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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가족들이 10일 서울 서초구 서울변호사회에서 진행된 4·16 세월호 참사 증거 자료의 조작·편집 의혹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수사 결과를 발표를 듣고 있다. 이현주 특별검사팀은 증거 조작 의혹에 대해 모두 불기소로 결론 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10일 서울 서초구 서울변호사회에서 진행된 4·16 세월호 참사 증거 자료의 조작·편집 의혹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수사 결과를 발표를 듣고 있다. 이현주 특별검사팀은 증거 조작 의혹에 대해 모두 불기소로 결론 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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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자 정희진은 <페미니즘의 도전>에서 "이름 짓기는 정치학이다. 명명의 과정과 결과는 명명하는 집단의 시각과 이해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때문에 객관적이거나 보편적 언어는 존재하지 않으며, 현재 사용되는 언어는 그 언어를 둘러싼 사회적 투쟁의 연속선의 한 지점일 뿐이다"(p.226)라고 말하고 있다.

정희진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명명'은 어떤 사안의 정체성을 사회적으로 규정하는 것이므로 이해 당사자뿐 아니라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도 연결될 수밖에 없고, 그래서 그 자체가 하나의 중요한 정치가 된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주의는 사적 문제로 취급받던 여성에 대한 폭력을 '사회적 범죄'로 인식을 전환시키는 성과를 가져왔다. 엄격한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에 대한 보호 및 적절한 조처를 강구하는 법 제도를 마련하기 위해, 비가시화된 여성폭력을 '가정폭력' '성폭력'이라고 명명하면서 사회적 논의의 장으로 끌고 나왔다.

이를 통해 1997년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도록 이끌었다. 그러나 지금은 당연한 이 법률이 제정되기 전에는, 가정폭력을 근절하려는 노력이 '사적인 일' '집안일'에 국가가 개입하려 한다는 정치인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모두가 반대하는 가정폭력이라는 말조차 처음부터 쉽게 만들어진 단어는 아니었다.

어떤 사안을 어떻게 명명하는가는 때로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사회와 사람들의 첨예한 이데올로기 대립을 불러일으키고, 합의도 필요한 일이다. 그렇기에 하나의 사안을 어떻게 명명할 것인가는 그 자체로 이미 정치적 행위가 된다.

2014년 4월 16일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2014년 4월 16일 진도에서 배가 침몰한 사안을 어떻게 명명할 것인가는 그 시대 인식의 결과물이며, 그 자체가 정치적 행위인 것이다. 세월호를 어떻게 부르는가는 이데올로기적 행위이며, 그 명명은 객관적 언어가 아니라 이미 정치화된 언어이고, 당사자의 정치적 성향이 드러나는 행위이다. 과연 어떻게 명명할 것인가?

참사 이후 2014년 7월 24일 주호영 당시 새누리당 의원은 '세월호는 기본적으로 교통사고'라고 요지의 말을 했고, 이어 같은 당 의원들에 의해서 비슷한 말이 반복됐다. 세월호 참사가 사고로 규정이 되는 순간 '사고=피해 보상'이라는 프레임이 작동하게 된다.

사고는 개인적인 문제로 치환되고, 사고의 결과는 피해 보상이면 완결이 되는 것이므로 세월호 참사를 축소하고 원인을 은폐하기 위한 정치적 전략이었던 것이다. 여전히 세월호를 '사고'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보상금을 지급받았으니 그만하라'며, 세월호 참사 이후부터 지금까지 보상금에 대한 이야기들을 끊임없이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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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눈먼 자들의 국가>에서 작가 박민규는 "세월호는 선박이 침몰한 '사고'이자,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세월호 참사를 잘 규정한 말을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세월호는 사고이자 사건이었다. 세월호 참사는 자본에 의한 비윤리적 경영과 과적, 그리고 노후한 선박 운행이 가능하도록 안전보다는 자본의 손을 들어주고 규제를 풀었던 전 정권의 기업친화적 국가 경영으로 발생한 해상 '사고'이다. 동시에, 침몰 후 단 한 명도 구조하지 않아서 304명이 희생당한 비정상적인 정권의 무능함이 만들어낸 '사건'이다.

그렇기에 세월호 이후 한겨레21에 표지에 실리기도 했던, '이것이 국가인가'라는 물음이 광장에 울려퍼진 것이다.

세월호를 사건으로 규정하면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그 이후의 '재발 방지'까지 논의해야 하는 과정을 동반하게 된다. 당시 많은 시민들이 세월호를 '사건'이라고 규정하며 사건 중에서도 '참사'라는 명명에 공감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생명을 중시하지 않은 자본에 의해 더이상 생명이 희생당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과 다시는 이런 참사를 만들지 않겠다는, '재발 방지'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다. 

2021년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7년이 훌쩍 지난 지금, 세월호는 기억공간의 철거를 둘러싼 첨예한 대립의 장으로 보여지고 있다. 8월 10일, 약 3개월간의 수사를 마무리한 세월호 특검은 ▲ '세월호 폐쇄회로TV(CCTV)' 데이터 조작 의혹 ▲ 해군·해양경찰의 '세월호 DVR(CCTV 저장장치) 수거' 과정 의혹 ▲ DVR 관련 청와대 등 정부 대응의 적정성 문제와 관련해 증거와 혐의가 없다며 불기소 결론을 내렸다.

특검의 활동은 종료되었고, 유가족들과 시민들은 '청와대 등 정부 대응의 적정성'에 대해 재조사를 요구하고 있지만 사실상 법적으로 할 수 있는 진상 조사는 아무것도 밝히지 못한 채 끝이 나고 말았다. 그러나 세월호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우리는 알지 못한다

우선 '왜 구조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과 '사건의 원인'을 밝혀달라는 요구에 국가는 답을 해야한다. 그 순간 국가는 왜 존재하지 않았는가?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비서실, 대통령경호실, 국가안보실 등에서 세월호 대응을 위해 무엇을 했고,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 여전히 우리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 

관련해, 노컷뉴스는 지난 8월 11일 보도에서 "특검의 수사 결과 가운데 DVR·CCTV 조작의 증거가 없어 청와대·정부의 대응에서도 '범죄 혐의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결론 내린 부분은 일면 아쉬운 대목으로 거론된다. 100페이지가 넘는 결과 발표 자료에서도 이 부분 수사 내용은 1페이지에 불과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또한 책임자 처벌은 과연 이루어졌는가? 최초 보고 당시 세월호 참사의 결과 발생 가능성 또는 위험을 인식하기 충분했다고 할 수 있음에도 국가재난 상황을 지휘 및 통제·관리하는 국가책임자의 역할을 하지 않은 관련자들은 직권남용 및 권리행사 방해 등의 혐의로 고소, 고발당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당시 수사 방해 및 진실 은폐 등에 관여한 국정책임자 박근혜를 비롯한 우병우, 김기춘, 황교안 등을 제대로 수사·처벌하지 못했다.  

세월호 사건의 해결을 위해서는 가해자를 처벌하고, 원인을 규명한다. 또, 재발 방지를 위한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 시스템의 변화는 개인이나 몇몇 정치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시스템의 변화는 사회 전반적인 인식의 변화, 법의 제정 등이 동반되어야 하는 문제이다. 결국은 정치적 과정이 수반되는 문제인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수많은 성찰이 있었다. 그런데도 시민들이 바라던 사회는 여전히 요원하고, 이제는 '세월호를 그만 잊으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세월호를 잊으라는 것은 아무 일 없었던 듯이 세월호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8월 15일을 기준으로 하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365일, 366일, 365일, 365일, 365일, 366일, 다시 365일, 그리고 122일 지난 2679일. 지금 이 시기, 우리 사회에는 '세월호 이전으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안전한 사회를 위한 어려운 변화를 택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필요하다.

태그:#세월호, #여성주의, #명명, #꽃을던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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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울. 『꽃을 던지고 싶다?아동성폭력 피해자로 산다는 것』(2013)의 저자. ‘고통을 가장 잘 아는 자가 고통을 가장 잘 그린다’라는 말을 믿고, 사람답게 살기 위해 가끔 글을 쓴다. https://blog.naver.com/neoul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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