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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이었나 보다. 코로나 시국에 서로 몸들을 사리며 전화통만 붙들고 안부를 묻던 몇몇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 기분 좋은 수다가 섞인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인근 공원 쪽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차도 불빛을 향해 뛰어들다 사고를 당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어미 고양이 속도를 따르지 못했던 녀석이 겁에 질려 냥냥 거리며 혼자 남게 되어 내가 어쩔 수 없이 어설픈 구조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냥 두고 지나가자니 찬 바람에 얼어 죽든 오가는 차에 치어 죽든 오늘부로 저 세상 고양이가 될 게 불 보듯 뻔한 일이라 뒷 일은 생각지도 않고 나선 거다. 다행히 녀석은 차도가 아닌 공원 쪽으로 달아나 주었고 근처 마트 계단 철판 사이로 숨어들었다.

한참을 쪼그려 앉아 어설픈 소리로 냥냥 거리며 꼬드겨 보아도 공포스러웠던 경험에 너무 놀라서인지 녀석은 꼼짝할 생각을 안 했다. 바람 속에서 시간만 보내며 애태웠던 기억이 난다.

쪼그려 엎드려 야옹 거리자니 무릎은 굳어 오고 이런 일로 바쁜 119에 신고를 해도 되나 어쩌나 고민하고 있을 때, 한 친구가 바짝 엎드려 철판 밑으로 손을 넣어 다행히 녀석을 구조할 수 있었다.

순순히 잡혀 주지 않고 추운 날 고생시킨 게 미안해서였을까, 아니면 이제 의지할 곳 없이 없음을 감지하고 사람의 품이라도 의지하고 싶어서였을까. 앵앵 거리고 도망가고 숨던 모습과는 달리 자꾸 품속에 파고들었다.

태어난 지 한 달이 조금 넘은 듯한 여리고 작은 솜뭉치에서 전달되는 따뜻한 체온에서 새삼 생명의 소중함이 느껴졌다. 어미 품이 그리워서였겠지만 자꾸만 품으로 파고드는 어린 것을 안고 여기저기 연락을 해봐도 맡아줄 마땅한 곳이 없었다.
 
잔뜩 겁에 질려있는 모습
▲ <작년 12월 크림이의 모습> 잔뜩 겁에 질려있는 모습
ⓒ 백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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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집으로 데리고 와서 고양이 구조 활동을 하고 계신 지인분께 연락을 드렸다. 사정은 딱하지만 이미 구조한 고양이들도 입양이 안 되어 너무 어려운 상황이라며 일단은 병원에 가서 질병 관련 기본 검사를 해서 임시 보호를 하고 있으면 입양처를 알아봐 주시겠다고 하셨다.

집에 노견을 키우고 있는 상황이라 이 녀석을 함께 키울 여건은 안 되고 앵앵거리며 자꾸 품을 파고드는 녀석이 안쓰러워 아파트 단체톡에 혹시나 사랑으로 키워주실 분이 있을까 글을 올렸다. 얼마 못 되어 인상 좋은 부부가 오셔서 잘 키워보겠다며 데리고 갔다.
  
그런데 오늘! 이쁜 녀석과 인연을 맺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며 녀석의 영상이 담긴 메시지 한 통이 날아왔다.

"크림이랑 인연 이어주셔서 감사해요. 크림이가 집에 오고 나서 집이 더욱 활기차고 화목해졌어요. 초코라는 길냥이도 한 마리 더 식구로 들였답니다."

그 녀석의 이름이 크림이 인가보다. 노르스름한 털옷을 입은 녀석에게 어울리는 크림이란 이름을 지어주려고 한참을 고민했을 주인 양반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보지 않고도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으며 지냈을지 상상이 되었다.
 
크림이라는 이쁜 이름으로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녀석
 크림이라는 이쁜 이름으로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녀석
ⓒ 백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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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맣게 잊고 있었던 일이기도 하고 죽을 뻔했던 녀석의 소식이라 참 반갑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렇게 잊지 않고 영상까지 찍어서 잘 지내고 있다는 안부를 보내주는 이웃의 마음이 따뜻하기도 해서 구조에 동참했던 동지들에게 영상을 보내주며 감동을 함께 나누었다.

매일 퍽퍽하고 우울한 뉴스만 듣고 지내다가 소소한 문자 한 통이 주는 묵직한 감동에서 아직은 살 만한 세상임을 느껴본다. 찬 바람 속에서도 성큼 다가온 봄 향기가 느껴지듯 이제 우리 마음에도 따뜻하고 희망찬 봄이 올 것 같다고 서로 격려하며 기분 좋게 오후를 마무리해본다.

덧붙이는 글 | '이슈라이프'에 일부 수정하여 중복게재.


태그:#고양이, #길냥이, #반려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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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를 만들며 기사를 쓰는 문화·예술 분야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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