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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9월 8일 런던 피카딜리 서커스의 대형 스크린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추모 이미지가 걸렸다.
  2022년 9월 8일 런던 피카딜리 서커스의 대형 스크린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추모 이미지가 걸렸다.
ⓒ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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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국가 원수이자 영연방의 수장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96세로 서거했다.

영국 왕실은 8일(현지시각) '여왕이 스코틀랜드 밸모럴성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발표했다. 곧이어 왕위 계승권자인 여왕의 큰아들 찰스 왕세자가 찰스 3세로서 국왕의 자리를 이어받는다.

이날 왕실은 여왕의 건강이 우려스럽다는 의료진의 판단을 공개했다. 왕실 직계 가족들이 밸모럴성에 모였고, 영국 공영방송 BBC는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여왕의 건강 상태와 관련한 소식을 생중계로 전했다.

여왕의 건강을 우려한 시민들도 밸모럴성과 런던의 버킹엄궁 앞에 모였고, 얼마 후 서거 소식이 전해지자 눈물을 흘리며 애도했다. 

새롭게 왕위에 오르는 찰스 3세는 왕실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사랑하는 어머니, 여왕 폐하의 죽음은 나와 가족 모두에게 가장 큰 슬픔"이라며 "우리의 소중한 군주이자 많은 사랑을 받았던 어머니의 죽음을 깊이 애도한다"라고 밝혔다. 

불과 이틀 전 여왕으로부터 총리 취임 승인을 받은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도 긴급 연설에서 "영국과 세계에 큰 충격"이라며 "여왕은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줬고, 그녀의 헌신은 우리 모두의 본보기"라고 말했다.
 
2022년 9월 8일 영국 런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 공식 발표에 앞서 버킹엄궁 문 앞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2022년 9월 8일 영국 런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 공식 발표에 앞서 버킹엄궁 문 앞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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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28일 영국 찰스 왕세자가 영국 런던에 있는 BBC 본부를 떠나고 있는 모습. 그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서거하면서 영국 국왕이 된다.
 2022년 4월 28일 영국 찰스 왕세자가 영국 런던에 있는 BBC 본부를 떠나고 있는 모습. 그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서거하면서 영국 국왕이 된다.
ⓒ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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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하며 사랑 받은 여왕 

1926년 4월 21일 런던에서 엘리자베스 알렉산드라 메리 윈저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여왕의 아버지는 영화 <킹스 스피치>의 실제 주인공이자 말을 더듬었던 인물로 잘 알려진 조지 6세다.

20살이었던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겠다며 조지 6세의 허락을 받아 영국군에 입대했고, 수송 트럭을 운전하며 복무했다. 그러면서 남편이 될 필립공을 만나 결혼했다. 

당시만 해도 여왕은 큰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왕위 계승 서열 3위인 데다가 방계 공주였기 때문에 왕위에 오를 것이라는 전망은 드물었다.

그러나 큰아버지 에드워드 8세가 미국인 여성과 결혼하겠다며 왕위를 포기했고, 그 뒤를 이은 조지 6세가 1951년 갑작스럽게 서거하면서 이듬해 25세의 나이로 대관식을 치르고 왕위에 오르게 됐다. 

여왕이 즉위한 시기엔 영국의 식민지들이 속속 독립하고, 왕실의 존재감에 대한 회의론도 커지면서 왕실의 권위가 흔들렸다. 

여왕은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을 방문하며 영연방의 결속을 강화했다. 이밖에도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활발한 외교 활동을 펼쳤고, 1999년 4월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영국 국가 원수로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지난 1999년 4월 19일 김대중 대통령과 엘리자베스2세 영국여왕이 청와대에서 공식환영식을 마친 뒤 무개차를 타고 본관으로 향하고 있다.
 지난 1999년 4월 19일 김대중 대통령과 엘리자베스2세 영국여왕이 청와대에서 공식환영식을 마친 뒤 무개차를 타고 본관으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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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은 입헌군주로서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는 데 신중하면서도 적극적인 자선 활동으로 국민에게 친근하게 다가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왕실의 위상과 인기를 높였다. 

그러나 가족과 관련한 스캔들이 잦았다. 찰스 왕세자가 다이애나 왕세자빈과 결혼했다가 불화를 일으켜 이혼했고, 1997년 파파라치에 쫓기던 다이애나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왕실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2019년에는 앤드루 왕자가 성 추문에 휘말렸고, 2020년에는 해리 왕자와 할리우드 스타 메건 마클 부부가 왕실과의 불화 끝에 결별을 선언했고, 마클이 왕실에서 인종 차별을 당했다는 폭로까지 하면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격동의 시기에 왕실 지켜낸 '성공한 여왕'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서거를 보도하는 영국 <가디언> 갈무리.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서거를 보도하는 영국 <가디언> 갈무리.
ⓒ 가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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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여왕만큼은 변함없는 존경을 받으며 영국의 상징이자 정신적 지주로 버텼다. 국제사회에도 대중적인 인기와 영향력을 누렸다. 

다만 지난해 4월 남편 필립공이 먼저 세상을 떠났고, 올해 2월에는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는 등 건강이 악화됐다. 결국 공개 활동이 줄어든 여왕은 70년 214일로 영국 역사상 최장 기간 재위 기록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BBC 방송은 부고에서 "여왕의 오랜 통치는 강력한 의무감, 왕좌와 국민을 위해 일생을 바치겠다는 결의로 특정할 수 있다"라며 "여왕은 재위하는 동안 세계가 극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지켜봤지만, 영국과 영연방 사람들에게 여왕은 변치 않는 존재였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여왕은 재위하면서 윈스턴 처칠을 시작으로 최근의 트러스까지 15명의 총리를 승인했다"라며 "영국의 영향력이 쇠퇴하고, 사회가 급변하면서 군주제에 대한 의문이 드는 격동의 시기였기에 왕실을 유지한 여왕의 성공은 더욱 놀랍다"라고 전했다.

영국 유력 일간지 <가디언>도 "25세에 왕위에 오른 여왕은 수십 년에 걸친 격동의 변화 속에서도 왕정을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개인적으로 쌓아온 높은 인기는 불안했던 군주제에 안정을 줬다"라고 평가했다.

태그:#엘리자베스 2세 , #영국 여왕, #찰스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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