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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가 열리는줄 알았다. 흐드러진 벚꽃가지로 만들어진 자연터널.
▲ 수시탑계단아래 벚꽃터널 신세계가 열리는줄 알았다. 흐드러진 벚꽃가지로 만들어진 자연터널.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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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꽃이 피는 봄이 오면 흘러나오는 엄마의 노래, 올해도 반복됐다.

"나무도 봄이 되면 새 살로 물차 오르고 꽃은 피었다 지고 또 피어나는데 영물인 사람은 어찌 젊을 때로 돌아갈 줄 모른다냐. 피었다 지는 꽃보다도 더 빠른 세월이 서글프다. 너도 일만 하지 말고 꽃도 보고 새소리도 듣고 살아라. 남들은 일부러 월명산 벚꽃보러 간다더만. 내 평생 월명산 벚꽃한번 못봤다. 내 평생은 넝쿨 밑에 호박같은 인생이다."

책방을 열 때 지인들로부터 가장 큰 부러움을 샀던 것이 바로 월명산 품속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봄여름가을겨울 할 것 없이 갖가지 생물들이 피고 나는 이곳에서의 일상은 누구나 부러움을 넘어 탐심이 발동할 정도였다.

그러나 막상 책방지기인 나는 책방 운영자로의 시간이 먼저였다. 책방 문을 열고, 문 앞에 화분으로 장식하고 인스타에 사진 올리고 책방의 이벤트를 구상했다. 또 다녀간 손님들에게 감사 인사 전하고 지나가는 방문객마다 말 대접에 바빴다.

사계절 중 가장 아름다운 군산의 4월 한가운데 살면서도 막상 나와 엄마를 위한 잔치마당에 걸어가기에 인색했다. 지난 토요일 지인 아들의 결혼식이 있는 은파유원지에 사람반 꽃반의 물결이 휘몰아치는 걸 보고서야, 며칠 뒤 비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마음을 정했다. 일년 365일 열릴 책방이 먼저인가. 다시 못 볼 지금 이 순간 벚꽃 속에 엄마얼굴 먼저 담아야지.

모녀의 벚꽃 소풍, 사전 답사를 떠났습니다 

엄마의 일정을 확인차 전화를 하니 손떨림이 심해져서 침 맞는 날이라고 하셨다. 무슨 일이 있어도 다음날 우리 모녀 둘이서만 벚꽃잔치 가자고, 엄마가 노래하는 월명산 벚꽃보러 가자고 말씀드렸다. 뜻밖에 도시락을 싸가지고 가는 사람들도 있더라 하시며 소풍을 기다리는 아이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책방에 출근하자마자 오늘은 휴일이란 팻말을 내 걸고 12년지기 복실이와 일차 사전답사길에 나섰다. 무릎 관절로 긴 걸음을 걷기에 어려운 엄마와 어느 길로 산책하면 좋을까 생각하면서.

새해 첫날 해를 보았던 전망대길을 지나 군산의 이정표인 수시탑으로 안내된 좁은 산책길에 들어섰다. 와하! 군산 벚꽃을 자랑하는 관광 사진처럼 눈앞에 펼쳐진 벚꽃나무는 장관이었다.

지저귀는 산새들의 합창에 흩날리는 벚꽃잎은 무상한 춤사위를 선보이고 산 위에서 깔깔대는 여고생들의 웃음소리는 저 멀리 있던 나의 여고시절을 당겨왔다. 사진 찍느라 뒤따라오는 복실이도 잊은 채 월명의 벚꽃에 빠져 가는 곳마다 사람들에게 문자 안부를 전했다. 이 꽃 사진보고도 사무실에 있는 사람은 정말 후회할 거라고 마치 월명의 산신처럼 호령했다.

기껏해야 십여분 거리인데 책방을 열어야 한다는 핑계로 눈을 감고 살았으니 무슨 감성으로 글을 쓰고 얘기를 나눌 수 있었겠는가. 주문하는 책 표지에 꽃그림과 꽃말이 있으면 대신해서 봄을 느꼈을 뿐이었다. 아무리 글이 좋아도 몸으로 체험하여 얻는 감정만 하랴.

수시탑에 도착하니 풍경을 찍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도 한번 수시탑과 벚꽃의 장관을 담아보려고 사람들이 지나가길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 사이에 옆에 있던 월명산 숲해설가와 얘기하며 보여주는 꽃 사진을 보고 알지 못했던 꽃명도 배우고 사진을 잘 찍는 법도 배웠다. 나의 장기라면 무엇이든 열심히 듣고 배우는 거다. 카메라에 담기는 풍경의 각도를 물으면서 사람들이 없는 순간을 기다린 지 30여 분이 지났다.
 
30여분을 기다려서 찍은 나의 명품사진
▲ 월명산 수시탑과 벚꽃 30여분을 기다려서 찍은 나의 명품사진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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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벚꽃에 둘러쌓인 수시탑을 찍을 순간, 단 1분이 왔다. 월명의 수시탑은 말 그대로 군산의 발전을 기원하는 솟대와 같은 상징물이다. 바닷가 지역인 만큼 만선으로 귀환하는 나부끼는 돛의 형상 또는 타오르는 불꽃 모양을 본떴다고 일컫는다. 무엇이라 해도 지역민의 평화와 안녕을 기도하는 마음만큼은 가득할 것이다.

백여 장 이상의 사진을 찍어야 잘 나온거 한 두 개 건진다는 해설사의 말을 들으며 지인들과 인스타에 올릴 목적으로 사진 찍기에 집중했다. 동시에 오늘은 어떤 시로 어떤 글을 만날까를 고민하다 최근에 한 시를 보내주는 지인에게 사진을 보냈다. 멋진 사진 받으시고 아름다운 구절이 있는 한 시를 들려 달라고 했다. 한 시 杜鵑啼(두견이 울어)와 함께 다음 글이 왔다.

모니카 사진 솜씨가 범상함을 넘어 섰어라
흐드러진 벚꽃 수시탑을 휘감고 포옹했다
사월은 중순을 향해 시나브로 달음질치니
이렇게 좋은 날이 몇 날이나 더 이어질까?


정말 이렇게 좋은 날이 얼마나 더 이어질까. 점점 가속도로 살아가는 일상의 바퀴가 두려워 매일매일 이성의 브레이크를 연결하고 사는 날이 많아진다. 말의 속도, 생각도 속도, 행동의 속도를 조절하자고 확인의 농도가 진해진다.

특히 우연이라도 상처의 말이 나오지 않도록, 교만의 자세가 보이지 않도록, 차별의 생각이 튀어나오지 않도록 조심하고 경계한다. 그런데도 무의식 중에 만나는 다른 모습들이 나를 놀래키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경직된 일상을 한 순간에 연두부 같은 부드러움으로 마음을 말캉거리게 만든 벚꽃의 향연.

이렇게 좋은 날, 꼭 울 엄마에게도 선물해야지 
 
책방에서 바라본 수시탑과 벚꽃의 장관
▲ 수시탑의 벚꽃 치마자락 책방에서 바라본 수시탑과 벚꽃의 장관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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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이렇게 좋은 날을 울 엄마에게 꼭 보여드려야겠다. 월명의 벚꽃은 참 좋겠다. 사실은 여러 번 보았음에도 한 번도 보지 못 했다고 말하는 울 엄마의 너른 뜰을 채울 때까지 부지런히 피고 지고 하는 운명을 가졌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다시 태어나도 꽃을 닮은 여자로 태어나 맘껏 사랑받고 싶다는 엄마. 멋도 안 부리고 섬머슴 같다는 나와 다른 천상 예쁜 여자다.

낮에는 벚꽃으로 비추고 밤에는 밝은 달로 비추는 월명산의 4월에게 엎드려 감사한다. 어린이동화에선 팝콘으로 피어나고 모교인 군여고 후배들에겐 꽃반지로 채워지고 나 같은 중년의 여인에겐 함박꽃 웃음을 주는 군산의 월명 벚꽃이여, 진심으로 고맙소.

태그:#월명산, #수시탑, #벚꽃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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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희망은 어디에서 올까요. 무지개 너머에서 올까요. 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임을 알아요. 그것도 바로 내 안에. 내 몸과 오감이 부딪히는 곳곳에 있어요. 비록 여리더라도 한줄기 햇빛이 있는 곳. 작지만 정의의 씨앗이 움트기 하는 곳. 언제라도 부당함을 소리칠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일상이 주는 행복과 희망 얘기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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