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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하루는 가라, 일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노력. 시민기자 그룹 '40대챌린지'는 도전하는 40대의 모습을 다룹니다.[편집자말]
프리랜서로 일한 이후, 일이 이렇게 오래 끊기긴 처음이다. 마감도 없고 시간에 맞춰 출근할 일이 없으니 아침에 유튜브를 보거나 넷플릭스를 보는 일이 많아졌다.

프리랜서는 자기 자신이 상품이라 일이 없는 동안에도 자신의 능력을 갈고 닦아야 한다. 그걸 아는데도 일단 핸드폰을 들고 영상을 클릭하면 시간 감각이 없어진다. 한참 후에야 '어머, 시간이 이렇게 됐네' 하고 정신을 차린다. 후회와 자책을 반복하는 하루하루가 쌓이자, 안 되겠다 싶어 생각해 낸 방법이 아침에 라디오를 틀어 놓는 거였다.

무력한 일상에서 찾은 소소한 즐거움
 
라디오와 함께 하는 하루는 훨씬 촘촘하다.
 라디오와 함께 하는 하루는 훨씬 촘촘하다.
ⓒ envato ele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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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세수하고 라디오를 튼다. 라디오를 들으며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운동을 한다. 라디오에 내 일상을 얹는다. 라디오와 함께 하는 하루는 훨씬 촘촘하다. 늘어지지 않는다.

라디오를 듣다 보니 생각보다 장점이 많다. 우선 아침마다 하는 운동 시간이 지루하지 않다. 유튜브 운동 영상을 보고 따라 하는데 비슷비슷한 동작을 하면서 언제 끝나나, 하며 지루해 했다. 처음엔 40분씩 운동했는데 점점 운동 시간이 줄어들었다. 30분, 20분, 어느 날엔 스트레칭만.

라디오를 들으면서 운동하니 사연과 음악에 집중하느라 몸이 덜 고되다. 시간도 제법 잘 간다. 나의 아침 운동 시간은 다시 40분이 되었다.

오늘의 날씨와 주요 뉴스들을 일부러 찾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세상의 소식들을 전해 들으며 초등학교 5학년인 딸과 이야기한다. "오늘은 날씨가 OO하니까 옷을 이렇게 입고 가", "엄마, 이 노래 내 플레이리스트에 있는 노래야!" 하면서.

참, 깨우지 않아도 아이 스스로 라디오 소리를 듣고 일어난다. 라디오 때문에 깼다고 투덜대지만 싫진 않은 눈치다. 나오는 노래를 함께 흥얼거린다. 오늘은 라디오 퀴즈 정답을 맞히다 학교에 갔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라디오의 가장 큰 장점은 실시간 방송이라는 데 있다. 요즘 들어 가족 외에는 사람을 잘 만나지 않아 외로울 때가 많은데 라디오를 들으니 세상과 이어지는 기분이다. 나만 이런 게 아니라는 생각에 심리적 위안을 얻는다. 뉴스나 사연에 대한 실시간 문자를 들으며 공감한다. 게다가 상품을 주는 코너도 많다.

라디오를 듣다 고등학교 때의 추억이 떠올랐다. 당시 난 엽서에 사연을 써서 라디오에 자주 보냈다.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친구들에게 '이번 주에는 내 사연이 나갈 거야' 하고 호언장담했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친구들은 그냥 그러려니, 하며 웃어넘겼는데 어느 날, 그렇게 설레발을 치던 내가 아니라 같은 반 다른 친구 사연이 방송됐다. 어찌나 민망하던지. 그리고 그 친구가 받은 구두 상품권이 얼마나 부러웠던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라디오에 매일 하나씩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퀴즈 정답이건 티켓 응모건 어쨌든 하루에 하나씩. 나른한 오후 3시쯤, 아침에 듣는 라디오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 당첨자를 확인했다. 두근두근. 당첨자 리스트에 내 핸드폰 번호가 없어도 잠시 실망할 뿐, 다시 '내일은 될지도 몰라' 하며 하던 일을 한다. 라디오에 문자 보내는 일은 요즘 나의 소소한 즐거움이다.

적어도 한 번은 웃을 일이 생긴다

일주일 넘게 단순 응모 문자만 보내다가 하루는 사연을 보냈다. 비 오는 날 아침. '우산에 대한 사연 보내주세요!'란 말에 얼른 #8000번을 눌렀다. 핸드폰 창에 여태까지 응모하고 채택되지 못한 문자들이 주르륵 뜬다. '흠, 오늘은 또 다를지도 모르지'라고 생각하며 문자를 입력했다.

'고3 때 야간자율학습이 끝나고 비가 엄청 많이 오던 어느 날, 우산이 있었지만 일부러 비를 맞았다. 친구와 폭우 속에서 하하하 미친 듯 웃으며 온몸이 쫄딱 젖어 집에 갔다'는 이야기를 서둘러 작성했다.

음악과 광고가 나오는 시간 안에 써야 해 마음이 급하다. 후다닥 쓰고 한 번 수정한 뒤 전송을 눌렀다. 광고가 끝나고 사연이 소개된다. 자동우산을 펼치다 우산이 날아가 다른 사람 다리에 맞았다는 사연, 우산을 쓰고 있는데 다른 사람이 우산 안으로 뛰어 들어와 어디까지만 같이 가자고 했다는 사연 등등 다 내가 보낸 사연보다 재미있다.

'아, 오늘도 탈락이군' 하고 생각하는 찰나, '바야흐로 고3 시절. 야자를 마치고~' 으악! 내 사연이 흘러나온다. 난 세수하러 들어간 딸에게 달려가 "이거 내 사연, 내 사연이야!" 하고 소리를 질렀다. 아이와 감동의 눈빛을 교환하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사연을 들었다. 공짜로 쿠키세트를 얻었다.

끝나지 않는 코로나19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 엿가락같이 늘어지는 나른한 몸을 주체하기 힘든 사람, 아침 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내고 싶은 사람에게 아침 라디오 듣기를 추천한다. 시간 감각을 일깨워주고 쏠쏠한 정보도 주고 아이와의 대화 거리도 제공해주며 운이 좋으면 선물도 받을 수 있다. 라디오를 듣는 아침 몇 시간 동안 적어도 한 번은 웃을 일이 생긴다. 핸드폰을 많이 보면 눈이 아프지만, 라디오는 아무리 들어도 귀가 아프지 않다! 요즘 나의 아침은 라디오와 함께 촘촘하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뻔한 하루는 가라, 일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노력. 도전하는 40대의 모습을 다룹니다.
태그:##라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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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살아 갈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 나아지기를 바라며 내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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