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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이종성 의원실 주최 '장애인 개인예산제 도입 방안과 과제' 토론회에서 축사하고 있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이종성 의원실 주최 "장애인 개인예산제 도입 방안과 과제" 토론회에서 축사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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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또 시작이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장애인 이동권과 관련해 지난 10여일간 보여준 일련의 행적들에 대한 내 짧은 감상이다.

지난달 26일, 이준석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이동권 시위로 인한 서울 지하철 운행 지연 관련 기사와 함께 한 게시물을 게재한다. "아무리 정당한 주장도 타인의 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해 가면서 하는 경우에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장애인의 일상적 생활을 위한 이동권 투쟁이 수백만 서울 시민의 아침을 볼모로 잡는 부조리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라는 내용이었다.

글이 게재된 지 몇 시간도 되지 않아 "대선 때는 젠더로 갈라치기 하더니 이제는 장애인/비장애인으로 갈라치려는 거냐", "장애인 이동권 시위에 대한 모욕이다"라는 등의 비판적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몇 시간 만에 또 한 편의 글을 추가 게재한다. 해당 글에는 "지하철 출퇴근하는 시민들이 왜 여러분(장애인)들의 투쟁 대상이 돼야 하냐. 전장연 여러분은 스스로를 지하철을 이용하는, 그리고 여러분이 바라는 것의 비용을 세금으로 부담해야 할 시민들로부터 갈라치기하고 있는 것이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전 게시글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반박하는 차원에서 덧붙인 글이었겠지만, 여론은 도리어 더 차갑게 얼어붙는 분위기였다. 전장연에 대한 비난을 멈추고 사과하라는 네티즌들의 신랄한 비판이 이어졌다. 전장연 관계자들 또한 "이 대표의 발언 내용과 표현 방식은 명확히 인권침해적"이라며 인권위에 이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는 성명서 혹은 공식 입장을 내줄 것을 요구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이 대표의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 목소리가 나왔다. 시각장애인 당사자인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달 28일 전장연의 출근길 시위 현장에 나와 "헤아리지 못해서, 공감하지 못해서, 적절한 단어 사용으로 소통하지 못해서 정말 죄송하다. 정치권을 대표해서 사과드리겠다"라며 시위자들 앞에 무릎을 꿇고 호소했다.

뿐만 아니라 다음날 30일 오전 인수위 사무실에서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김은혜 당선자 대변인은 이준석 대표 발언에 대한 윤 당선자의 입장을 묻는 질문에서 "윤 당선자는 대선 후보 시절 장애인 이동권을 지키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공약이 이행되도록 하는 게 저희의 과제이자 의무이고, 그 마음은 변함없다"라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장애인 혐오를 멈추라는 장애인 당사자들의 요구도, 이에 동의하는 네티즌들의 비판도, 이를 인식한 국민의힘 관계자들의 선 긋기 행보도 이 대표의 '입'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나 보다. 이 대표는 논란이 불거진 이후로도 장애인 이동권 관련 게시글만 10여 개를 게재했다. 글마다 내용은 달랐지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같았다. 전장연 시위에 대한 자신의 비판은 틀리지 않았으며, 장애인 혐오를 한 적도 없으니 이에 대해 사과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었다.

지난 달 29일에는 "사과 안 한다. 뭐에 대해 사과하라는 건지 명시적으로 요구해라"라며 자신의 잘못에 대해 전혀 인정할 수 없다고 직접 '선포'하기까지 했다.

진짜 위험한 건 갈라치기 정치다
 
전장연은 이준석 대표의 '혐오발언'을 멈추라며, 이와 관련 인권위에 "위원장 성명 또는 입장을 내달라"고 요구했다.
 전장연은 이준석 대표의 "혐오발언"을 멈추라며, 이와 관련 인권위에 "위원장 성명 또는 입장을 내달라"고 요구했다.
ⓒ 신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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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며칠간 장애인 이동권과 관련해 이 대표가 남긴 '망언'이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지만, 그가 뱉은 수많은 망언 중에서도 특히나 나의 분노를 일으켰던 것은 바로 이것이다.

지난 달 26일, 이 대표는 "소수자 정치의 가장 큰 위험성은 성역을 만들고 이에 대한 단 하나의 이의도 제기하지 못하게 틀어막는다는 것에 있다"라며 소수자 성역화를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혀 동의할 수 없는 말이다. 동의/비동의 여부를 떠나서, 애초부터 이 대표는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위험한 정치를 벌이는 정치인인 이준석이 대체 무슨 자격으로 소수자 정치의 위험성에 대해 논한단 말인가.

이 대표는 당 대표 선출 때부터 '갈라치기 정치'를 펼쳐온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 대표의 이 같은 혐오 정치는 차이를 차별로 치환하고, 그 차별에 혐오를 입히는 데에 익숙한 우리나라에서 너무나도 쉽게 먹혀들었다. 일부 국민은 이 대표의 혐오 발언을 '사이다'라며 치켜세웠다. 몇몇 기성 언론들은 따옴표 저널리즘에 의존해 이 대표의 망언을 베끼기에 급급했지 이에 대한 건설적인 비판은 행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 대표 식 갈라치기 정치를 경계해야 한다. 그 이유는 이 대표가 갈라치기로 타자화하는 대상이 모두 '사회적 소수자'이기 때문이다. 대선 때는 '여성', 대선 이후에는 '장애인'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과연 이 대표의 다음 타깃이 될 약자는 또 누구인가. 그 칼끝이 어떤 이를 향하든 그 당사자들이 받게 될 상처를 생각하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나도 두렵다.

이 대표에게 대한민국 국민 중 한 사람으로서, 소수자 당사자로서, 또 수많은 소수자를 친구와 가족으로 두고 있는 내가 전한다. 당신의 정치는 틀렸다. 약자를 악자로 둔갑시키고, 비판이라는 탈을 쓰고 혐오를 관철하는 당신의 그 혐오 정치는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이 대표가 앞으로 또 어떤 망언을 하든 장애인 권리 보장을 향한 장애인들과 이들을 응원하는 사람들의 연대는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이며, 무너져서도 안 된다. 소수자의 권리 보장은 여기 찬성하냐, 반대하냐를 논하는 선택의 영역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보장돼야 하는 '당위'의 영역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너지는 것은 오히려 이준석 대표다. 이 대표가 소수자들에게 겨눴던 그 혐오와 무시에 대한 심판을 받을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다. 다시 말하건대, 정치 인생 단명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혐오 정치 제발 그만해라.

같은 정당 사람들이 하는 말도 듣지 않는 이준석 대표에게 일개 국민 한 명인 내 말이 얼마나 하찮게 들릴지 생각하면 지면이 아까워서 참을 수 없지만, 그래도 쓴다. 쓰지 않고서는 도저히 버틸 자신이 없어서, 가만히 참고만 있을 자신이 없어서.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북대신문에도 실립니다.


태그:#이준석, #전장연, #장애인이동권, #혐오정치, #국민의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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