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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 쿠데타에 저항하고 있는 미얀마인들이 4월 4일 양곤에서 '마스크 시위'를 벌였다.
 군부 쿠데타에 저항하고 있는 미얀마인들이 4월 4일 양곤에서 "마스크 시위"를 벌였다.
ⓒ M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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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 우리가 '광주'를 겪었듯 미안마는 지금 민주화의 진통을 겪고 있다. 미얀마 사태는 1980년 광주를 떠올리게 한다. 군부 쿠데타를 반대하는 시민에 대한 유혈 진압이 장기화되면서 민간인 희생자가 수백명으로 늘어나고 있다.  

19세 대학생 '차일 신'이 머리에 총을 맞고 사망했는데, 군부는 그 증거를 없애려고 무덤에서 그녀의 시신마저도 도굴에 갔다고 한다. 그녀의 시신이 사라진 뉴스를 접한 다음 날, 이화여대에 다니는 한 미얀마 유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울먹이는 목소리였다. 

"선생님 어떻게 해요? 우리 미얀마를 위해서 시를 한편 써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녀는 나의 책쓰기 모임의 멤버였다. 그녀는 우리말과 글을 한국 사람보다 더 잘 구사하는 재원이다.  

나는 1980년 우리 광주를 떠올리면서 그녀의 부탁을 흔쾌히 수락하고 다음과 같은 시를 써서 보내줬다. <오마이뉴스> 독자들에게도 공유한다.
 
죽어도 살아서 / 리채윤 

봄이 온 줄 알았는데  
'미얀마의 봄'은 아직 오지 않았네 
'샤프론 혁명'으로 봄을 되찾은 줄 알았는데  
총칼을 든 자들이 거리마다 바리케이드를 치고  
우리 앞을 막고 있네 

가차 없이 휘두르는 진압봉에 맞고 고무탄에 맞고  
머리에 총을 맞고 쓰러지는 시위대 
폭력과 저항, 총격과 피로 물든 거리 
그러나 역사는 앞으로 전진하고  
살아 숨 쉬는 법 
짓밟힌 풀잎이 다시 일어나듯  
우리는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네 

'싸우는 공작' 깃발, '세 손가락' 높이 들고  
빨간 리본을 매달고 거리를 행진하네 
차량들은 경적을 울리고  
시민들은 냄비를 두드리며 저항하네 
총칼로 자기 백성을 살해하는 무자비하고 뻔뻔한 자들이 
인터넷을 끊고 사람들의 휴대폰을 빼앗아가도 
피비린내 나는 공포 정치 속에서도 
시민 학살에 항의하는 '죽음의 행진'은 이어지고  
평화 시위를 이어가고, 주먹밥을 나누네 

민주주의는 정녕 피를 먹고 자라나는 것인가? 
총을 맞고 쓰러진 19세 소녀 '치알 신' 
꽃잎처럼 뿌려진 너의 붉은 피 
무자비하고 뻔뻔한 자들은  
그녀의 주검마저 도둑질 해갔네 
주검마저 도난당한 미얀마의 봄이여! 
<비록 세상이 끝날지라도 (Kabar Makyay Bu, 가바 마째 부)>
그러나 봄은 온다네. 언젠가 봄은 다시 온다네 
그때 그대들 다시 태어나리 
죽어도 살아서 돌아오리 
다시 살아서 아름답게 빛나리 
  
 

내게 시를 부탁한 미얀마 유학생은 내 시를 버마어(미얀마어)로 번역해서 한국에 있는 미얀마인들의 모임에서 낭독을 했고, 미얀마 학생 단체도 보낸 모양이다. 시 '죽어도 살아서'는 미얀마인들의 소셜미디어에 많이 퍼지고 곳곳에서 낭독되고 있다고 들었다.
 
미얀마 민주화운동에 연대하며 쓴 시 '죽어도 살아서'. 내가 쓴 시를 미얀마 유학생이 현지 언어로 번역한 것.
 미얀마 민주화운동에 연대하며 쓴 시 "죽어도 살아서". 내가 쓴 시를 미얀마 유학생이 현지 언어로 번역한 것.
ⓒ 리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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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는 1962년 군부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후 60년 동안 독재와 공포 정치로 일관하면서 경제는 파탄나고 국민생활은 밑바닥으로 떨어졌다. 2015년 총선에서 민간이 압승했으나 군부는 5년 만에 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민주화의 시계를 거꾸로 돌려놨다.

4월 5일 한국의 5개 문인 단체는 미얀마 군부쿠데타를 규탄하며 우리 정부와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개입을 촉구했다 이날 한국펜클럽, 한국문인협회, 한국소설가협회, 한국시인협회, 작가회의는 한국어와 영어로 된 공동설명을 발표했다  

"미얀마 군부는 시민들에 대한 학살을 즉각 멈춰라. 미얀마 군부의 학살 만행에 미온적인 중국 러시아 인도 등은 반성하고 제 재와 규탄에 동참하라. 아울러 국제사회는 즉각 이 사태에 능동적으로 개입하고 자국의 이익이 아닌 보편적인 인류애와 생명 옹호의 바탕 위에서 미얀마 군부를 제재하고 권력의 민간이양 보장책을 수립하라."

태그:#미얀마, #민주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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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소설가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당선 문학과 창작 소설 당선 2017년 한국시문학상 수상 시집 <아님슈타인의 시>, <모르는 곳으로>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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