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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경험한 두 사례를 소개한다.

# 특수건강진단 후 판정 코드에는 C, D가 있다. 직업병 요관찰자는 C1, 직업병 유소견자는 D1(질병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기준치 이상이면 D1)에 해당한다. 특수건강진단 대상 업무에 종사하려는 노동자는 업무수행 이전에 배치 전 건강진단을 받는다. 건설업의 경우 유해인자로 소음이 포함되어 있어 청력검사는 필수인데, 결과가 D1이면 문제가 될 때가 있다. 일부 건설사에서 D1을 문제 삼아 채용에 불이익을 주기 때문이다.

D1으로 채용되었다 하더라도 후에 산재 관련해서 문제 삼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게 하는 사업장도 있다. 올해 개정된 특수건강진단 청력검사 결과 판정지침을 적용하고 있는데, 이를 따르면 D1에 해당하는 사람은 증가한다. 작년에 C1이었던 노동자의 올해 결과가 작년과 동일해도 D1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D1이라 하면 C1으로 고쳐줄 수 없냐 부탁하는 분들이 부쩍 늘었다. 어떤 건설사는 D1은 아예 채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일을 못 하게 되면 안 된다고 고쳐달라 울먹이는 분도 있지만, 결과를 조작할 순 없어 필자 역시 곤혹스럽다.

# 특수건강진단을 위해 내원하는 주물·용해 사업장(대부분 5인 혹은 10인 미만) 노동자들이 있다. 쇳물을 녹이는 데 사용되는 금속에 납이 포함되면 혈액검사를 통해 노출 정도를 파악한다. 혈중 농도가 30μg/dL 이상이면 C1이 되며 2개월마다 추적검사를 시행하고, 40μg/dL 이상이면 자체만으로 D1이 된다. 2회 연속 30 미만이 나와야 추적을 종료하지만, 대부분 C1 이상으로 나와 2개월에 한 번은 만나게 된다. 이런 만남을 4년째 이어 오고 있으니 사는 얘기를 나눌 정도로 친해진 분들도 있다.

퇴직 이후 한동안 못 뵙던 분이 얼마 전 진료실을 다시 찾았다. 퇴직 후 심심하기도 하고 아직 일을 더 할 수 있겠다 싶어 집에서 가까운 다른 주물 사업장에 입사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곳은 작업환경측정기관에서 준 측정기기를 사업주가 다 모아서 사무실에 둔다고 한다. 측정을 위해 둬야 할 곳에 두지 않고 말이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지적해도 바뀌지 않아 사업주와 한바탕 싸우고 바로 퇴사했단다. "내가 저기는 진짜 고발하겠다"면서 열을 올리고, 자기가 류마티스 질환을 앓는 것도 납 때문이라며 억울해하셔서 달래드린다고 진땀을 뺐다.
 
주물 작업 중인 노동자들. 본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주물 작업 중인 노동자들. 본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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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톨스토이의 소설이다. 주제는 역시 '사랑'이다. 사랑에 천착하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가 갈수록 각박해지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헤겔은 인간의 이성을 믿었고 역사는 정반합의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 진보한다 했다. 현재에도 사회 진보에 대한 낙관론자는 많다. 일부에서는 4차 산업혁명은 없고 3차의 연장선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4차 산업혁명과 기술진보, 인간 삶에 대한 낙관론 목소리가 높다.

정답이 무엇이든, 발전되는 기술의 현실적 구현은 보통 사람들의 노동을 통해 가능하다. 하지만 현재 인류의 역사는 노동 가치의 평가절하와 함께 '사람'은 없는, 사람을 보려고조차 않는, 보고서도 감각하지 않는 방향으로 내달리고 있다.

'사람'이 있지만 보지 않는 사람들

첫 번째 사례는 판정지침 개정이 현장 노동자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직업성 난청 D1의 확대는 채용 불안과 생계 불안을 높일 여지를 만들었다. D1 결과가 산재 승인을 반드시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난청의 경우 대부분 요양 치료가 요구되지 않아 산재 신청 시 요양급여가 아닌 장해급여를 청구한다. 장해 자체가 일상생활에서의 심한 불편감을 전제하므로 D1 중에서도 장해가 있다고 할 수 있는 D1이 산재로 승인된다. 그렇기에 직업성 난청 D1과 산재 신청 시 필요한 난청 기준은 계산법이 다르다. 지침의 개정은 근거에 기반한 것이므로 개정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의도한 바가 아니라 해도 어쨌거나 '사람'을 당혹케 하는 것은 맞다.

두 번째 사례에서 보이는 사업주의 행위는 드물 수도 있다. 그런데 측정기기를 제대로 두었다 해도 작업환경측정 결과에 대한 신뢰도는 그리 높지 않다. 필자가 담당하는 사업장 중 하나는 납에 대해 C1보다 D1이 더 많음에도 작업환경측정 결과는 언제나 정상 기준치 미만이다. 사례 속 노동자는 꾸준히 D1이 나오던 분인데 왜 치료해주지 않냐고 하소연하셨다. 납 중독에 대한 치료 기준은 무증상 시 혈중 100μg/dL 이상, 유증상 시 50μg/dL 이상이다. 그분은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아 치료 대상이 아니다. 그렇다고 노동부의 감독을 통해 노동 환경이 개선되는 것도 아니다. 작업환경측정기관의 측정행위든 노동부의 감독이든 '형식'은 반복적으로 재생산되지만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노동자 죽음에 무감각... 다른 것을 욕망하는 사람들

두 사례는 분명히 영향을 받는 '사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사람'을 감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사람'의 결핍은 중대재해처벌법이 논의ㆍ실행되는 과정에서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중대재해처벌법의 목적은 중대재해 예방을 위해 기업의 주체적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지 처벌이 아니다. 노동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열심(열심의 주체는 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이 있었다면 애초에 태어나지 않았을 법이다. 반성 없는 시간이 흘러 법이 만들어지니 기업은 엄살떨고, 편승하는 언론은 처벌에만 방점을 두며, 대형 로펌들은 새로운 수익이 생겨 신명이 났다. 처벌은 그렇게 두려워하면서 타인의 죽음은 전혀 두려운 대상이 아니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다른 것을 욕망하는 크기가 클수록 노동자의 죽음은 그만큼 '낯선 죽음'이 된다.

사람은 있으나 '사람'을 생각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모 정치인은 휠체어 시위를 하는 장애인들에게 '비문명적 관점' 운운한다. ○○ 대학 일부 학생은 청소·경비 노동자들의 시위를 불법시위로 고소했고, 시위대는 그저 시끄럽기만 한 혐오 대상이 되었다. 목숨을 건 단식투쟁도, 피할 수 있었던 숱한 노동자들의 죽음에도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무감각해져 가며 다른 것을 더욱 욕망한다. '사람'에 둔감해져 가는 모든 이들에게 진심으로 묻고 싶다. 당신은 무엇으로 사는가.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영일 님은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6월호에도 실립니다.


태그:#납_중독, #특수건강진단, #중대재해처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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