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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씨에게 뇌물을 준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월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고등법원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씨에게 뇌물을 준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월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고등법원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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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26일 오후 경기도 김포시 고촌읍 제일모직 물류창고가 불에 타 철골을 드러내고 있다
▲ 김포 제일모직 화재 현장  2015년 5월 26일 오후 경기도 김포시 고촌읍 제일모직 물류창고가 불에 타 철골을 드러내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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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25일 석가탄신일 새벽 2시. 경기도 김포시 제일모직 대형 물류창고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재고 손실 추산액만 약 2천억 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던 제일모직이 삼성물산과 합병하기로 한 '디데이' 26일 화요일을 단 하루 앞둔 날이었다.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안인 'G프로젝트' 문건을 작성하는 데 관여한 삼성증권 IB본부 실무자 한아무개씨는 화재 당일 오전 10시 메일 두통을 각각 제일모직 관계자와 자신의 합병 TF 팀원들에게 보냈다. 제일모직 주가 하락 가능성이 있으니 이사회를 연기해야 할 수도 있다는 건의였다. 또 다른 한씨의 팀원은 미래전략실(미전실) 관계자에게 제일모직 주가하락 시 변동될 합병 비율 자료를 발송했다.

결과적으로 한씨의 건의는 실현되지 않았다.

'삼성물산 주주 문제제기' 논란 이미 예상했지만...

2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박정제 박사랑 권성수 부장판사) 심리로 진행된 이 부회장 등 삼성그룹 핵심간부들의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3차 공판에선 당시 한씨 메일 내용이 공개됐다. 메일에는 실무자의 다급함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2015년 5월 25일 오전 10시께 발송한 메일이다.

"(제일모직) 상무님, 화재로 인한 손실 규모를 파악 중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중략)... 만약 손실 규모가 큰 상황이면 주가가 얼마나 하락할지 예상하기 어려우므로 아침 이사회를 우선 연기해두고 주가가 큰 변동이 없는 경우 오후 장 종료 후 이사회를 실시하고 큰 경우 수요일 오전에 이사회를 실시하는 것이 방법일 것 같습니다."

"(팀원) B, D야. (27일) 수요일 이사회한다고 가정하고. 내일 주가 하락 규모별 청구가능한 합병비율 좀 시뮬레이션 해보고. 삼성그룹이랑 외부 유사케이스 주가 하락폭 조사 좀 부탁해."


한씨의 제안에도 불구하고 26일 오전 7시 30분, 이사회는 주식시장이 열리기도 전에 주가 변동 폭이 반영되지 않은 상황에서 문제의 합병 비율, '1(제일모직) 대 0.35(삼성물산)'을 결정했다. 검찰은 한씨에게 '삼성물산 주주 입장에서 제일모직의 악재를 반영하지 않은 합병은 불공정하기 때문에 제안을 한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한씨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서도 "그런 부분을 고려했을 수도 있다"고 했다.
 
[국민연금 의사결정 구조분석]
: 강00 과장(삼성증권 리서치센터 동 산업 애널리스트 출신).
의사결정 업무와 관련해 실질적인 분석을 담당하고 내부 결정 라인 구조 및 상황을 상세히 파악하고 있으니 최우선 접촉 대상으로 판단.


한편에서는 '일사천리 합병'을 위한 사전 작업들도 함께 제시됐다. 특히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에 적잖은 지분을 가지고 있던 국민연금을 설득할 필요성도 실무자들 사이의 메일에서 언급됐다.

'NPS(국민연금) 의사결정라인'이란 제목으로 증인이 미전실 직원에게 보낸 내용이 대표적이다. 검찰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결정을 앞두고 국민연금 이사회를 파악했다는 것이냐"고 물었고, 증인은 역시 "정확한 상황은 기억하지 못한다"면서 "사전 준비 차원에서 그런 논의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평가 범위 내 보고서 작성하도록'.... 회계법인 업무분장까지

[자문사별 R&R(업무분장)]
(중략)
-삼성증권 : 합병논리 개발 지원 및 언론대응 방안 수립 지원, 사업적 시너지 등 합병논리 개발 지원
-회계법인 : 약식평가보고서. 현 합병비율이 평가 범위 내 있다는 보고서 작성.
(중략)


이날 공판에선 삼성증권 IB본부에서 미전실의 요청으로 합병에 필요한 자문사별 업무분장(R&R)을 작성해 보고한 문건이 등장하기도 했다. 문제는 삼성 측이 자신들의 합병 회사 회계 처리를 담당할 회계법인에게 "합병 비율이 (적정) 평가 범위 내 있다는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업무를 제시한 대목이다. 검찰은 "평가에 착수하기 전부터 어떤 목적의 보고서가 필요하다고 역할을 주는 건 결과를 정해놓고 업무를 의뢰하는 것 아니냐"고 따졌다.

증인은 '업무상 실수'라고 해명했다. 한씨는 "부하직원이 저걸 적을 때 바빠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지시한) 내용이 그대로 들어갔다"고 말했다. 회계법인 측엔 전달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자문사인 삼성증권이 합병 논리 개발까지 지원하느냐는 신문에 대해선 "그 업무를 많이 한 기억은 없다"고 말했다.

이렇듯 이날 증인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간 합병 과정을 묻는 검찰 측 주 신문에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잘 모르겠다'는 취지의 답변을 이어갔다. 재판 현장에 참석한 이 부회장은 증인심문 중간중간 옆자리에 앉은 최지성 전 미전실장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변호인 : "잠깐만 계실래요?"
검찰 : "잠깐만 안 있겠습니다."


심문 내용을 두고 검찰 측과 변호인 측 간 날선 신경전도 이어졌다. 검찰 측이 미전실과 증인이 메일을 주고받는 기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외 다른 합병 건이 있었느냐고 묻자 변호인이 질문을 끊고 이의를 제기했다. 한씨에 대한 검찰 측의 주 신문은 3차 공판에서도 마무리되지 못해 다음 기일에 이어 진행하기로 했다. 변호인 측 반대신문도 4차 공판에서 일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태그:#이재용, #삼성, #경영권승계, #이건희, #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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