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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영화감독 알렉스 라미레스 말리스는 지난 3월부터 오픈씨 내 방귀 상점이라는 이름의 가게를 열고, 1년여간 친구들과 녹음한 방귀소리를 판매해왔다.
 미국 영화감독 알렉스 라미레스 말리스는 지난 3월부터 오픈씨 내 방귀 상점이라는 이름의 가게를 열고, 1년여간 친구들과 녹음한 방귀소리를 판매해왔다.
ⓒ 오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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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를 찢어놓을 듯 강렬하게 울려퍼지는 방귀 소리부터 '강 약 중강 약'을 반복하는 방귀 소리까지. 세계 최대 대체불가능토큰(Non-fungible Token, NFT) 마켓플레이스 오픈씨(Opensea)에서 판매되고 있는 상품이다.

미국 영화감독 알렉스 라미레스 말리스는 지난 3월부터 오픈씨 안에 방귀 상점이라는 이름의 가게를 열고, 1년여간 친구들과 녹음한 방귀 소리를 판매해왔다. NFT가 각광 받기 시작하면서 실생활에선 그 가치를 가늠하기 어려운 디지털 작품들이 수억원대에 팔려나가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방귀 상점 컬렉션'을 만들어 방귀소리를 판매해보기로 한 것. 가격도 0.002이더리움부터 0.27이더리움으로 다양했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약 5000원에서 70만원(7월 1일 업비트 가격 기준) 수준으로 저렴하다고 볼 수 없었다. 

그런데 방귀 소리 NFT를 사가는 사람이 나타났다. 지난 3월 익명의 누리꾼은 말리스의 작품 하나를 85달러(9만6000원)에 구입했다. 실제 판매가 이루어졌지만 막상 말리스는 뉴욕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NFT 시장이 미쳤다고 밖에 할 수 없다"면서 "열광적인 (NFT) 시장의 이면에는 디지털 미술 애호가들이 아니라 투기로 빠르게 부자가 되려는 사람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투자자 관심, NFT로 몰리는 이유

NFT 시장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시중에 풀린 막대한 유동성은 NFT 시장에까지 흘러들고 있다. NFT 전문 분석 사이트인 'NonFungible.com'과 BNP파리바 라틀리에 연구소가 공동 발행한 보고서에 따르면, NFT 시장에 존재하는 자산의 시가총액은 2018년 4096만 달러에서 2019년 1억4155만 달러, 2020년 3억3803만 달러로 급성장하고 있다. 도대체 NFT가 뭐길래 이토록 각광받고 있는 것일까? 

먼저 NFT의 정의부터 살펴보자. NFT란 우리 말로 대체불가능한 토큰이다. 모든 NFT는 고유값을 갖고 있어 서로가 서로를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 쉽게 말해 1만원짜리 현금은 가치가 동일한 다른 1만원과 쉽게 대체될 수 있지만, 경기도와 서울에 있는 각각의 토지는 가격이 같다고 해서 서로를 완벽하게 대체할 수 없다. 가격이 같아도 크기와 모양 만큼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새로 탄생한 NFT는 모두 분산원장 기술인 블록체인에 등록된다. 블록체인의 특성상 위조나 삭제가 불가능하고 거래를 할 때마다 그 이력과 최종 소유권이 장부 내에 기록된다. 이 때문에 NFT를 '디지털 저작권'으로 해석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사실 NFT 시장의 확장세는 '메타버스'(Metaverse)의 성장과도 맞물려 있다. 메타버스는 가공이나 추상을 뜻하는 '메타'(meta)에 현실 세계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를 합친 말로 3차원의 가상현실을 뜻한다. 메타버스 시장이 성장하면서 최근 현실세계가 고스란히 가상세계로 옮겨가는 추세다. 그러다보니 현실에 있는 고유한 특징을 가진 물체나 콘텐츠들을 어떻게 디지털화 해 메타버스 시장으로 옮겨놓을지가 관건인데, 이때 필요한 게 바로 디지털 자산인 NFT이다.

소유할 수 없는 것을 소유하다
 
지난 2016년 이세돌 9단이 인공지능 알파고를 상대로 불계승을 거둘 당시 '신의 한 수'로 불렸던 78수가 NFT마켓 오픈씨에서 0.05이더리움에 판매되고 있다.
 지난 2016년 이세돌 9단이 인공지능 알파고를 상대로 불계승을 거둘 당시 "신의 한 수"로 불렸던 78수가 NFT마켓 오픈씨에서 0.05이더리움에 판매되고 있다.
ⓒ 류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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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실세계에는 없는 상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NFT를 기존의 소유권 개념만으로 설명하기엔 한계가 있다. 특히 실체가 없어 현실에선 소유하기가 쉽지 않았던 무형의 콘텐츠마저 NFT 시장에선 돈벌이 수단으로 쓰인다.

일례로 지난 3월 SNS 트위터의 창업자인 잭 도시가 2006년 트위터 서비스를 개시하면서 작성한 "지금 막 내 트위터 계정을 설정했다"는 최초의 트윗이 NFT로 변환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해당 NFT는 약 290만달러(약 32억7000만원)에 팔렸다. '첫 트윗'의 가치를 30억원대로 평가받은 셈이다.

현실에선 값을 매기기 곤란했던 무형의 가치들이 NFT로 변환되면서 스포츠업계에서도 NFT 발행에 공을 들이는 모양새다. 바둑기사 이세돌과 인공지능(AI) 알파고간의 대국을 파일로 기록해둔 NFT가 대표적인 예다.

지난 2016년 3월 13일, 이세돌 9단은 알파고를 상대로 벌인 네 번째 대국에서 인간 최초로 승리를 거뒀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발행된 NFT에는 당시 이세돌 9단과 알파고가 둔 모든 수가 기록돼 있다. 이 NFT는 지난 6월 초 국내 한 익명의 남성에게 60이더리움(2억5000만원)에 팔렸다. 그러는가 하면 'NBA 톱샵'에서는 NBA 선수들이 뛴 농구 경기의 기록적인 한 순간을 NFT로 판매하고 있기도 하다.
 
메타버스 플랫폼 '온사이버' 내에 있는 한 누리꾼의 NFT 예술 갤러리.
 메타버스 플랫폼 "온사이버" 내에 있는 한 누리꾼의 NFT 예술 갤러리.
ⓒ 온사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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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다. 코로나19로 전시가 어려워지면서 침체된 예술업계에도 NFT로 활로를 찾고 있다. 예술가들은 오프라인에서 만들어둔 작품을 디지털화 하거나 소리나 형형색색의 효과를 덧붙인 디지털 작품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최근에는 NFT 예술품만을 만들어 판매하는 'NFT 전업 작가'도 늘어나는 추세다. 이들은 가상부동산인 '크립토복셀'이나 '온사이버' 등의 메타버스 플랫폼을 활용해 작품 전시회를 열고 있다.

이렇게 전시된 예술 작품들은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지난 3월 열린 국내 최초 NFT 디지털 미술품 경매에서 국내 팝아티스트 마리킴의 미술 작품은 우리 돈 약 6억원에 해당하는 288이더리움에 낙찰돼 마리킴 작품 중 역대 최고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때문에 업계에선 NFT가 코로나19로 침체된 예술산업 활성화의 통로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적지 않다.

김상균 강원대학교 산업공학과 교수는 "메타버스가 NFT라는 디지털 재화를 장착하면서 가상현실세계의 판이 더 커지고 있다"며 "NFT는 디지털 재화의 가치를 높이고 가상현실 세계에서 2차, 3차 거래가 일어나도록 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NFT 시장의 확장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는 "소비자가 한 NFT재화를 구입해 그대로 사용할 수도, 수선하거나 뜯어 나눠 팔 수도 있다"며 "창작과 변이를 포함해 그야말로 무한한 확장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용자들이 메타버스 플랫폼에 애착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는 기능보단 의미와 가치가 있는 NFT 개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며 "최근 NFT 시장이 가방이나 의류, 예술품을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 또한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설명했다. 

방귀 소리도 돈 된다?... 튤립버블 닮은 NFT 열풍

그런데 예술작품처럼 실물이 있는 NFT를 구입한다고 해서 구매자가 당장 예술품을 건네받게 되는 건 아니다. 대부분의 NFT에는 정작 실제 저작물이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NFT엔 작품의 이름, 세부 내용, 계약 조건, 이미지 링크 등 메타데이터만 포함돼 있다. 그래서 NFT 거래를 실물 거래와 동일선상에서 볼 수 있느냐를 두고는 아직 논쟁이 뜨겁다.

하지만 NFT 시장에는 이미 천문학적인 자금이 쏟아지고 있다. 소유할 수 없는 걸 NFT로 바꿔서라도 소유하는 데 가치를 두고 있거나, 자신이 구입한 NFT가 미래 어떻게 사용될지 모른다는 기대감에 '베팅'하는 투자자들 때문이다. 이처럼 투자자들의 기대감을 등에 업은 탓에, 자칫 허무맹랑해 보이는 콘텐츠들마저 NFT로 재탄생해 고가에 거래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암호화폐 도지코인의 상징인 시바견의 이미지는 4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45억원에 판매됐다.

이로 인해 NFT 열풍이 단순히 '인간 소유욕의 연장선상'에 있다며 특별할 것 없이 바라보는 시선이 있는 반면, 암호화폐 열풍 당시 자산 증식의 기회를 놓친 이들이 투기를 목적으로 NFT 시장으로 몰려든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투기의 가능성을 높게 보는 이들은 지금의 NFT 광풍과 17세기 네덜란드에서 발생한 튤립버블이 닮아 있다고 주장한다. 튤립버블이란, 튤립에 대한 과열 투기가 벌어지면서 튤립 가격이 폭등했다가 거품이 붕괴한 사건이다. 

블록체인 미술품의 진품 여부를 증명해주는 업체 베리스아트(Verisart)의 CEO인 로버트 놀턴은 지난 4월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투기 열풍이 불고 있다. 높은 가격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겠다"며 "우리는 집단 히스테리의 순간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한대훈 SK증권 연구원은 NFT의 가격이 널뛰고 있는 것과 관련해 "분명 NFT는 장점도 있지만 이를 감안해도 현재의 가격 폭등은 다소 과한 측면이 있다"며 "현재의 가격 급등은 반드시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게다가 NFT를 둘러싼 저작권 문제도 눈감고 넘어갈 수 없는 이슈다. 오프라인에 있는 작품을 NFT화하는 행위를 '민팅(minting)'이라고 하는데, 저작권자가 아닌 이들이 민팅했다가 문제가 되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

실제로 지난 5월 말 마케팅대행사인 워너비인터내셔널이 이중섭·김환기·박수근 회백의 작품인 '황소', '무제', '두 아이와 엄마'를 NFT화 해 온라인 경매를 열겠다고 나섰다가 저작권 논란에 휘말려 경매를 잠정 중단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정작 해당 작품의 저작권자들이 작품을 디지털화 하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며 반발했기 때문이다. 

저작권 문제와 관련해 전재림 한국저작권위원회 선임연구원은 "판매자에게 권리가 있다고 믿고 구매한 NFT구매자는 저작권 침해에 대한 고의가 없어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있지만 이러한 사실 자체로 시장에 혼란이 있을 수 있다"면서 "저작권 보호기간이 끝난 저작물들을 NFT화 시켜 판매할 경우, 저작권 침해에는 해당하지 않지만 사회윤리적으로 적절치 못한 행위가 될 수 있다, 저작물을 NFT화 시키는 과정에서 최소한의 검증 절차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태그:#NFT, #민팅, #비트코인, #메타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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