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여성 산재노동자는 노동시장 진입, 노동환경에서의 성별 격차에 이어 요양 후 복귀 과정에서 세 번째 성별 격차를 겪는다.
 여성 산재노동자는 노동시장 진입, 노동환경에서의 성별 격차에 이어 요양 후 복귀 과정에서 세 번째 성별 격차를 겪는다.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관련사진보기

 
재가요양보호사 A씨는 58세 여성이다. 약 6년간 하루 3시간씩 세 집을 방문하여 노인들을 돌봤고, 그 전에는 암 환자였던 남편을 간병했다. 석 달 전에는 담당하던 노인 고객을 휠체어에서 침대로 옮기던 중 우측 무릎의 심한 통증을 느꼈다. 결국 두 달 전 우측 반월상 연골판(무릎의 뼈와 뼈 사이에 있는 반달 모양의 무른 뼈) 파열 진단 하에 수술을 받았다.

같은 기관에 소속된 동료의 권유에 따라 산재를 신청했으나 승인이 될지는 확실치가 않다. 그는 무릎이 회복될 때까지 집에서 요양하면서 어린이집에 다니는 손자의 등·하원을 도와주고 딸과 사위가 퇴근할 때까지 간단한 집안일 정도를 하며 용돈벌이를 하고 있다. 손자를 가끔 업거나 안아줘야 하고, 가구, 방바닥 손걸레질도 한다.

무릎은 더디게 나아가지만 그래도 재가요양보호사로 일할 때만큼 아프지는 않다. 주 2회 수술받은 병원에 가서 물리치료를 받고 있고, 산재 승인 여부는 적어도 3개월은 지나야 알게 된다. 산재승인 여부와 관계없이 그는 경제적인 이유로 다시 일해야 하고, 일하고 싶다.

노동자들의 업무상질병 관련 주제 중 그동안 가장 빈번히 제기된 문제는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받기까지가 너무 어렵다'는 점이었다. 은폐하기 힘든 사망사고가 아니라면 소규모 사업장, 하청 노동자들의 산재는 신청의 문턱을 넘기가 힘들고, 질병 재해는 업무상 재해로 인지되고 신청되어, 인정받기까지 문턱이 더 높았다.

그런데 업무상질병으로 인정되더라도, 노동자의 일하는 삶은 끝이 아니다. 건강보험에서 환자 치료의 목표는 질병상태의 극복, 신체 상태의 회복에 있지만, 산재보험에서 환자 치료의 목표는 노동력의 회복에 있다. 승인 이후에도 치료, 재활과 복귀, 그리고 예방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그는 다시 일터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산재노동자 직업복귀율은 2019년 65.8%, 2020년 66.3%, 2021년 67.3%로 매년 오름세다. 이중 원직장복귀율 역시 2017년 41.6%에서 2020년 44.4%로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원직복귀율 격차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정규직의 경우 지난 2014년 43.3%에서 2018년 55.6%로 소폭 늘어난 반면, 비정규직은 2014년 39.5%에서 2018년 22.9%로 5년 전과 비교해 큰 폭으로 감소했다.

여성 산재노동자의 직장복귀율과 원직복귀율은 전체 숫자로 따로 발표된 바가 없으나 소규모 사업장, 비정규직 노동, 시간제 일자리 등이 중첩된 여성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고려하면 성별 격차 역시 심각한 수준일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에서 산재보험제도와 관련하여 젠더 차이에 초점을 둔 연구는 매우 드물며, 산업재해와 노동시장 복귀에 대한 성인지적 접근은 더욱 드물다. 2012년 연구1)는 상하지골절 및 허리질환으로 상병을 제한하여 산재 노동자가 재해 혹은 요양 종결 이후 첫 직업 복귀에 걸리는 기간이 어느 정도인지 분석하였다.

해당 연구에서 남성노동자의 1/4은 요양 종결 전이나 종결 직후 직장에 복귀하지만, 여성은 이보다 복귀율이 낮았고, 종결 이후 1년이 되는 시점에서 남성은 3/4의 노동자가 복귀하지만 여성의 직장 복귀는 절반 정도에 불과하였다.

산재보험패널조사(PSWCI)의 제1차 코호트 패널데이터2)를 이용해 2019년 수행된 연구3)에서 2012년 산재 요양이 끝난 노동자의 직업복귀(원 직장 포함) 비율(취업률)은 남성은 80% 안팎인 반면 여성은 70% 내외로 약 10%포인트 이상의 차이를 드러냈다.

해당 연구에서 재해 당시의 상용직 비율은 여성과 남성에서 유사하였으나(여성 57%, 남성 56%) 복귀한 직업에서의 비율은 여성에서 55%, 남성에서 64%로 나타나 직업 복귀율 뿐 아니라 복귀의 질도 젠더별로 차이가 큰 것으로 드러났다.

여성산재노동자의 '괜찮은 직무 복귀'가 가능하도록

한국 사회에서 많은 여성의 유급 노동은 무급노동과의 관계에 의해 조율된다. 집안을 돌보고, 아이를 양육하고, 환자를 보살펴야 하는 여성들은 이 무급노동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유급노동을 찾는다. 무급노동 부담이 큰 여성에게는 비정규, 시간제노동의 주변적 일자리가 좋은 취업처가 된다.

그러나 업무상 재해라는 사건 앞에서 이들이 택한 주변적 일자리의 낮은 노동자로서의 지위는 더욱 낮고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이동하게 될 위험을 증가시킨다. 여성 산재노동자의 직업 복귀는 노동시장 진입, 노동환경에서의 성별 격차에 이어 노동시장에 재진입할 때 드러나는 세 번째 성별 격차를 드러낸다.

업무상 재해의 인정, 치료(요양), 직업 복귀, 예방은 긴밀하게 이어져 있다. 업무상 재해로 인정돼야 재활과 직업 복귀로의 과정이 시작될 수 있고, 요양 과정이 부실하면 재활과 직업복귀를 어렵게 한다. 또 일터의 위험에 대한 예방적 조치 없는 재해인정과 직업 복귀는 재발의 위험을 해결할 수 없다.

여성노동자의 '괜찮은 직무복귀'를 위해서는 이런 과제들에 더해 성별격차라는 허들 또한 넘어야 한다. 여성노동자가 산재인정을 넘어 일하는 삶 속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무엇이 이를 어렵게 하는지에 대한 실증적인 분석과 개입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1) 박은주. 산재근로자의 첫 직업복귀기간에 관한 연구. 한국사회복지학. Vol. 64, No. 4, 2012. 11, pp. 359-381
2) 근로복지연구원에서 실시하는 산재보험패널조사(PSWCI)는 2012년 1~12월 중 요양을 종결한 산재근로자 82,493 명의 모집단에서 추출한 2,000명을 본표본으로 구축한 자료이다. 해당 자료는 5년 간의 시계열 조사를 진행하며 산재근로자의 사회경제적 상황을 살펴보고 산재보험제도의 효과성을 추정하는 연구에서 활용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한다.
3) 이정화. 산재근로자의 직업복귀 성과와 젠더 특성에 관한 종단 연구. 여성연구. 2019. Vol. 100 No. 1 pp. 227~257(http://dx.doi.org/10.33949/tws.2019.100.1.008)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정지윤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으로, 직업환경의학전문의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5월호에도 실립니다.


태그:#여성_노동자, #산재_노동자, #직업_복귀, #산재_재활
댓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모든 노동자의 건강하게 일할 권리와 안녕한 삶을 쟁취하기 위해 활동하는 단체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