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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농어촌문제와 농어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논의가 20대 대선을 앞두고 활발하게 전개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나는 농어촌문제에 대한 해답으로서 농어촌주민에게 1인당 월 30만 원의 '국토・환경・문화・지역 지킴이 수당'을 지급하고, 농업문제 해결책으로 농업의 공익기여직불을 대폭 확대(현재 2.4조 원에서 차기 정부 말까지 8조 원)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것은 '국민총행복과 농산어촌개벽 대행진'에서 제시한 3강・5략의 일부분이다.

나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농민기본소득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의 몇 사람이 반론을 제기하였다. 나는 이들의 주장에 대해 재반론을 할 생각은 없지만, 내 주장에 대해 오해 혹은 잘못 이해하는 부분에 대해 보충 설명을 하고자 한다.

'운동본부' 사람들의 글이 모두 동일하지는 않지만, 나의 첫 번째 느낌은 기본소득 혹은 농민기본소득에 대한 일종의 종교적 신념을 갖고 있는 듯하다. 농민기본소득으로 오늘 우리의 농업문제나 농촌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거나 농민기본소득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믿는 것 같다.

기본소득은 하나의 정책 아이디어이지 신념의 문제는 아니다. 세계적으로 불평등이 심화하면서 기본소득이 하나의 대안으로 활발하게 논의되는 것은 바람직하다. 나는 기본소득이 지향하는 가치("재산이나 소득이 많든 적든, 일을 하든 안 하든 정부가 모든 국민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며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해 모두에게 지급하는 돈")를 존중한다.

아마도 이러한 가치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것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여러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많은 논쟁이 있는 것이다. 불평등 연구의 권위자인 토마 피케티조차 "기본소득이라는 단어는 마치 그것이 모든 복지와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 같은 뉘앙스를 지니지만 단지 최소한의 기초생활비일 뿐"(2020년 6월 10일 KBS 인터뷰)이라 하고 기본소득보다는 모든 사람에게 최저소득을 보장하자고 주장하였다(당연히 부자에게는 지급할 필요가 없다).

기본소득 논의에 관한 한 우리나라가 어느 나라보다 앞선 선진국이다. 그렇지만 여론조사에 의하면 아직 국민 다수는 기본소득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연구와 논쟁을 기대한다.

농민기본소득의 의의

농민기본소득도 하나의 정책 아이디어이지 신념의 문제가 아니다. 농민기본소득이 농민・농업・농촌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정책은 더더욱 아니다. 농민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거는 대체로 세 가지다.

첫째, 농민의 심각한 소득 양극화 해소에 도움이 된다. 둘째, 자원 수탈형 농업에서 생태 순환적 농업으로의 전환에 도움이 될 것이다. 셋째, 소득문제 부담이 줄어 농민의 자유로운 활동이 가능할 것이다.

농민기본소득이 실시되면 아마도 이러한 효과를 어느 정도는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한 마디로 "기본소득이 부여하는 실질적 자유, 당면한 농민·농업·농촌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자신"할 일은 아니다.

첫째, 농민기본소득은 소득 양극화 해소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월 소득 100만 원인 농민과 1천만 원인 농민이 있다고 하자. 그들의 소득 차이는 10배다. 만약 월 30만 원의 농민기본소득이 주어진다면, 소득이 각각 130만 원과 1030만 원으로 소득격차는 7.9배로 줄어들지만 여전히 900만 원의 소득격차가 있다.

물론 30만 원의 효용이 월 100만 원인 농민에게 더 크겠지만 만약 양극화 해소만을 고려한다면 모든 농민에게 30만 원을 주는 것보다 100만 원 소득의 농민에게 100만 원을 더 주어 200만 원 소득으로 만들어줄 방안을 고민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둘째, 생태 순환적 농업으로의 전환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농민기본소득은 생태농업을 전제로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농민이 굳이 농약과 화학비료에 의존하는 관행농업을 포기하고, 힘은 들지만 소득은 적은 생태농업으로 전환할 이유가 없다.

셋째, 농민기본소득으로 농민이 소득문제에서 자유롭게 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월 30만 원의 농민기본소득이 주어진다면, 농업종사자를 2인으로 본다면 월 60만 원, 연 720만 원이 생겨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으로 소득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진다고 할 수는 없다.

2020년 농가 호당 연평균 소득 4503만 원 그리고 도시근로자 가구당 평균소득 6744만 원(3인 이하 가구)에 어느 정도라도 근접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정도의 농업소득을 올리지 않으면 안 된다.

농민기본소득의 한계

이러한 한계는 있지만 농민기본소득이 농민과 농촌에 적지 않은 도움은 될 것으로 본다. 따라서 나는 농민기본소득에 반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농민기본소득이 가져올 세 가지 문제점('무늬만 농민'의 양산, 농지가격 및 임차료 상승, 한 동네 이웃 간의 갈등)에 대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것을 "공익형 직불제 도입 당시에도 많은 논란이 있었고 지속적인 제도 보완을 통해 문제점을 최소화시키고 있기 때문에 사실 제도 자체를 위협할 만한 요소가 되지 않고 있다"('지방소멸'이라는 하나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 http://omn.kr/1wwar)고 퉁칠 일은 아니다. 지자체의 농정 당국자는 내가 지적한 문제 때문에 농민기본소득을 시행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공익형 직불제는 쌀소득보전직불제를 약간 변형한 것이기 때문에 제도 도입에 대한 부작용이나 반발이 거의 없었다. 농민수당 도입 시에도 무늬만 농민과 비농민의 반발 등 부작용에 대한 논란이 있었지만, 농민수당이 농가당 60-80만 원이었기 때문에 그런대로 넘어간 것이다.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의 한 밭에서 농민들이 월동무를 수확하고 있다. 2021.12.22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의 한 밭에서 농민들이 월동무를 수확하고 있다. 2021.12.22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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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농민 1인당 월 30만 원의 기본소득이 주어진다면 사정은 전혀 달라진다. 예를 들어, 현행법상 300평의 땅을 구입해서 적당히 농사를 지으면서 법적으로 농업인이 되었다고 하자. 300평 구입에 필요한 자금은 평당 10만 원이면 3000만 원이다. 이 돈을 은행에 넣으면 연 60만 원(2%이자 기준)이 나온다.

그런데 농업인 되어 부부가 농사를 짓는다고 하면 연간 720만 원의 기본소득이 나온다. 여기에 땅은 정직해서 땅값이 오른다. 일석이조다. 농업인이 되고자 하는 유혹을 어떻게 떨칠 수 있을 것인가.

더구나 같은 동네에 사는 은퇴 농민이 있다. 가난하지만 농민이 아니기 때문에 기본소득을 받을 수 없다. 농촌문화예술 활동에 관심이 있어 귀촌한 청년은 농사를 짓지 않아 기본소득을 받지 못한다. 그런데 옆집은 농사도 많이 짓지만 기본소득까지 연간 720만 혹은 1천만 원(3인이라면)을 받는다. 나는 이런 농촌동네를 상상조차 하기 싫다.

농촌주민수당의 효과

농촌주민수당은 이러한 문제를 야기하지 않으면서 농업문제와 농촌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려고 하는 것이다. 농촌주민수당은 농업종사자뿐 아니라 농가 세대원 모두에게 그리고 더 나아가 농촌의 비농민에게도 1인당 월 30만 원을 주자는 것이다. 농민기본소득론자들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

농민기본소득론자들이 기대하는 효과는 농촌주민수당도 잘 발휘할 수 있다. 오히려 농업종사자 뿐 아니라(농민기본소득은 농업종사자에게만 주는 것이 맞다) 농가 세대원 모두에게 주자는 것이니 환영해야 할 것이 아닌가.

다만, 도시 지역을 비롯해 일부 지역의 농민들이 소외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인구 100만이 넘는 대도시인 고양시에 5179호의 농가(전업농가 1917호, 겸업농가 3262호)가 있다. 한편 곡성군 인구는 2만 7535명인데 농가인구는 1만 662호에 지나지 않는다. 농촌주민수당을 지급하는 경우 곡성군은 곡성읍(인구 7788명)을 제외한 10개 면 전체 인구 2만 명이 우선 대상이 된다(가장 큰 옥과면의 인구가 4천 명에 지나지 않는다). 농촌주민수당은 인구 1만 명 미만의 읍면동 가운데 인구감소 지역을 대상으로 고려하기 때문에 곡성읍 주민조차 농촌주민수당 지급 대상이 될 수 있다(곡성읍의 인구는 2016년 12월 8343명에서 2021년 12월 7788명으로 감소).

자, 이제는 선택의 시간이다. 고양시와 같은 대도시의 농민(상당수는 땅값이 비싸기 때문에 상당한 자산을 보유하고 있을 것)을 위해 농민기본소득으로 할 것이냐 아니면 곡성군의 농가(1만 662명)뿐 아니라 비농민(1700명)을 포함해 곡성군민 모두에게 1인당 월 30만 원을 지급할 것인가. 고양시와 같은 도시 농민에 대해서는 현재 각 지자체가 지급하는 농민수당을 인상해서 지급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농촌주민수당을 지급하면 농민수당은 따로 지급할 필요가 없다.

농민기본소득이 아니라 농촌주민수당을 지급하는 경우 그 대상이 늘어나니(2-3배) 재정부담이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니 농민기본소득부터 먼저 하자고 주장할 수 있지만, 농민기본소득의 문제점이 해결되지 않는 한 이러한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그리고 농민들이 겪는 어려움은 비단 소득만이 아니다. 의료·교육·교통·돌봄·문화 등 기본적 사회서비스가 부족하다. 그 이유는 농촌에 사는 사람이 적기 때문이다. 농촌 사람 가운데 농민은 절반이 되지 않는다. 농촌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농민뿐 아니라 비농민의 생활도 안정되어야 한다.

예산 타령은 기획재정부 관료가 할 얘기지 사회 변화를 바라는 운동가가 할 얘기는 아니다. 농촌주민수당에 필요한 예산은 재정당국을 설득하여 농촌관련 예산을 늘리거나, 그것이 어렵다면 정부 모든 부처와 지자체의 기존의 지역개발관련예산(SOC 포함)을 조정해서 조달할 수 있다. 물론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걸 하는 게 정치다.

공익형 직불과는 다른 농업공익기여직불

다음으로 농업공익기여지불에 대한 오해에 답해보자. 농민기본소득론자들은 현행 공익형 직불이 면적 기준이라 대농 중심이라고 비판한다. 이것은 맞다. 현행 공익형 직불은 무늬만 공익형이다. 면적 중심의 쌀소득보전직불을 약간 변형한 것이다.

그러나 농업공익기여지불은 현행 공익형 직불과는 전혀 다르다. 공익기여지불은 기본형과 선택형으로 나눈다. 기본형은 지금의 공익형 직불처럼 면적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왜냐하면 농업의 공익적 가치 가운데 식량생산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공익기여지불을 현행 2.4조 원에서 다음 정부에서 8조 원까지 늘리자고 하는데, 이는 기본형보다는 선택형을 늘리자는 것이다. 물론 기본형 직불도 조금 늘어날 것이다. 선택형 직불은 환경 및 생태적 가치를 중시한다. 따라서 이것은 반드시 규모에 비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규모에 역행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대규모 공장식 축산농가의 경우 선택형 직불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반면에 소규모의 친환경 축산 농가는 선택형 직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유기축산으로 한우를 하는 경우 30두 내외가 바람직하다고 한다. 그렇지만 30두로는 소득이 불충분하기 때문에 규모를 늘리고 싶은 유혹이 생긴다. 이들에게 친환경축산직불이 주어진다면 유기축산을 유지하는데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경종농업에서도 친환경직불은 대규모 농가보다는 소규모 농가에게 더 도움이 될 것이다. 무분별하게 늘어나는 대형 비닐하우스 농사를 억제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소규모 농가가 농사를 지으며 토종종자를 보존한다든지, 생물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조류 서식지 보호, 둠벙(웅덩이) 유지 등 다양한 활동을 한다든지, 사회적 농업을 한다든지, 동물복지 축산을 한다든지, 조건 불리 지역이나 한계농지 영농을 한다든지 등,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증진시키기 위한 다양한 활동에 대한 보상이 가능하다.

공익기여지불이 모든 농민에게 똑같이 주어지지는 않지만, 현행 공익형 직불처럼 대농에게 편중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화석연료 의존형 농업으로부터 생태친화적 농업으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농민기본소득보다 농업의 공익기여지불이 훨씬 효과적이다.

그리고 농업공익기여지불의 경우 그 재원의 상당 부분을 현재 대농 중심으로 주어지는 생산보조금을 줄여서 마련한다. 생산보조금이야말로 농촌 환경 파괴와 농민 양극화를 초래한 주범이다. 이것만으로도 양극화 해소에 상당히 도움이 될 것이다. 이미 주고 있는 보조금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그러한 생산보조금은 줄이고 그 돈을 공익기여지불에 사용하는 것이니 반발이 있을 수 없다.

농촌주민수당, '농촌' 살리려는 정책

농촌주민수당을 '소멸위험지역주민수당'이라고 한 것에 대한 비판이 있다. 나는 지역소멸이란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지역은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는 한 소멸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지역소멸론'이 숨기고 있는 음모다. 지역소멸을 염려하는 사람들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지역소멸대응방안으로 제시되는 '압축도시', '메가시티' 주장은 어차피 소멸될 지역에 투자할 것이 아니라 특정 지역에 투자를 집중할 것을 제안한다. 지역소멸을 부추기는 주장이다.

지역소멸대응의 핵심은 지역의 모세혈관인 '농촌' 지역을 살려내는 것이다. 농촌주민수당이라고 하지 않은 것은 농촌을 행정구역으로 특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역소멸이란 말이 사람들에게 익숙하니 그에 기대어 '소멸위험지역'이란 말을 사용했는데, 용어가 적당치 않으면 논의해서 고치면 된다. 그것이 나를 비판할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인구가 줄어 지역사회 유지조차 어려운 지역들을 살려내기 위해서는 산업단지 유치니 관광객 유치니 농어촌마을 종합개발이니 해서 지역개발에 쓸데없는 돈을 쓰지 말고 그러한 지역에 실제로 거주하는 모든 주민들에게 '국토・환경・문화・지역 지킴이 수당'을 개별로 직접 지급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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