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경북 김천시 구성면 복호리 어귀에 세워져 있는 <내칙, 내수도문 비>. 최시형은 도피 생활 중 이 마을에 들러 내칙과 내수도문은 지어 발표했다.
 경북 김천시 구성면 복호리 어귀에 세워져 있는 <내칙, 내수도문 비>. 최시형은 도피 생활 중 이 마을에 들러 내칙과 내수도문은 지어 발표했다.
ⓒ 추연창

관련사진보기

 
최시형은 뜻하지 아니한 이필재의 '영해봉기'에 관여하게 되면서 다시 관의 집중적인 추적을 받게 되었다. 일월산을 떠나 강원도와 충청도의 산간마을로 옮겨 다니며 피신하였다. 영월ㆍ정선ㆍ단양이 이 시기에 그가 거쳐간 지역이다. 

강원도 정선의 접주인 유시헌(劉時憲)의 집에 은신하여 교단의 정비를 준비하였다. 그리고 지도급 인사들의 종교적 수련이 시급함을 인식하고 각지로 연통하여 1872년 초 겨울 강시원ㆍ전성문 등 지도급 인사 5명과 함께 소백산맥 갈래산의 적조암에 들어가 49일 기도를 드렸다. 종교적인 수련을 통해 동학의 정신을 바로 세우고 교단을 정비하고자 해서였다. 기도를 마친 최시형은 소회를 한 편의 시문으로 지었다. 

 태백산중에 들어 49일의 기도 드리니
 한울님께서 여덟 마리 봉황을 주어 각기 주인을 정해 주셨네.
 천의봉 위에 핀 눈꽃은 하늘로 이어지고
 오늘 비로소 마음을 닦아 오현금을 울리는 구나.
 적멸궁에 들어 세상의 티끌 털어내니
 뜻 있게 마치었구나, 49일 간의 기도를. (주석 6)
 
해월 최시형의 법어
 해월 최시형의 법어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처음 기도를 시작할 때는 5명이었는데 인근 마을에 소문이 나돌면서 신참 도인이 많이 늘었다. 기도를 마친 최시형은 마을 사랑방에 도장을 설치하고 무극대도의 요체를 강설하였다.

우리는 이제부터 완전히 같은 도인이 되어 생사, 고락을 함께 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더구나 조난 중에 이곳에 이르러 다시 많은 도인을 얻으니 실로 감개가 깊습니다. 우리의 도는 사람을 대우하고, 물건을 다루는 데 뜻이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을 대우함에는 하늘과 같이 하여 온 세상을 기화(氣化)할 수 있고, 물건 하나하나를 모두 하늘처럼 정중하게 다루는 데서 대도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만일 이 두가지를 버리고서 도를 구한다면 아무리 신통한 조화를 부린다 할지라도 그것은 곧 실지를 떠나 허무에 가까운 것입니다. 사람을 하늘처럼 대우하지 않고 물건을 하늘처럼 다루지 않는 사람이라면 천만번 경전을 외운 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설법은 이어졌다. 천지만물을 아끼고 존중하라는 것이다. 

하느님의 조화로 이룩된 모든 물건도 그 어느 것 하나 귀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쌀 한 줌, 흙 한 줌, 돌 한 개라도 소중하게 다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늘의 조화에 합하는 태도입니다. 물건을 함부로 대하여 마구 버리고 파손하는 자가 어찌 사람인들 귀하게 여기며, 하느님을 성심껏 모시겠습니까?

동덕 여러분, 우리의 주위에는 우리를 원수처럼 미워하는 무리가 가득하고, 우리 역시 전례 없는 박해를 받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저들을 미워하지 말고, 저들의 물건을 박대하지 마십시오. 그들도 하늘을 모신 사람이요, 그들의 물건도 하느님의 조화로 생겨난 것이 아닙니까. 우리는 그들을 용서하고 어여삐 여겨 그들의 마음속에 가리워진 하느님을 키우도록 일깨워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선사께서 깨달으신 천도의 진리랍니다. 우리가 그 분의 가르침을 따르고 지켜 꾸준히 하느님을 모시면 언젠가는 반드시 오만 년의 후천개벽이 올 것입니다. (주석 7) 

동학교단의 재정비 작업은 쉽지 않았다. 교조가 참형당할 때 체포된 인사 중 박명여(朴明汝)와 성명 미상의 박씨가 옥사를 하였고, 백사길ㆍ강원보ㆍ이내겸ㆍ최병철ㆍ이경화ㆍ성일구ㆍ박상빈 형제ㆍ박명중 숙질ㆍ성명 미상의 정(丁)생 등이 유배되었다. 이들은 당시 동학의 지도급 인사들이었다.

여기에 이필재의 거사로 많은 동학인이 처형당하거나 투옥되면서 교단은 산산조각이 나고, 그나마 목숨을 건진 인사들은 뿔뿔이 흩어져 연락이 쉽지 않았다. 

최시형은 경전 발간을 돌파구로 삼고자 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항상 스승의 말씀을 새기며 더 늦기 전에 각종 설법내용을 간행하고자 했다.

해월 신사는 이를 보다 분명하게 확정하기 위하여 '도적(道跡)' 및 '경전(經典)'을 대대적으로 판각(板刻)하여 간행하고자 결행을 한 것이라고 판단된다. 그러므로 명실공이 '도적과 경전' 그리고 '수행', '의례' 등을 확정하고 또 정례화하므로 교단의 면모를 다져나갔으며, 이와 같은 일을 통하여 스승인 대신사의 가르침을 바르게 세상에 전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하고, 나아가 교단으로서의 체제와 조직을 강화시켜나가고자 노력을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주석 8) 


주석
6> 윤석산, 「해월 최시형의 신앙운동」, 『해월 최시형과 동학사상』, 144쪽.
7> 최동희, 앞의 책, 156~157쪽.
8> 윤석산, 「해월신사의 생애와 리더쉽」, 29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해월 최시형 평전] 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해월, #최시형, #최시형평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