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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발레단에서 지난 2018년 공연한 '말괄량이 길들이기' 한 장면. 작품 속에 무용가들이 장애인 흉내를 내면서 희화화하는 안무가 등장해 논란을 빚었다.
 국립발레단에서 지난 2018년 공연한 "말괄량이 길들이기" 한 장면. 작품 속에 무용가들이 장애인 흉내를 내면서 희화화하는 안무가 등장해 논란을 빚었다.
ⓒ 국립발레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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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발레단(단장 강수진)이 오는 6월 15~20일 공연 예정인 '말괄량이 길들이기' 작품에서 장애인을 희화화한 안무를 빼기로 했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이 이뤄지는 등 장애인 비하 논란이 확산됐기 때문인데, 2015년 국내 첫 공연 이후 해당 안무가 바뀌는 건 처음이다.

국립발레단 관계자는 20일 오후 <오마이뉴스> 전화 통화에서 "강수진 단장이 안무 저작권을 갖고 있는 '존 크랑크 재단'과 직접 협의해 장애인을 연상시키는 안무를 빼고 다른 동작으로 바꾸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앞서 <국민일보>는 이날 국립발레단에서 해당 안무 수정을 논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유명 안무가인 존 크랑크(1927-1973)가 지난 1969년 세익스피어 동명 희극을 원작으로 만든 발레 작품이다. 국립발레단은 지금까지 세 차례 공연했지만, 요즘 시대에 맞지 않는 16세기 여성관과 장애인을 희화화한 안무까지 맞물려 논란을 빚었다.

"장애인을 웃음거리로 만든 시대착오적 작품" 인권위 진정

인권위 진정인은 지난 18일 <오마이뉴스>에 "국립발레단의 장애인 비하와 혐오가 섞인 작품 공연을 막아 달라"고 제보했다.

발달장애 자녀를 둔 진정인은 "남자 주인공이 친구들을 시켜 장애인 흉내를 내게 해 여자 주인공을 겁주는 장면에서 무용수들이 뇌성마비, 뇌병변 장애인의 모습을 따라하고 그 모습에 관객은 깔깔거리고 웃는다"면서 "장애인의 불편한 신체를 웃음거리를 위한 도구로만 사용하는 내용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세익스피어 5대 희극 가운데 하나로, 16세기 이탈리아 파두바에서 페트루키오라는 남성이 카테리나라는 '말괄량이 여성'과 결혼해 길들인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16세기 가치관을 담은 원작을 그대로 반영한 것도 문제지만, 장애인을 흉내내는 안무는 원작에도 없던 장면이다.

국립발레단은 "창작자가 여성 혐오나 장애인 비하를 의도했던 건 아니지만, 관객들의 지적과 장애인 인권을 중요시하는 시대적 흐름을 감안했다"면서 "재단쪽에서도 그런 의도로 만든 건 아니지만 논란이 있다면 (안무 변경에) 함께 노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진정인은 "지금이라도 안무를 바꾸기로 한 건 다행이지만, 장애인 비하 안무뿐 아니라 시대착오적인 표현과 줄거리를 담고 있는 작품을 그대로 무대에 올리고 그동안 아무런 수정 없이 계속 공연한 건 문제"라고 지적했다.

국립발레단은 "지난 3월 공연한 '해적'(1856년 초연)은 오래된 작품이어서 '여성 노예'라는 설정을 임의로 해석해 들어낼 수 있었다"면서 "존 크라크 안무는 창작된 지 50년밖에 안 됐고 초연에 참여했던 이들이 여전히 생존해 안무 변경을 하려면 사전 허락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 1973년 숨진 존 크랑크의 작품은 초연에 참여했던 발레단원들이 재단을 만들어 저작권을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윤단우 무용 칼럼니스트는 지난 2018년 12월 인권위 웹진 <인권> 기고문(<발레> 여주인공들은 왜 학대 당하나)에서 이 작품을 거론하면서 "'전통이라서, 과거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등의 이유들은 예술 작품이 과거의 모습대로 보존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없다"면서 "이는 변화를 인지 못하는 후대의 창작자가 내놓는 안일한 변명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태그:#국립발레단, #강수진, #말괄량이길들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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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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