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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대법원의 전경
 서울 서초구 대법원의 전경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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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동성 군인간 상호 합의하에 성관계가 이뤄지는 것만으로는 군 형법 제92조 6으로 처벌할 수 없다며 종래의 판례를 뒤집었다.

군형법 제92조 6은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규정을 통해, 동성간의 성관계를 '추행'으로 간주해서 처벌해왔다. 대법원은 2008년, 2012년 동성 간의 성관계만으로도 군형법상 추행죄가 된다는 취지로 판단한 바 있다.

"동성 성관계만으로 처벌했던 군형법 92조 6,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21일 오후 '군형법 제92조의 6'에 따라 기소된 군 간부 A씨와 B씨의 상고심 선고공판에서 "원심 판결 중 유죄부분을 파기환송"하고 사건을 고등군사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남성 군인 A와 B씨는 영외에 있는 독신자 숙소에서 동성 성관계를 맺었다는 이유로 군형법상 추행(제92조의 6) 혐의로 2017년경 기소되어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현행 법 규정이 영외에서 자발적 합의로 이뤄진 행위에도 적용된다는 이유로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고 2심인 고등군사법원 역시 1심의 판단을 유지하며 항소를 기각했다.

하지만 상고심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동성인 군인 사이의 항문성교나 그 밖에 이와 유사한 성행위가 사적 공간에서 자발적 의사 합치에 따라 이루어지는 등,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를 직접적, 구체적으로 침해한 것으로 보기 어려운 경우에는 현행 규정이 적용되지 않음"이라고 밝혔다.

전원합의체는 "동성 간의 성행위가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해는 행위(추행의 의미)라는 평가는 보편타당한 규범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워졌다"라고 평가했다.

나아가 "현행 규정의 보호법익에는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라는 전통적 보호법익과 함께 군인의 성적 자기결정권도 포함된다고 봐야 한다"라며 "군인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라는 두 가지 보호법익 중 어떤 것도 침해했다고 보기 어려운 것까지 처벌 대상으로 삼는 해석은 허용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전원합의체는 (합의하에 이뤄진 동성 성관계) 이를 처벌하는 것은 군인이라는 이유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으로써 헌법상 보장된 평등권,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라고 밝혔다.

따라서 해당 사건에 대해서도 "피고인들은 직업군인으로 같은 부대 소속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알게 된 사이이고 영외의 독신자 숙소에서 근무시간 외에 자발적 합의에 따라 성행위를 했다"라며 "의사에 반하는 행위인지 문제가 되거나 군기를 직접적, 구체적으로 침해했다는 다른 사정도 없으므로 군형법 제92조 6을 적용해 처벌할 수 없다"라고 판시했다.

하지만 '반대 의견'도 있었다. 조재연 대법관과 이동원 대법관은 "현행 규정은 행위의 강제성이나 시간과 장소 등에 관한 제한 없이 남성 군인들 사이의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처벌하는 규정이라고 보아야 한다"라며 "다수 의견의 해석은 현행 규정이 가지는 문언의 가능한 의미를 넘어 법원에 주어진 법률해석 권한의 한계를 벗어난 것이라 동의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성소수자 군인의 사생활 처벌할 수 없어... 헌재도 위헌 결정 내려야"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이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영외, 근무시간 외 동성 군인간 성관계 처벌에 관한 전원합의체 재판을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이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영외, 근무시간 외 동성 군인간 성관계 처벌에 관한 전원합의체 재판을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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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판결에 대해 대법원 관계자는 "합의에 의한 동성 간 성행위에 관하여 그 자체로 처벌가치가 있는 행위라는 평가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음을 선언하였다는 데 의의가 있다"라며 "별개 의견(3명)을 낸 대법관들을 포함하여 다수의 대법관들이 오늘날 국내외에서 동성애가 자연스러운 성적 지향의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지적하였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반대 의견에서도 현행 규정을 제한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법원의 법률해석 권한을 넘는지 여부에 대한 견해를 달리하여 기존 해석을 유지해야 한다고 했을 뿐, 동성 간 성행위를 그 자체만으로도 처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취지로 설시한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이 사건은 육군본부 중앙수사단이 2017년 초 동성애자 군인들에 대한 정보를 부적절한 방법으로 취득하고 과거의 행위를 수사해서 십 여 명의 군인 등을 기소하면서 시작됐다"라며 "다수의견(8명)에서는 이러한 수사는 군인의 사생활의 비밀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으로서 허용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라고 강조했다.

군형법 제92조의 6 폐지에 앞장서 온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대법원 선고 뒤 기자회견을 열고 "성관계의 주체가 성소수자 군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국가가 이들의 사생활을 처별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단은 이 법을 둘러싼 오랜 논쟁에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임 소장은 "헌법재판소도 조속한 시일 내에 위헌을 결정해서 지금까지 부당한 차별로 전과자가 된 성소수자 군인들이 명예를 회복할 기회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태그:#군형법제92조6, #동성애자 처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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