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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하루는 가라, 일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노력. 시민기자 그룹 '40대챌린지'는 도전하는 40대의 모습을 다룹니다.[편집자말]
나는 요즘 친구나 직장동료를 만나면 내 핸드폰 화면을 보여 주며 말을 건넨다.

"이거 한번 해보지 않을래? 정말 좋은데."

핸드폰을 본 사람들은 대개 놀란다.

"왜 그래? 고장 났어?"
"아니. 핸드폰에 이런 기능이 있어. 이걸 하면 말이야…."


내 핸드폰에는 색이 없다. 핸드폰을 '흑백모드'로 설정해 두었기 때문이다. 평생 안경을 써오던 친구는 라식수술을 하고 신세계가 열렸다고 하는데, 나는 핸드폰 흑백모드를 하고 삶의 질이 달라졌다. 요즘 나는 핸드폰 흑백모드의 홍보대사가 되었다.

눈이 피로하다, 피로해

원래 나는 시력이 무척 좋은 편이었다. 학교 신체검사에서 시력검사를 하면 2.0 글자까지 다 읽었다. 친구들은 이런 나를 보고 소머즈 같다고 했다('소머즈'는 90년대 TV에서 방영되었던 외화의 주인공으로 초인적인 시력과 청력을 갖고 있다).

그랬던 내가 40대가 되자 눈이 순식간에 나빠졌다. 침침하고 글씨가 번져 보여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바늘귀에 실을 척척 끼울 줄 알았는데 지금은 매일 꼬박꼬박 루테인을 챙겨 먹는 신세가 되었다.

한때 소머즈라 불렸던 내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자연스러운 노화 현상이기도 하겠지만 결정적인 원인은 따로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책상 위에 놓인 핸드폰을 째려보았다.

핸드폰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 고민하다 몇 년 전 KBS <옥탑방의 문제아들>이라는 프로그램을 봤던 게 생각났다. 스마트폰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으로 흑백모드를 설정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내용이 나왔다. 흑백 화면은 생동감이 떨어져 금방 흥미를 잃게 돼 오래 보기 힘들다고 한다. 또한 흑백은 컬러보다 눈의 피로감을 덜어줘 시력 보호에도 도움을 준다고 했다.

지난달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핸드폰을 흑백모드로 바꿨다. 바꾼 후 삼일까지가 정말 힘들었다. 흑백인 핸드폰은 정말이지 볼 맛이 안 났다. 그래도 끝내 포기하지 않았던 건 내가 남다른 의지를 갖고 있어서가 아니라 좋은 점을 확실하게 체감했기 때문이다. 또한 일정 시간이 지나자 자연스럽게 흑백 화면에 적응이 되고 익숙해지기도 했다. 나는 지금 한 달 넘게 흑백모드로 핸드폰을 사용하고 있다.

흑백모드로 한 달 살아봤더니
 
핸드폰을 흑백모드로 설정해놓았습니다.
 핸드폰을 흑백모드로 설정해놓았습니다.
ⓒ 진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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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모드의 가장 큰 장점은 눈이 정말 편안하다는 것이다. 흑백으로 보는 핸드폰은 부담스럽지가 않다. 화면이 휘황찬란하지 않으니 눈이 덜 피곤하다. 예전에는 몰랐다. 하지만 내가 눈이 안 좋아지자 그 차이가 분명하게 느껴졌다. 눈이 한결 편안해지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며칠 전 업무상의 문제로 내가 찍었던 사진을 상대방에게 직접 보여줘야 할 일이 있었다(흑백모드인 상태로 사진을 찍어도 컬러로 저장된다). 그래서 핸드폰을 잠시 컬러모드로 바꾸었는데 화면이 눈부시고 자극적으로 느껴져 일만 마치고 얼른 흑백으로 되돌려 놓았다.

나에게 흑백모드는 마치 방음창문 같다. 흑백 화면은 조용한 곳에 있는 기분이다. 그런데 컬러로 바꾸면 방음창문을 열어놓은 것처럼 시끄럽고 정신없게 느껴진다.

물론 흑백모드로 바꾸고 핸드폰 사용시간이 확 줄지는 않았다. 하지만 핸드폰을 사용하는 영역이 조금씩 달라졌다. 나는 주로 휴식과 오락의 목적으로 유튜브, 인스타를 많이 봤다. 그런데 흑백으로 보는 이미지나 영상은 너무 지루하고 답답했다. 오히려 그보다는 텍스트 쪽으로 눈이 갔다.

전에는 핸드폰으로 텍스트를 읽는 게 힘들고 귀찮아 잘 읽지 않았다. 그런데 텍스트를 흑백 화면으로 보니 눈이 편하고 집중이 잘 돼서 훨씬 잘 읽혔다. 지금은 신문 기사나 블로그, 브런치 등의 글을 전보다 많이 읽는다. 이제는 핸드폰을 해도 시간을 낭비했다는 느낌은 덜 받는다.

이제 핸드폰과 꽤 괜찮은 사이로 지낸다

물론 불편한 점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쇼핑할 때다. 나는 평소 핸드폰으로 쇼핑을 자주 하곤 한다. 그런데 흑백 화면으로는 쇼핑하기가 힘들었다. 상품의 색깔을 글자만 보고 가늠할 수 없어 물건을 사기 어려웠다. 핸드폰으로 바로 구입하지 못하고 노트북으로 확인하고 사야 하니 불편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좋기도 했다. 충동소비를 막을 수 있었다. 노트북 앞에 앉아야 살 수 있으니 그 물건이 나한테 꼭 필요한지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다. 절차가 번거로워지자 귀찮아서 결국 안 사게 되는 물건도 많았다. 핸드폰을 흑백모드로 바꾸자 소비량이 줄었다.

올해 3학년 된 아이는 아직 핸드폰이 없어 가끔 내 핸드폰을 빌려 본다. "엄마 핸드폰 봐도 돼요?"라고 곧잘 물어보던 아이가 요새는 그런 소리를 하지 않는다. 하루는 내가 선심을 쓰듯 "심심하면 엄마 핸드폰 봐"라고 말하며 핸드폰을 줬더니 아이는 핸드폰을 다시 돌려주며 말했다.

"엄마 핸드폰 재미없어서 못 보겠어요."

이제껏 아이가 핸드폰을 거부한 일은 거의 없었다. 나는 애증의 대상이었던 핸드폰과 이제는 꽤 편안하고 괜찮은 사이로 지낸다. 나는 앞으로도 컬러모드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 핸드폰을 과하지 않고 적정하게, 헛되지 않고 유익하게 사용하는 지금이 만족스럽다.

나처럼 핸드폰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녀의 핸드폰 사용이 걱정된다면? 아이폰의 경우에는 '설정-손쉬운 사용-디스플레이 및 텍스트 크기-색상 필터'로 들어가 비활성화로 바꾸면 된다. 갤럭시도 '설정-접근성-시인성 향상-색상조정-흑백음영'을 순서대로 누르면 된다. 
 

뻔한 하루는 가라, 일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노력. 도전하는 40대의 모습을 다룹니다.
태그:#핸드폰, #흑백모드, #시력, #텍스트, #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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