘렀다. 4년 동안 해고자들은 각종 농성, 집회로 16종의 전과를 남겼다.

이런 노조에 최근 선물과 같은 판결이 대구지법 김천지원 제1민사부에서 연달아 나왔다. 지난 8월 19일 "회사가 해고자 22명에게 총 64억여 원을 지급해야 한다"며 해고자 손을 들어 준 임금 손해배상 청구 1심 선고가 나왔고, 7월엔 하청업체 노동자였던 이들을 원청 회사가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2심 승소 판결도 받아냈다. 해고 7년 만에 부당해고와 불법파견이 민·형사 재판에서 모두 인정됐다.

"피해를 입고 싸우는 노동자들은 검찰·법원에서 가해자로 탈바꿈된다. 수사기관은 부당해고, 불법파견은 지켜보기만 하고 싸우는 노동자들만 신속히 수사한다. 노동법을 위반한 사장보다 집회·시위를 한 노동자에게 더 가혹한 형벌을 구형한다. 노동 사건은 당장 하루하루가 생계와 연관돼 피가 말리는 싸움인데, 노동부·검찰은 수 년 간 수사하고 법원은 수 년 간 재판한다."

차 지회장은 지난 시간 동안 체험한 사법 정의를 이렇게 요약했다. 지난 5일 경북 구미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한 차 지회장은 "악착같이 싸우지 않았으면 영영 '혐의 없음'으로 끝났을 것"이라며 노동사건이 대부분 비슷한 구조에 놓여 있다고 설명했다.

불법파견을 보고 불법 아니라 했던 검찰
 
차헌호 금속노조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지회장.
 차헌호 금속노조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지회장.
ⓒ 손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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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CD용 유리 등을 생산하는 경북 구미 소재 일본 기업 아사히글라스(현재 사명 AGC)의 부당해고 투쟁은 2015년 7월부터 시작됐다. 그해 5월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자 한 달 후 갑자기 하청업체가 폐업하면서 모두 일자리를 잃었다. 이때부터 해고자들이 아사히글라스를 노조파괴, 부당해고, 불법파견으로 노동부에 고소하면서 지금까지 7년 넘게 복직 투쟁을 하고 있다.

사안이 장기화되는데 가장 큰 영향을 준 건 검찰이었다. "수사를 지지부진하게 이끌고 무리하게 무혐의로 처분한데다 이를 바로 잡는 데만도 1년 넘는 시간을 끌었다"는 점에서다.

당시 노동부는 증거 확보로 보나, 법리로 보나 혐의 입증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불법파견을 중심으로 수사를 진행했다. 그런데 고소를 한 지 1년 6개월이 지나도 수사 결과는 감감 무소식이었다. 해고자들은 그즈음부터 거의 매일 고용노동부 구미지청으로 가 "왜 수사하지 않느냐. 구미지청장을 만나겠다"고 항의하며 직접 행동에 돌입했다.

"대화로는 도저히 안 되고 한 마디로 드러 눕는 것밖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과장실, 지청장실로 찾아가 따지기도 하고 로비에서 진도 쳤다. 먹을 밥도 싸들고 가 로비에서 점심을 먹었다. 결국 어느 날 김천지청장이 내려왔고 '노동부가 피해자를 구제하지 않으면 도대체 우리는 어디로 갈 수 있느냐'고 한참 따졌다. 그때 진짜 문제를 알게 됐다. 노동청보다 더 힘이 센 검찰이 뒤에 있었다는 점을."

그동안 노동부 근로감독관이 기소의견으로 송치해도 검찰이 보완수사를 계속 지휘해 사건을 돌려보냈던 것. 나중에 차 지회장이 확인한 건수만 5번이 넘었다.

그러다 노조의 울분이 폭발한 사건이 발생했다. 고소 후 2년 5개월 째인 2017년 12월, 사건을 맡은 대구지검 김천지청이 회사의 불법파견을 무혐의로 결론냈다. 이미 4개월 전 노동부가 기소의견으로 송치하고 회사에 직접고용 시정명령도 내린 때였다. 회사가 명령을 듣지 않자 노동부는 17억8000만 원의 과태료도 부과했다.

"그때 검사가 쓴 불기소 처분서 내용은 딱 이 한마디나 다름없었다. '술은 먹었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 노동부 수사 자료부터 원·하청 간 업무 관계가 세세히 적힌 지시서, 이메일 등 5000쪽 넘는 자료에 불법파견 정황이 다 드러나 있었는데, '그렇지만 불법파견은 아니다'라고 한 거다. 말이 안 됐다. 그 전까지 검찰은 뭔가 대단한, 우리와 다른 계급의 법 집행자인 줄 알았는데, 이때부터 생각이 바뀌었다. '얘네는 답을 정해놓고 있구나. 얘네랑은 싸워야겠구나' 하고."

무혐의 처분이 나오자마자 노조는 대구지검 앞에 천막을 치고 노숙농성에 돌입했다. 사건을 재수사해달라고 대구고검에 항고하면서 담당 검사도 직무유기로 고발했다. 비록 검사가 처벌받지 않더라도 기록으로라도 남기고 싶었다고 했다. 대구지검장에 항의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검찰청 로비에서 연좌농성도 감행했다. 이 농성은 노조가 시청이나 노동청이 아닌 검찰청에서 연좌를 한 첫 사건으로 알려졌다.

"그때 사람들이 검찰을 정말 불신한다는 걸 알게 됐다. 보수적인 구미에서 박근혜를 지지하는 사람도 우리 농성장에 김밥을 사주고 갔다. 검찰청 민원실에 가서 '빨리 해결하라'고 대신 말해 준 사람도 있다. 농성장 벽에 우리가 농성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자세히 썼더니, 시민들이 다 그걸 읽어줬다. 5개월 동안 아침, 점심, 저녁으로 마이크 들고 검찰이 잘못한 이유를 쩌렁쩌렁하게 따져 물었다."

검찰청과 직접 싸워 따낸 재수사, 4년 끝 '기소'

"노동사건 항고가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0%라고 들었다. 노동조합에서 일하는 변호사 누구도 듣거나 본 적이 없다고 했다. 특히 검찰은 잘못이 있다해도 자기 결정을 번복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그 불가능이 일어났다. 무혐의 처분이 난 지 6개월 후 대구고검이 우리 항고를 받아들였다. 재수사 명령이 나왔다."

그럼에도 2019년 2월, 김천지청이 아사히글라스를 파견법 위반으로 기소하기까진 1년이 더 걸렸다. 노조도 다시 대구지검을 규탄하며 검찰청 앞에 농성장을 차렸고, 사안이 계속 장기화되자 지검장 면담을 요구하는 로비 점거 집회까지 하게 됐다. 퇴거 불응으로 현장에서 강제 연행돼 추후 벌금형을 선고받은 사건이다.

아사히글라스 불법파견은 기소 이틀 전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에 회부됐다. 심의위는 검찰권 행사 적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취지로 외부 전문가 15명이 참여해 회부된 사건의 기소·불기소 여부 등을 결정하는 외부 기구다. 대구지검은 심의위가 기소를 권고한 직후 아사히글라스를 불법파견으로 기소했다. 차 지회장은 "검찰이 무혐의라 한 사건을 다시 기소하기 그러니 외부 기구를 이용해 명분을 쌓은 것 같다"고 말했다.
 
노조 조끼 입었다고 출입 제지한 법원

 
2021년 10월 18일 대구지법이 아사히글라스 측에 부과된 과태료를 취소하는 결정을 내자 "아사히글라스 17억 8000만원 과태료 봐주기 재판! 니가 판사냐! 불량판사 OUT" 문구가 적힌 스티커가 대구지법 청사에 붙었다.
 2021년 10월 18일 대구지법이 아사히글라스 측에 부과된 과태료를 취소하는 결정을 내자 "아사히글라스 17억 8000만원 과태료 봐주기 재판! 니가 판사냐! 불량판사 OUT" 문구가 적힌 스티커가 대구지법 청사에 붙었다.
ⓒ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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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청, 검찰을 지나 만난 또 다른 산은 법원이다. 차 지회장은 "법원에서 2명의 '불량판사'를 만났다"고 얘기했다.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2심 재판을 처음 담당했던 재판장이 그 중 하나다. 차 지회장은 "이 판사는 첫 재판부터 '이 재판은 내가 판결하기 싫다'고 대놓고 말했고 회사 측에 '(해고자들 고용할) 일자리가 있습니까?'라고도 물었다"며 "잘못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판단하면 되는 판사가 회사에 '(수습할) 돈이 없죠?'라고 묻는 건 정말 부적절했다"고 말했다.

나머지 한 명은 회사가 제기한 '노동부 과태료 취소 소송'의 1심 재판장이다. 이 판사는 지난해 10월, 하청노동자를 직접고용해야 한다는 명령을 지키지 않아 회사에 부과된 17억8000만원 과태료의 취소를 결정했다. 노동부가 과태료를 부과할 당시 수사기관, 법원 등의 판단이 분분했고, 아직 불법파견 위반과 관련한 확정(3심) 판결이 나오지 않았다는 게 주요 이유다. 여기에 검찰도 항소하지 않으면서 과태료 부과 취소가 확정됐다.

차 지회장은 "해고자 신분이지만 지금까지 교통신호를 위반해 과태료가 나오면 내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다"며 "불법을 해놓고 끝까지 버티는 회사에 과태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건 앞으로 다른 기업들도 노동청 과태료에 이렇게 다퉈보라며 법원이 직접 알려주고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차 지회장은 이 배경으로 "검사와 판사가 노동을 몰라도 너무 모르거나 이미 색안경을 끼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의 불법행위는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경제활동을 하다가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일이고, 노동자들의 불법은 우리 사회 질서를 심각히 훼손시키는 일이라는 인식이 이미 깊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노조 조끼'를 입었다는 이유로 서울남부지법 출입이 제지됐던 지난 1월 일화는 단적인 예다.
 
"법원 민원실에 판결문을 받으러 가는 길이었다. 경위들이 '구호가 적힌 조끼를 입고 출입을 할 수 없다'고 출입을 막았다. 조끼엔 '아사히글라스 불법파견 엄중처벌, 노조 할 권리 쟁취' 구호가 적혀 있었다. 집회·시위와 관련된 복장을 착용한 경우 출입을 차단한다는 내규가 이유였다. '우리는 집회를 하러 온 게 아니'라고 말했으나 '불만이 있으면 감사계 민원을 청구하라'고 하더라. 결국 보안대원 3명의 감시를 받으며 민원실에 들어가 판결문을 받아야 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차 지회장이 인권침해로 진정한 이 사안에 지난 6월 "집회나 시위 가능성이 없거나 낮은 상황에서 관련 복장을 착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제지한 건 헌법에 근거한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침해했다"며 "민원인을 과잉 제지하지 않도록 직원들에 직무교육을 실시하라"고 서울남부지법원장에 권고했다(관련기사 : '노조 조끼' 입으면 법원 출입 불가? '입을 권리' 되찾은 해고 노동자 http://omn.kr/1ztue)

회사는 '돈질'... 7년 간 쌓인 재판만 26건
 
2016년 4월, 해고노동자들이 부당해고 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구미시청 앞과 아사히글라스 앞에 설치한 농성장을 구미시청이 강제 철거하자, 철거를 막다가 다친 해고자들이 병원에서 나와 구미시청 로비 입구에 누워서 항의 농성을 벌였다.
 2016년 4월, 해고노동자들이 부당해고 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구미시청 앞과 아사히글라스 앞에 설치한 농성장을 구미시청이 강제 철거하자, 철거를 막다가 다친 해고자들이 병원에서 나와 구미시청 로비 입구에 누워서 항의 농성을 벌였다.
ⓒ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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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 싸움에서 회사의 '돈질'은 마지막 산이다. 차 지회장은 최근 승소한 임금 손해 배상 소송 1심 판결을 예로 들었다.

"부당해고가 인정돼 이 기간 중 지급하지 않은 임금 총 64억여 원을 해고자 22명에게 주라는 판결이다. 미지급시 매달 한 명 당 발생하는 이자만 290만 원 정도다. 그런데도 회사는 항소해 재판을 끌고 간다. 이미 또다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은 1·2심 모두 이겼다. 회사는 2015년 노무 자문을 구할 때부터 지난해까지 김앤장 변호사들을, 그 이후엔 태평양 변호사들을 선임해왔다. 단지 노조를 인정하기 싫어서 이렇게까지 한다. 진심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게 아니라 돈질을 하고 있다."

그는 회사가 2019년에 제기해 지금도 진행 중인 '5200만 원 손해배상 소송'도 돈질의 하나라고 비판했다. 그해 6월 아사히글라스 공장 앞에서 집회를 연 해고자들이 락카 페인트로 '법원 판결 이행', '비정규직 철폐' 등 구호를 차도에 칠한 것에 손해배상을 청구한 소송이다. 차 지회장은 "3년 간 김앤장 등 대형 로펌 전관 출신 변호사들에게 지급한 수임료만 5200만 원을 거뜬히 넘을 것"이라며 "문제의 락카칠은 아세톤으로 문지르면 쉽게 지워지고, 인건비를 포함해도 46만 원 정도면 해결된다"고 꼬집었다.

2015년부터 현재까지 아사히글라스 해고자들과 회사측이 당사자인 재판은 형사재판 17건, 민사재판 6건, 행정소송 3건 등 총 26건에 이른다. 이중 해고자들이 불법집회·농성·시위 등 이유로 유죄를 선고받은 사건은 13건(1건 항소 진행 중), 비슷한 혐의로 3건이 재판 진행 중에 있다.

회사가 불법 행위로 받는 재판은 불법파견 사건 하나다. 2015년 7월 고소된 사건은 2017년 12월에야 무혐의로 첫 검찰 처분이 났고, 2018년 5월 재수사 명령이 떨어져 2019년 2월 비로소 파견법 위반이 적용돼 재판이 시작됐다. 그리고 지난해 8월 1심에서 하라노 타케시 아사히글라스 전 대표에게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형이 선고됐다. 제조업 중에서 불법파견으로 징역형이 선고된 최초의 사례다.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나머지 9건 중 진행 중인 재판은 5건으로 대부분 민사 재판이다. 노조가 1심에서 승소한 임금 손해배상 소송은 2심이 진행 중이고, 노조가 1·2심 모두 승소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은 현재 대법원 심리가 진행 중이다. 락카칠 5200만 원 손해배상 소송은 1심이 진행 중이다.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했던 중앙노동위원회 판정을 취소해달라는 회사의 행정소송도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대구지검 김천지청의 불법파견 무혐의 처분 후 대구지검 앞에 항의방문차 모여든 아사히글라스 해고자 및 지역 노동조합 활동가들.
 대구지검 김천지청의 불법파견 무혐의 처분 후 대구지검 앞에 항의방문차 모여든 아사히글라스 해고자 및 지역 노동조합 활동가들.
ⓒ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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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아사히글라스 불법파견, #차헌호 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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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영 기자입니다. 제보 young@ohmynews.com / 카카오톡 rockyrkd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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