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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중앙일보> 온라인 판에 실린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칼럼
 지난 26일 <중앙일보> 온라인 판에 실린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칼럼
ⓒ 중앙일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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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8월 26일 중앙일보 온라인판 '나는 저격한다' 코너에서 이인영 통일부 장관에 대한 문제제기 형식을 통해 민주당 정권의 대북관과 통일론을 저격했다. 이준석 대표는 자신의 통일론을 '평화적 흡수통일론'으로 규정했는데 이 기고문을 보면 이는 동서독 통일방식과 비슷한 내용이라는 점을 유추할 수 있다.

이 대표의 기고문은 두 가지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이 대표의 통일론인 '평화적 흡수통일론'의 내용을 좀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여럿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또 하나는 이 대표가 대표하는 혁신보수 및 젊은 세대(특히 '이대남' 등)의 대북관, 통일관 등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 좋은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이준석 대표의 정치적 위상을 고려해볼 때 그의 '평화적 흡수통일론'에 대한 분석과 평가는 필요하다. 특히 흡수통일 앞에 평화를 강조하여 기존 보수 진영과 뭔가 다르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는 점도 유념해야할 지점이다.

그래서 이 대표의 기고문을 검토해본 결과 필자는 이 대표의 인식에 많은 문제가 있음을 확인했다. 필자는 이 대표의 대북관과 통일론이 올드 보수의 귀환에 불과하다고 판단하며, 그가 보수 진영 내 세대교체에는 성공했지만 적어도 이 부분에서는 가치교체에 실패했다고 판단한다.
  
남북한 통일론의 기본 성격에 대해서 먼저 알아야 한다
   
먼저 이 대표의 대북관, 통일론을 보면 그는 대북, 통일 문제에 있어 상당히 적극적인 개입론자다. 그가 수많은 586명망가 정치인 중에서 이인영 통일부 장관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 것에서도 추정해볼 수 있듯이 이 대표는 북한 관련 이슈에 대한 피로감에서 비롯된 방관, 외면, 회피 등과는 상당히 결이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필자는 이 사실에 좀 놀랬다.

그런데 이 대표가 '사실상의 통일', '과정으로서의 통일'과 이것의 제도적 구현 방식인 국가연합제의 내용과 역사적 맥락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이 대표는 기고문에서 '북한이 주장하고 문재인 대통령 호응한 낮은 단계의 연방제'라고 규정한 뒤에 상호 공존을 지향하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노태우-김영삼 정부 시절 나온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 이후 정부 차원의 새로운 통일론을 제시한 바 없다. 그러므로 문재인 정부을 포함한 그 이후 정부의 공식통일방안은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다. 추정컨대 이 대표는 6.15공동선언 2항에서 남한의 '연합제'와 북한의 '낮은 단계 연방제'에 공통성이 있다고 한 내용을 문제삼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대표는 북한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와 남한의 국가연합제가 비슷한 구상이라는 것을 간과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두 방안은 남북한의 기존 통일론이 상호공존적 방식으로 진화 발전하면서 나온 것이다. 이준석 대표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 정확한 이해가 부족한 것으로 판단된다.

냉전이 한참이던 시절 남북한은 모두 통일론을 내세웠는데 그 내용을 보면 상호공존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어 있으며 사실상 흡수통일을 지향하는 그 당시 입장이 그대로 나와 있다. 먼저 당시 남한 통일론의 기본 내용은 '유엔 감시하 인구비례에 의한 총선거'를 통해서 통일 정부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선거감시 주체인 유엔에 대한 북한의 거부감과 남한의 인구가 북한의 2배 가까이 된다는 것을 고려할 때 북한이 수용하기 힘든 안이었다.

이에 대해서 북한은 (미국식) 연방제를 통한 통일을 내세웠다. 북한은 유엔 동시가입에 반대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두개의 한국'을 분단고착화라는 논리로 반대했고 통일론에 있어서도 미국식 연방제처럼 하나의 국가, 2지역 정부 방식으로 통일할 것을 강조했다. 그런데 전쟁까지 하고 분단이 장기화되어 남북한의 이질화가 심화된 것을 감안할 때 단계를 설정하지 않으면서 바로 하나의 국가를 지향한 북한의 통일론은 적화통일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남한은 북한의 통일론을 수용할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북한 정치지도자 중에서 상호공존에 입각한 통일론을 구상하고 이것을 제도적인 틀로서 구체화시킨 최초의 인물이 김대중이다. 김대중은 1971년 3단계 통일론을 제시하고 이 구상을 1972-3년 사이 발전시키면서 '사실상의 통일, 과정으로서의 통일'에 대한 개념을 통일론에 반영했다. 그러면서 이것을 제도적 차원에서도 반영하여 이때 '느슨한 연방제'(훗날 국가연합제)를 제시했다.

김대중의 구상은 결국 노태우-김영삼 정부의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의 핵심인 국가연합제로 이어지게 된다. 그리고 북한은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국가들이 몰락하고 남한과의 체제경쟁에서 크게 밀리게 되자 자신들의 체제 유지를 위해 수세적인 모습을 보이게 된다. 그래서 적화통일을 염두에 둔 공세적 통일론 대신 결국 '두개의 한국'을 받아들이면서 1991년 국가연합과 비슷한 성격의 낮은단계 연방제를 제시하고 유엔 동시가입에 동의하게 된다.

이러한 역사적인 과정을 거친 후에야 남북한 통일론에 있어 공통점이 형성되었고 이것이 2000년 6.15 공동선언 2항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이준석 대표가 위와 같은 논리와 표현을 통해서 문재인 정부의 통일론을 비판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남북한 통일에서 동서독식 통일을 기대하는 것은 넌센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의당과 합당 논의 과정에서 안철수 대표의 ‘예스까 노까(예스인가 노인가)’ 발언을 비판하고 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의당과 합당 논의 과정에서 안철수 대표의 ‘예스까 노까(예스인가 노인가)’ 발언을 비판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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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대표는 동서독 통일과 비슷한 유형의 통일 방식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는 유럽냉전 및 동서독 분단과 동북아 냉전 및 남북한 분단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독일 통일의 핵심 배경이 되는 서독의 동방정책에 대한 이해도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냉전시기 서유럽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동시에 발전시켰고 장기간에 걸쳐서 역사 화해 및 지역통합을 위해 노력해서 상당한 성과를 냈다. 또한 전후 복구에 성공한 프랑스, 서독 등은 미국으로부터 일정 정도 자율성을 확보하여 미소냉전 시기에서도 유럽 내에서의 데탕트가 나올 수 있었다. 또한 동서독은 전쟁을 하지 않았으며 서독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 이후 동서독 관계는 꾸준히 발전해서 많은 교류와 협력이 이뤄졌다.

그에 비해서 동아시아는 역내 국가들이 역사적, 이념적 갈등에 따른 격렬한 대립이 지속되었다. 이는 반공을 이유로 일본의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에 대한 과거사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또한 남북한은 전쟁을 했으며 정전협정으로 전투만 중지한 후 평화협정을 맺지 못했기 때문에 휴전선을 두고 남북한과 국제적 차원의 군사적 긴장은 장기간 이어졌다. 또한 동북아에서는 한국 전쟁 당시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한 중국이 독자적인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는 점도 중요하다.

그리고 동독도 그렇지만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은 소련의 위성국가로서 체제 유지에 있어 소련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율성과 자생력이 약했다. 반면 동아시아 공산주의 국가들은 탈식민 민족주의와 결합되어 있어서 베트남 전에서의 미국의 패배와 고강도 제재 속에서도 버티는 북한의 모습 등에서 보듯 자생력이 강하다. 이처럼 역사적인 맥락에 따른 여러 차이로 인하여 한반도에서 독일 통일과 같은 방식의 통일은 이뤄질 수 없다.

그리고 동서독 통일이 평화적 흡수통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사후적 결과였다. 빌리 브란트의 키신저로 불리우기도 했고 동방정책의 기본 내용을 정립한 에곤 바는 접촉을 통한 변화를 중시했다. 에곤 바는 긴장완화와 교류 협력 등을 통일의 과정과 방법으로 내세우면서 통일 즉 완전통일을 장기적 과제와 목표로 설정했다. 그러므로 서독의 동방정책은 흡수통일정책으로 규정할 수 없다.

이처럼 유럽 냉전, 동서독 분단, 서독의 동방정책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보면 독일 통일 방식은 남북통일 방식에 그대로 적용될 수 없다. 그러므로 이 대표가 평화적 흡수통일론을 내세우는 것은 잘못된 진단에서 나온 잘못된 처방이다. 이에 대해서 역사적 맥락이 다르더라도 한국이 평화적 흡수통일론에 입각한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것은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없다고 볼 수 있다.
  
평화적 흡수통일은 불가능한 미션이자 목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지난 6월 7일 당 중앙위원회와 도당위원회 책임간부 협의회를 소집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8일 보도했다. 김 총비서는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앞두고 열린 이날 협의회에서 국가경제와 인민생활 보장과 관련한 문제를 지적하고 토의했다. 김 총비서 좌우로 김덕훈 내각총리와 최상건 당 비서, 박태덕 당 규율조사부장(이상 왼쪽), 오수용 당 비서 겸 경제부장, 김재룡 조직지도부장(이상 오른쪽)이 앉아 발언을 받아적고 있다. 2021.6.8
▲ 북한 김정은, 당 중앙위·도당위 책임간부 협의회 소집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지난 6월 7일 당 중앙위원회와 도당위원회 책임간부 협의회를 소집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8일 보도했다. 김 총비서는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앞두고 열린 이날 협의회에서 국가경제와 인민생활 보장과 관련한 문제를 지적하고 토의했다. 김 총비서 좌우로 김덕훈 내각총리와 최상건 당 비서, 박태덕 당 규율조사부장(이상 왼쪽), 오수용 당 비서 겸 경제부장, 김재룡 조직지도부장(이상 오른쪽)이 앉아 발언을 받아적고 있다. 2021.6.8
ⓒ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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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평화적 흡수통일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볼 수 있으며 흡수통일 자체도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이론적으로 흡수통일이 가능한 것은 3가지 경우다. 첫째 군사력을 통해서 북한을 점령하는 경우, 둘째 북한 내부에서 혁명을 통한 체제전환이 이뤄지고 새로운 정권이 한국에 투항하는 경우, 셋째는 현 북한지도부가 자신들의 권력을 포기하고 그냥 투항하는 경우다. 이 중에서 첫 번째는 처음부터 무력을 동원하기 때문에 평화와 무관하며, 세 번째 경우는 가능성이 없다. 그래서 두 번째 방식이 평화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면 이 대표의 주장에 설득력이 있다. 그런데 이것이 매우 어려워서 사실상 불가능하다.

북한 내부의 체제전환이 가능한 경우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외부에서 군사적으로 개입해서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도록 하는 경우다. 다른 나라의 내정에 개입해서 체제 변화 등을 시도할 수 있는 나라는 정치 군사적으로 초강대국들이 할 수 있는 일이며 주로 미국이 그렇게 해왔다. 그런데 최근 아프칸 사태와 그 이전의 여러 사례에서 보듯 군사적 개입을 통한 체제 전환 시도는 평화적인 이행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북한은 사실상 핵무장국가고 한국전쟁 당시 대만 문제가 있음에도 개입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 변수도 있어서 그런 개입 자체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도 하다.

둘째, 내부에서 혁명을 통한 체제전환이 이뤄지는 경우다. 한국의 냉전우파와 미국의 우파들은 내심 이와 같은 방식을 기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것은 너무도 많은 가정이 현실화될 때 가능하기 때문에 사실상 대책없는 주장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체제 특성상 민중혁명은 생각하기 힘들기 때문에 체제전환은 쿠데타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것이 평화적 흡수통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가정이 모두 현실화되어야만 한다. 우선 쿠데타 주도 세력이 친미, 친한 세력이어야하고, 이들의 쿠데타가 성공해야 하며, 쿠데타 성공 이후에는 기존 권력층의 저항을 순조롭게 제압해서 쿠데타 이후 내전이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만 한다. 이와 같은 가정이 모두 현실화될 가능성은 하마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고 코끼리가 마스크 숨구멍 속으로 통과할 수 있는 가능성과 비슷하다고 본다. 이 모든 것이 이뤄진다는 것은 사실상 가능성이 없다시피하다.

그리고 북한은 흡수통일을 매우 경계한다. 북한은 독일 통일 과정을 지켜봤고 남북한 사이의 국력 격차가 커지는 것에 두려움을 갖고 있어서 김대중 정부 초기에는 햇볕정책에 대해서 상당히 경계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우면서도 자존심을 근거로 삼아서 전체주의적 통제를 통해 체제를 유지해가고 있는 북한에게 있어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가득한 남한은 두려운 존재인 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서 대응한다. 이처럼 여기에서 종합적으로 살펴보았듯이 평화적 흡수통일은 불가능한 목표이며 미션이다. 

그리고 위의 결론과 관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흡수통일 정책이 추진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왜냐하면 미국이 여기에 반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흡수통일과 같은 한반도 질서의 근본적인 현상변경은 미국의 적극적인 지지와 협력이 필수다. 그런데 미국은 군사적 대결을 초래할 흡수통일 시도에 반대할 것이 확실하다. 미국은 한국전쟁 당시 중국의 군사적 개입으로 큰 피해를 경험했고 현재 북한이 사실상 핵무장을 했기 때문에 북한을 상대로 먼저 공세적인 군사적 조치를 취할 가능성은 없다.

이것은 역사적으로도 확인된다. 미국은 1953년 7월 정전협정 체결 이후 북한을 상대로 군사력을 동원해서 정권교체 등과 같은 현상변경전략을 추진한 적이 없다. 물론 북미관계가 악화되어 미국이 북한에 대한 군사적 대응 카드를 검토한 적은 있다. 1968년 푸에블루호 나포사건,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1994년 1차 북핵위기 등이 그랬고 2017년 북한의 ICBM시험발사 이후는 그에 준하는 위기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은 군사적인 조치를 통한 현상변경을 의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협상의 계기가 마련되어 전쟁위기가 해소되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2000년대 초 부시 행정부는 북한에 매우 적대적인 네오콘들이 미국 대외정책을 주도했다. 이들은 김대중-클린턴 시기에 이룩한 역사적인 성과를 무참히 무너뜨리고 북한에 대한 호전적인 레토릭을 통해 군사적인 긴장이 조성되도록 했다. 그러나 그러한 네오콘조차도 북한을 상대로 구체적인 군사행동을 통한 현상변경을 추진하지 않았다.

미국은 특정 지역 및 국가에 대한 현상변경의사를 갖고 있으면 군사력을 동원할 명분을 어떻게든 내세워서 개입하곤 했다. 그 과정에서 무리수를 두기도 하여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는데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은 자신들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그와 같은 개입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볼 때 미국이 한반도에서 군사력을 동원해서 현상변경을 시도한 것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38선 이북으로 진격한 것이 유일하다.

이처럼 군사적인 방식이 아니라 평화적인 방식으로 미국이 한반도 질서의 현상변경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이때는 1998년부터 2000년까지의 3년이며 한국의 김대중 정부와 함께 클린턴 행정부가 평화적 대북관여정책을 추진하던 때다. 2000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고어후보가 승리했다면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이 성사되어 미사일 협상 타결과 북미관계 정상화가 가능했을 것이다.

지금 북한이 사실상 핵무장을 했고,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북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화되어 김대중-클린턴 시기의 평화적 대북관여정책을 통한 현상변경전략이 다시 추진될 수 있을지 여부는 확실치 않다. 다만,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경험도 있고 북한이 사실상 핵무장을 했기 때문에 미국이 북한을 상대로 군사적인 수단을 통한 현상변경을 추진할 가능성은 없다. 미국의 입장과 상황이 이러한데 흡수통일은 실현 가능성 여부와 상관없이 정책적으로 추진될 수 없는 것이다. 

이준석 대표의 통일론은 올드 보수의 귀환일 뿐 

그래서 결국 '평화적 흡수통일론'은 자유주의적 전체주의라는 말처럼 성립할 수 없는 표현이다. 앞과 뒤가 상극이라서 상호 모순에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를 강조하면서 흡수통일론이 갖는 문제점을 희석시키는 담론 효과를 내고 있다. 이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명확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준석 대표는 보수 정치권의 세대교체 바람을 일으키면서 주목을 받아 여기에 이르게 되었는데, 이 사안만을 놓고 보면 가치교체는 전혀 없는 올드 보수의 귀환에 불과하다. 1990년대 중반 냉전우파 진영에서 제기된 흡수통일론은 북한에 대한 관여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어 대북정책의 자율성과 창조성을 잃게하는 핵심 원인이었다.

이 대표는 적극적인 대북관여, 대북개입을 내세우고 있는데 흡수통일론을 내세우면 내세울수록 관여의 길로부터 더욱더 멀어지게 된다. 그것이 보수 정권 하에서 남북정상회담이 한 번도 이뤄지지 못한 핵심 이유이다. 북한은 저욕망사회이면서 전체주의적 통제가 가능한 체제이기 때문에 상대하기 매우 어려운 대상이다. 특히 고욕망사회이면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남한과 서구 선진국들의 시각에서 보면 북한은 쉽게 이해하기 힘든 국가다.

그런 북한을 상대로 해서 효과적인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이와 관련된 역사적, 국제적 맥락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분석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 이 대표의 글을 보면 이 지점에서 분명 부족한 면이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평화적 흡수통일론'이라는 모순적인 표현을 쓰게 되고 적극적인 대북관여 의사를 갖고 있음에도 관여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는 흡수통일을 강조하는 모순된 모습을 보인다. 이준석 대표가 이러한 점을 잘 숙고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사회학 박사이며 김대중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김대중에 대한 재평가를 목적으로 한 김대중연구서인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과 현대사'(시대의창, 2021)를 썼습니다. 본문에 나와 있는 김대중의 3단계통일론의 내용은 이 책 4부에서 자세하게 서술했습니다.


태그:#이준석, #평화적 흡수통일, #통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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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박사이며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에서 사료연구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김대중에 대한 재평가를 목적으로 한 김대중연구서인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과 현대사'(시대의창, 2021)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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