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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국내에서는 강경화 전 장관의 국제노동기구(이하 ILO) 사무총장 선거출마가 주 관심사가 됐지만,  4월 28일 세계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날을 맞아 국제적으로 일어나는 뜨거운 움직임 중 하나는 노동안전보건 권리를 ILO가 규정하는 '노동 기본권' 중 하나로 포함시키자는 운동이다.

ILO는 1998년 '노동에서의 기본적 원칙과 권리에 관한 ILO 선언'을 발표하면서, 세계 어느 노동자라도 보장받아야 할 기본적인 노동권으로 ▲결사의 자유 ▲강제노동금지 ▲차별금지 ▲아동노동금지의 4가지 권리를 천명했다. 각각의 기본권을 구체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8개 협약이 ILO 핵심 협약이다.

한국 정부는 결사의 자유 관련 협약과 강제노동 철폐 협약을 비준하지 않아 지속적으로 문제가 되다, 2021년 4월에야 결사의 자유 관련 협약 2개와 강제노동협약을 비준하였다. 한국 정부는 여전히 핵심 협약 중 하나인 강제노동철폐 협약을 비준하지 않고 있다.

이런 ILO 노동기본권에 노동안전보건권리를 추가하고, 핵심 협약에 산업안전보건 협약을 추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2019년 ILO 창립 100주년 총회에서 나왔다. 사용자그룹 등의 반대로 당시에는 ILO '100주년 선언'에 산업안전보건이 기본권이라는 표현 대신 "양질의 일자리에 기본"이라는 표현으로 포함됐다. 대신 2019년 총회는 "ILO의 노동 기본원칙과 권리에 산업안전보건을 포함하는 제안을 가능한 한 빨리 검토할 것"을 결의했다. 이를 결정하는 총회가 2022년 6월 열린다. ILO 핵심 협약에 산업안전보건협약을 추가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이고,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민주노총 류미경 국제국장을 만나 들어보았다.

4대 기본권 8개 핵심협약이 5대 기본권으로
 
민주노총 류미경 국제국장
 민주노총 류미경 국제국장
ⓒ 류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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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안전보건 협약을 핵심 협약으로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하게 된 배경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직접적 계기는 방글라데시 라나플라자 건물 붕괴 등의 산재 참사다. 2013년 방글라데시 라나플라자 건물 붕괴로, 11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사망자는 대부분 3~8층에서 일하던 의류 노동자였다. 라나플라자는 아파트형 공장과 유사한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었고, 사고 업체는 영세 업체들이었다. 하지만 거기서 생산하던 제품은 미국이나 EU에 본사를 둔 초국적 의류브랜드에 납품되었다.

방글라데시 정부의 관리 책임이나 노동 안전 정책 문제도 중요하지만, 원청 회사들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인식이 높아졌다. 의류 소비자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이에 따라 국제적인 수준에서 원청의 책임을 묻기 위한 실효성 있고 구속력 있는 국제 기준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대두됐다.

또 하나는 ILO 내부적인 계기다. ILO의 지난 100년을 평가하고 향후 100년을 설계하자는 논의가 나오는 시점이었다. ILO 내에서 노동자를 대변해 목소리를 내는 국제노총에서 지난 100년 동안 변화한 현실에 맞도록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다시 규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기존의 ILO 협약들은 주로 고용관계가 분명한 정규직, 상용직 노동자들을 기준으로 한 경우가 많아서, 노동자들의 권리를 새롭게 규정해야 한다는 고민이 생겨났다.

디지털화, 자동화, 플랫폼 노동 확산, 기후변화 대응, 인구변화 등을 고려했을 때, 모든 일하는 사람이 고용형태와 상관없이 누려야 할 권리의 최저선이 무엇이냐를 다시 정리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 동안 기본권이라고 했던 결사, 차별철폐, 아동노동 금지, 강제노동 금지에 더해, 노동시간 최대한도 혹은 인간답게 먹고 살 수 있는 임금의 최저선, 죽지 않고 안전하게 일할 권리도 기본권으로 포함돼야 한다는 논의가 제기됐다.

이런 논의 과정에서 앞서 말한 여러 사고와 국제화된 책임 등을 고려할 때, 노동안전보건의 권리는 더 강조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게 되었고, 그래서 특별히 4대 기본권리와 원칙을 개정해 5대 원칙으로 바꾸자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ILO 총회는 3년마다 열린다. 2019년 이후, 3년 동안은 ILO이사회에서 이 건을 어떻게 다룰지 논의해왔다. 2021년 11월 이사회에서 이 건을 2022년 총회 안건으로 공식 결정했고, 인터뷰 당일인 2022년 3월 18일 열린 이사회에서 1998년의 기본권 선언을 수정해, 노동안전보건 권리를 포함한 모두 5가지의 노동기본권을 담는 안건 초안이 발표됐다. 산업안전보건과 관련된 30여개의 협약 중 어떤 협약을 핵심 협약으로 포함할 것인지는 추후 더 논의할 예정이다.

"국제노총 등 노동자 그룹은 1998년의 선언 전문을 직접 개정해, 4대 기본권을 5대 기본권으로 바꾸는 것을 추진해왔다. 그러면서 동시에 노동안전보건의 중요성을 알리는 캠페인도 세계적으로 진행했다. 최근 한국 뿐 아니라 이탈리아 등 소위 선진국에서 산재 사망이 늘어나고, 코로나 상황에서 일터에서의 건강과 안전이 얼마나 중요한지가 다시 부각되기도 했다. 코로나 시기에는 감염병도 노동안전보건 영역의 중요한 주제라는 게 새삼 알려졌고, 감염병 사망 역시 직업 관련된 재해로 보상받을 수 있도록 하는 투쟁이 세계적 이슈이기도 했다."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기본권으로 보장하라는 포스터.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기본권으로 보장하라는 포스터.
ⓒ 국제목공노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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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 관계에 실질적 영향 줄 수 있어

사실 한국에서는 이전 8개 핵심 협약 비준도 오랫동안 미뤄져 왔고, 지금까지도 다 비준하지 못한 상황이다. 노동안전보건에 대한 권리가 노동기본권으로 선언되고 관련 협약이 핵심협약이 되는 의의와 효과를 체감하기 어렵다. 류미경 국장은 그럼에도 상징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의미가 있다고 평가한다.

"핵심협약이 담고 있는 결사의 자유, 차별 금지, 아동노동과 강제노동 금지라는 일터에서의 4가지 기본 권리는 ILO 가입 국가에서는 모두 비준을 위해 노력하고, 그 정신을 실현해야 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ILO 회원국은 이 협약을 비준하지 못 했어도, 왜 못 했는지, 걸림돌이 무엇인지 등을 점검하고, 비준을 못 한 상태에서라도 국내에서 그 정신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를 보고서로 내야 한다. 핵심협약은 중요도가 높아 감시감독 체계도 다른 협약보다 강하다. 비준하고 나면 전문가위원회에 주기적으로 점검, 보고하는데 핵심협약은 3년, 나머지 협약은 5년 주기다.

또 하나의 실질적 효과가 무역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자유무역협정이든 경제협력협정이든 무역 협정 체결할 때 협정 내용에 노동이나 환경과 관련된 내용이 포함된다. 무역 파트너들이 국제 노동기준이나 국제 환경기준을 지켜가기 위한 약속을 담는 것이다. 기본인권이 무역에서 비교우위 대상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하자는 취지이다. 노동기본권이나 환경 기본 기준을 지키지 않고 싸게 생산하는 것이 무역에서 유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상징적 문구로 여겨졌는데, 점차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한-EU FTA에서 보듯 양자 간 분쟁이 되기도 한다. 지금까지는 서로 약속을 지키자는 수준이었다면 점차 더 구속력이 높아져야 한다는 논의도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무역협정에서 기준으로 삼는 게 98년 노동 기본권 선언과 핵심협약이다. 무역협정에서 무역 당사자 간에 서로 확인하고 점검하는 기본 원칙이 지금까지 4개였다면 이제 노동안전보건이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특히 이런 변화가 국제적인 공급망 내에서 좀 더 효과적으로 영향을 미치기를 기대한다. 라나 플라자 건과 연결해서 보면, 사실 동남아시아 많은 나라에서 해외투자를 유치하려고 경제자유 구역 등 노동기준이 완화된 공간에 시설을 만들고 기업들에 온갖 혜택을 준다. 이런 혜택 중 하나가 노동안전이나 환경 관련 규제 적용 제외다. 여기 들어가는 산업이 대부분 수출 주력 업종이다. 약화된 노동안전환경 기준이 이 수출품의 경쟁 우위의 조건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미국 브랜드 제품 생산을, 한국 회사가 하청을 받아, 공장을 동남아시아에서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 이 과정 전체에 안전보건에 대한 권리가 잘 보장될 수 있도록 하는 계기, 제3세계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에게 효과적인 압박이 가해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류미경 국장은 ILO 총회 통과 이상으로, 만드는 과정과 이후 의미 있는 규범으로 지속해나가기 위한 활동을 강조했다.

"국제규범이 만들어지는 게 다가 아니다. 규범을 실질적인 의미가 있도록 만들어가는 데에도 투쟁이 필요하다. 변화된 노동 환경에 맞는 새로운 협약을 만들어 가는 것도 투쟁의 일환이고, 당연하다고 생각되어 오는 기본권을 구체적인 협약을 통해 지켜가는 것도 투쟁의 일환이다.

1919년 ILO 창립 당시부터 안전하게 일할 권리는 강조돼 왔지만, 최근 자본 이동의 자유화나고용형태 다변화로 인한 규제 약화로 기본적인 생명과 안전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이번 노동안전보건권의 ILO 기본권 포함은 이런 변화된 환경을 새롭게 강조하면서,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지켜나가는 투쟁의 한 갈래로 봐야 한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치상 한국 노동조합과 노동안전보건 단체들의 역할이 크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최민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에서 발행하는 일터 4월호에도 실립니다.


태그:#ILO, #국제노동기구, #노동_기본권, #핵심_협약, #노동_안전_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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