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7년에 방영된 MBC 월화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는 전형적인 '신데렐라 드라마'라는 비판 속에서도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으며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특히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고 최진실이 주인공 연이 역을 맡았고 <사랑을 그대 품 안에>로 일약 센세이션을 일으킨 후 현역으로 군에 입대했던 차인표가 남자 주인공 이준희를 연기했다. <별은 내 가슴에>는 차인표의 전역 후 첫 드라마로 더욱 큰 화제를 몰고 왔다.

하지만 <별은 내 가슴에>의 진짜 주인공은 차인표가 아니었다. 남몰래 연이를 짝사랑하는 '서브' 남자 주인공 강민 역의 안재욱이 드라마 방영 이후 시청자들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고 결국 <별은 내 가슴에>는 연이와 강민의 사랑이 이어지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별은 내 가슴에>를 통해 '인생역전'을 이룬 안재욱은 최고의 만능 엔터테이너이자 중화권에서 큰 사랑을 받는 한류스타로 거듭났다.

이처럼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당초 주인공으로 내정된 인물이 아닌 제3의 인물이 대중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얻으면서 대스타로 도약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지난 2012년에 개봉했던 민규동 감독의 <내 아내의 모든 것> 역시 주인공이었던 임수정과 이선균이 아닌 카사노바 장성기를 연기한 류승룡이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극장가의 비수가라 할 수 있는 2012년5월에 개봉한 <내 아내의 모든 것>은 전국 459만 관객을 동원하며 크게 흥행했다.

극장가의 비수가라 할 수 있는 2012년5월에 개봉한 <내 아내의 모든 것>은 전국 459만 관객을 동원하며 크게 흥행했다. ⓒ (주)NEW

 
1억 배우로 성장하다

류승룡은 서울예대 연극과 90학번 출신이다. 대학 시절 1년 선배 장진과 연극배우로 활동하던 류승룡은 타악기 퍼포먼스 극단 난타의 초기 멤버로 들어가 공연에 몰두했다. 이후 류승룡은 2004년 대학동기 정재영이 주연을 맡은 장진 감독의 <아는 여자>를 통해 영화에 데뷔했다.

배우로서 류승룡의 잠재력을 알고 있던 장진 감독은 류승룡을 <박수칠 때 떠나라>와 <거룩한 계보>에서 비중 있는 역할에 캐스팅했다. 장진 감독의 영화들을 통해 얼굴을 알린 류승룡은 2007년 <별순검>, 2008년 <바람의 화원> 등에 출연하며 시청자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2010년대 들어 드라마 <개인의 취향>과 영화 <고지전>, <최종병기 활>을 통해 익숙한 얼굴이 된 류승룡은 2012년 <내 아내의 모든 것>으로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 카사노바 장성기를 연기한 류승룡은 같은 해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허균을 연기하며 1230만 관객을 모으는데 기여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그리고 2013년 1월에 개봉한 <7번 방의 선물>에서는 1280만 관객을 울리고 웃기는 순수한 연기를 선보이면서 대종상 영화제 남우주연상과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내 아내의 모든 것>과 <광해>,<7번 방의 선물>을 통해 충무로의 톱클래스 흥행배우로 올라선 류승룡은 2014년 김한민 감독의 <명량>에서 일본의 무장 구루지마를 연기하며 1760만 관객을 동원하는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그렇게 연속으로 흥행작을 배출하며 무섭게 질주하던 류승룡은 2015년부터 <손님>,<도리화가>,<염력>,<7년의 밤>이 연속으로 흥행 실패하며 슬럼프에 빠지는 듯 했다.

하지만 류승룡은 2019년 이병헌 감독의 <극한직업>으로 1620만 관객을 동원하며 송강호, 하정우에 이어 3번째로 누적관객 1억 명을 돌파했다(주연작 기준, 2020년 황정민이 4번째 1억 배우 등극). 2019년과 2020년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에서 '악의 축' 조학주를 연기했던 류승룡은 올해 디즈니플러스드라마 <무빙>에서 고통을 느끼지 않고 뛰어난 재생능력을 가진 히어로 장주원을 연기할 예정이다.

아내에게 카사노바를 선물하는 남편이라니
 
 임수정과 함께 젖소 우유를 짜는 장면.

임수정과 함께 젖소 우유를 짜는 장면. ⓒ (주)NEW

 
결혼생활이 길어진 부부들은 권태기에 빠지고 때로는 이혼을 생각하기도 한다. 그리고 <내 아내의 모든 것> 속 두현(이선균 분)처럼 비겁한 남편들은 안전한(?) 이혼을 위한 확실한 명분을 찾기도 한다. 두현은 우연한 기회에 어떤 여자든 사랑의 노예로 만들어 버리는 전설의 카사노바 장성기(류승룡 분)를 만났다. 그렇게 두현은 장성기에게 자신의 아내 정인(임수정 분)을 유혹해 달라는 '위험한' 의뢰를 한다.

젊은 시절 바닷가에서 반려견 뽀삐를 놓쳐 버린 트라우마로 누구도 사랑할 수 없게 된 장성기는 사랑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보여주기 위해 세상 여자들을 유혹하고 다닌다. 정인도 장성기의 노련함에 점점 넘어가게 되고 두현은 다른 남자를 생각하며 설레는 정인에게 질투심을 느낀다. 그토록 이혼을 원하던 두현이 예상치 못하게 정인과 두 번째 사랑에 빠진 것이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이 개봉할 당시 임수정은 강동원과 <전우치>, 고수와 <김종욱 찾기>, 현빈과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에 출연할 정도로 충무로에서 가장 잘 나가는 여성 배우 중 한 명이었다. 이선균 역시 2010년 <파스타>로 절정의 인기를 누린 후 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들며 종횡무진 활약하던 배우였다. 하지만 임수정과 이선균이라는 검증된 배우도 류승룡의 엄청난 존재감에는 가려질 수밖에 없었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을 연출한 민규동 감독은 1999년 김태용 감독과 함께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를 만들며 데뷔했고 2005년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과 2008년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2009년<오감도>를 연출했다. 2018년 위안부 할머니들이 일본 재판부에 맞선 이야기를 그린 <허스토리>를 만든 민규동 감독은 작년 이유영과 예수정이 출연한 <간호중>을 연출하며 제작자와 감독으로 꾸준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광수-이성민-오나라-정성화가 다 '우정출연'
 
 이광수(왼쪽)와 김지영은 지방 방송국 PD와 메인작가로 출연해 연인으로 발전한다.

이광수(왼쪽)와 김지영은 지방 방송국 PD와 메인작가로 출연해 연인으로 발전한다. ⓒ (주)NEW

 
<내 아내의 모든 것>에는 3명의 주인공 임수정과 이선균, 류승룡 외에 중요한 역할이나 분량을 차지하는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조연들은 모두 '우정출연'으로 엔딩 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렸다. 

정인이 고정출연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PD 역할은 <지붕 뚫고 하이킥>과 <런닝맨>으로 조금씩 이름을 알리고 있던 이광수가 맡았고, 작가 역할은 <전원일기>의 복길이로 유명한 김지영이 연기했다. 

두현이 다니는 건축회사에도 관객들에게 낯익은 얼굴들이 많이 등장한다. <공작>에서 북한 대외경제위원회 처장 리명운, <남산의 부장들>에서 한국 대통령을 연기했던 이성민은 두현의 상사 나이사 역을 맡았다. 영화 <해바라기>에 출연했던 김정태는 두현의 동기 박광식 역을 맡았다. 이 밖에 오나라는 장성기의 스토커 중 한 명으로 출연해 두현에게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영화의 초반과 후반 신문배달부로 등장하는 정성화는 영화에서 나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카메오였다. 개그맨에서 뮤지컬배우로 변신한 정성화는 윤제균 감독의 신작 <영웅>에서 안중근 의사를 연기할 예정이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 민규동 감독 류승룡 임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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