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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전국의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서울 중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아래 민주노총)에서 건설현장에서 발생하는 부실공사에 대해 폭로했다.
 25일 전국의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서울 중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아래 민주노총)에서 건설현장에서 발생하는 부실공사에 대해 폭로했다.
ⓒ 신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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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일했던 현장의 지지대가 무너져 사고를 당했습니다. 인명사고가 없어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래서 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 사고를 보고 놀라지 않았습니다. 현장 노동자들이라면 비슷한 사고 한두 번은 다 겪어봤기 때문입니다."

건설현장에서 34년째 콘크리트를 평탄하게 다지는 일을 하는 타설 노동자 복기수씨가 말했다. 건설·산업 현장의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이틀 앞둔 25일 오전, 전국의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서울 중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아래 민주노총)에서 열린 '공기단축이 부르는 아파트 건설현장 중노동과 부실공사 증언대회'에서 건설현장의 부실 공사에 대해 폭로했다. 

철근을 쌓고 형틀을 만들고 알류미늄폼으로 기둥·벽체의 형상을 만들고, 이를 해체·정리하는 건설노동자 5명은 부실공사의 원인을 '공사기간 단축'에서 찾았다. 원청인 건설사가 무리하게 요구한 공사기간을 맞추려면 부실시공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공기단축이 재하청구조, 안전관리 부실과 맞물려 반복적으로 재해를 일으키고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형틀노동자 윤승재씨는 "공사 기간을 단축하다 보면 콘크리트 강도 저하 등 품질관리에 문제가 생긴다. 무리하게 공사를 진행하다 균열이 가도 망치로 긁어내거나 콘크리트 물을 부어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라면서 "하지만 건설사는 공사기간만 단축된다면 무슨 짓이든 한다. 모두 건설사 이득을 위해 현장에서 관행적으로 묵인되는 일"이라고 증언했다. 

알류미늄폼을 다루는 노동자 김훈씨 역시 "원청(시공사)은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하루라도 빨리 공정을 앞당기라고 재촉한다"라며 "안전을 위해 콘크리트를 강도 70%까지 굳히려면 적어도 28일간은 거푸집을 설치해야 하는데, 현장에서는 3개 거푸집을 12일 안에 작업하도록 한다"라고 밝혔다. 

건설의 기초작업인 토목공사부터 철근·콘크리트 작업, 전기 설비 등 후속공정 모두 안전 대신 공사기간을 단축하는데 초점이 맞춰진다는 것이다.

강한수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위원회 위원장은 "우리나라는 선분양제도로 짜여진 공사기간을 맞춰야 해서 원청인 시공사도 여러 이유로 공사기간이 줄어들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라며 "토목공사가 두 달 지연돼도 전체 공사기간은 절대 지연되지 않는다. 결국 후속 작업이 빨리, 대충 진행된다"라고 지적했다. 

이 자리에선 불법 하도급 구조 속에서 무리하게 비용을 절감하다가 문제가 발생한다는 증언도 나왔다.

타설 노동자인 복씨는 "원청이 하도급을 주려고 타설전문업체들의 타설 오야지(이사)들을 불러 입찰을 받는데, 1㎥당 1만~1만5000원을 받아야 하는 단가를 7500~8500원으로 말도 안 되게 낮은 단가를 내 낙찰받는다"라며 "공사비가 깎이고 깎이면서 8~9명을 한 팀으로 운영해야 하는 타설 작업에 5~6명만 투입하는 일도 많다"라고 밝혔다. 

"공사기간 단축... 노동자 위협으로 이어져"
 
건설노조는 알류미늄폼 '받아치기'를 하는 노동자의 1시간당 소모하는 평균 칼로리는 134㎉로 사무직 노동자의 5.86배라고 밝혔다.
 건설노조는 알류미늄폼 "받아치기"를 하는 노동자의 1시간당 소모하는 평균 칼로리는 134㎉로 사무직 노동자의 5.86배라고 밝혔다.
ⓒ 건설노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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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노조는 공사기간 단축, 불법 하도급 구조 등이 결국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위협한다면서 아파트 골조(본층) 신축 현장의 노동자 10명 중 7명은 과도한 중노동에 시달리고 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건설노조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지난해 5~7월 아파트 골조 현장 알폼 노동자 44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들의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9.65시간이었다. 한국인(9.06시간)보다 중국인(9.48시간), 베트남인(10.28시간) 등 외국인 노동자의 노동시간은 더 길었다. 

이들은 본층 작업 시 사용되는 형틀을 1m이상 들어 올리는 알류미늄폼 '받아치기'를 하는 노동자가 1시간당 소모하는 평균 칼로리는 134㎉로 사무직 노동자의 5.86배, 완성차 제조업 노동자의 2.71배 많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평균 과로지수(최대 적정 노동시간 대비 실제 노동시간)가 1.5로 집계됐다며, 노동시간을 33% 가량 줄여 하루 7.35시간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건설노동자들은 단기적으로 안전보건공단 등의 '불시 현장점검'이 건설현장의 부실 공사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거푸집 해체노동자 이승환씨는 "국토부·노동부·시청에서는 예정된 점검만 한다. 이렇게 되면 콘크리트가 비어 있는 곳에 자루를 쑤셔 넣고 콘크리트를 부어 눈속임한다. 겉만 번지르르하게 꾸며두는 것"이라며 "불시점검이 필요하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 건설현장에도 변화가 생길까. 오는 27일 시행을 앞둔 중대재해처벌법은 노동자 사망 등 중대한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와 경영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건설 노동자들은 현장에 여전히 안전불감증이 만연해 있다고 전했다. 이씨는 "건설회사들은 안전 조치를 하는 대신 장기간 휴가를 주면서 '중대재해처벌법 1호만 피하자'며 꼼수만 부리고 있다"라고 말했다. 

태그:#건설노동자, #중대재해처벌법, #광주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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