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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오전 청와대에서 김부겸 국무총리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오전 청와대에서 김부겸 국무총리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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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5월 14일 문재인 대통령은 김부겸 국무총리,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노형욱 국토교통부,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이들 중 김부겸 총리의 임명동의안은 국회의장이 직권으로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어 민주당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임혜숙 과기부 장관과 노형욱 국토부 장관 역시 민주당 단독으로 인사청문보고서를 채택했다.

국민의힘과 정의당 등 야당은 민주당의 독주에 강하게 항의했다. 사실상 이런 비판을 들어도 할 말은 없다고 본다.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 14년 동안 야당의 동의 없이 임명한 장관급 인사가 30명인데, 문재인 정권 4년간 32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당 행태는 선거에서 심판받을 일이지 선악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다. 인사청문법과 국회법 어디에도 저촉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보다 헌법 조항과 헌법정신을 어긴 문제가 더 큰데, 이는 언급조차 안 되고 있다.

이는 먼저 헌법 조항에 배치된다. 헌법 제87조 1항 "국무위원은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국무위원은 제89조에 따라 국정의 기본계획과 정부의 일반정책 등 17개 사안에 대한 심의권을 가진다. 제94조 "행정 각부의 장은 국무위원 중에서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행정 각부의 장관은 제95조에 따라 부령 등으로 자신이 속한 부서를 통할한다.

헌법 조항을 보면, 대통령이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국무위원을 임명한 뒤, 다시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이들을 장관으로 임명해야 한다. 그런데 대통령은 국무총리와 상의하여 곧바로 장관을 내정하고 발표한 후,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해 버린다. 대통령과 국회는 헌법 87조와 94조를 통합해서 진행했다고 변명할 수 있지만, 이러한 주장은 억지에 불과하다고 본다. 국무위원이 먼저 임명되고, 장관은 다음이라는 순서가 헌법에 분명하게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헌법정신에 어긋난다. 국무총리는 헌법 제 86조 2항에 따라 대통령을 보좌하여 각 행정부처를 통할하며, 제95조에 따라 소관 사무에 관하며 법률이나 대통령의 위임 또는 직권으로 총리령을 발포하고, 제88조에 따라 국무회의 부의장으로서 정부의 권한에 속하는 중요한 정책을 심의한다. 국정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서는, 국무총리와 각 행정부의 장관 사이에 팀워크가 필요하다.

헌법 제87조 1항에 국무위원과 행정 각부 장관에 대한 국무총리의 임명제청권, 2항에 해임건의권을 규정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김부겸 신임 국무총리가 국무위원과 장관 임명제청권을 행사하는 게 적절하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퇴임하는 정세균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5명의 장관 후보자를 발표했다. 헌법 조항에는 배치되지 않지만, 국무총리의 임명제청권을 규정한 87조와 94조의 입법 정신을 훼손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 인준안 처리를 위해 열린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표결 진행에 반대하며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지난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 인준안 처리를 위해 열린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표결 진행에 반대하며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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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위원 임명 후 장관 임명'이라는 헌법 제87조와 94조가 생긴 이래, 이 조항이 지켜진 적은 필자가 알기론 없다. 그런데도 헌법 위배에 대해 지적당한 적이 없었다. 국무총리의 '국무위원 임명제청권', 헌법 제87조 입법 취지에 대해서는 한 차례 논란이 있었다. 2004년 5월 24일 김우식 노무현 대통령 비서실장이 퇴임이 예정된 고건 총리에게 통일부, 문화관광부, 보건복지부 장관에 대한 인사제청권 행사를 요구했다. 정찬용 인사수석을 비롯한 청와대 참모진들은, 고건 총리의 제청권 행사가 합법적이라는 여론조성에 나서는 등 측면지원을 했다.

그러나 고건 총리는 '물러나는 총리가 인사제청권을 행사하는 것은 대통령에게 누가 된다'는 이유로 거부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당시 2004년 7월 30일, 이해찬 국무총리가 임명장을 받는 자리에서 3명 장관에 대한 인사제청권을 행사하며 이들 3명의 장관이 임명되었다.

개각시즌 때마다 불거지는 논란들

개각 시즌에 나오는 논란은 두 가지이다. 먼저 청문회 방식을 바꾸자는 것. 안대희·문창극 총리 후보자가 낙마한 뒤, 2014년 6월 30일 박근혜 대통령은 "신상털기식(청문회)보다 자질을 검증하자"라고 했다. 박준영 해수부 장관 후보자가 사퇴한 뒤, 2021년 4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은 "능력 부분은 젖혀두고 오로지 흠결만 놓고 따지는 무안주기식 인사청문회가 됐다"라고 비판했다.

두 번째는 야당의 반대로 인사청문보고서가 없는 상태, 그리고 여당 단독으로 채택한 인사청문보고서를 토대로 대통령이 국무위원을 임명하는 경우다. 이런 경우 전자는 국민의 의사를 수렴하는 절차가 필요하며, 후자는 대통령이 상대적으로 흠결이 적은 인사를 선택하고 여당이 야당의 입장을 존중해 주면 된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점은 헌법 조항과 헌법정신이다. 국무총리가 국무위원을 제청하여 대통령이 임명하고, 다시 국무총리가 이들 국무위원을 장관으로 제청하여 대통령이 임명해야 한다. 더하여 전임 국무총리가 인사제청권을 행사하고 떠나버리는 무책임한 행위가 사라지기를 기대한다.

태그:#개각, #김부겸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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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대학교 대학원 졸업(정치학박사) 전,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현, [비영리민간단체] 나시민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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