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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익근 지사 후손들이 발급 받은 제적등본 문서. 호주와 본관, 호적 등이 공란으로 돼 있다.
 엄익근 지사 후손들이 발급 받은 제적등본 문서. 호주와 본관, 호적 등이 공란으로 돼 있다.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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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할아버지 때문에 귀화했는데 국가는 제게 새로운 성씨를 만들라 하네요."

애국지사 엄익근 선생의 후손임을 인정받아 지난 2006년 11월 특별귀화한 엄창휘씨가 지난 11일 저녁 <오마이뉴스>를 만나 한 말이다. 엄씨는 큰형 엄근학, 둘째형 엄운학 등 가족들과 함께 중국에서 한국으로 귀화했다. 그런데 귀화 후 뒤늦게 제적등본을 확인한 엄씨는 큰 충격을 받는다. 제적등본 어디에도 부모, 본, 호적 등 영월엄씨 집안사람이라는 내용이 일절 기재되지 않았다. 

"제적등본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없더라고요. 본도 없고 호적도 없어요. 성씨에 있어야 할 영월엄씨 한자도 없었습니다. 제 형님들과 제 아이, 조카들도 똑같더라고요. 모두 본과 성이 사라진 채 귀화처리 됐습니다."

이 말은 곧 보훈처로부터 독립운동가 후손임은 인정받았지만 대한민국 법률상 엄창휘씨 3형제는 엄익근 선생의 후손임을 인정받지 못했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로 인해 그와 형제들은 모두 조상이 없는, 소위 성씨를 창안해야 하는 시조가 돼버렸다.

본과 성이 사라진 제적등본 
  
엄익근 지사 후손들에 대한 보훈처 심의의결서. 2007년 5월에 작성.
 엄익근 지사 후손들에 대한 보훈처 심의의결서. 2007년 5월에 작성.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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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익근 지사 후손들에 관련된 보훈처 심의의결서 내용. 엄익근 - 엄윤호 - 엄근학, 엄운학, 엄창휘로 이어지는 관계를 인정하고 있다.
 엄익근 지사 후손들에 관련된 보훈처 심의의결서 내용. 엄익근 - 엄윤호 - 엄근학, 엄운학, 엄창휘로 이어지는 관계를 인정하고 있다.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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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보훈처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독립유공자의 후손으로 인정받았다 할지라도 호적에 올리는 건 별개의 문제"라면서 "호적은 보훈처 소관이 아닌 법무부 소관이다. 현재로서는 재판 등을 통해서만 호적 등록이 가능하다"라고 설명했다.

엄씨의 귀화과정에서 실무를 처리한 해당 구청 관계자 역시 <오마이뉴스>에 "귀화와는 별도로 가족관계등록은 호적법 폐지 이후 가족관계등록법에 의거해 처리될 수밖에 없다"면서 "독립유공자 후손으로 특별귀화를 했다 할지라도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오마이뉴스>가 확보한 2007년 제38차 5716호 보훈처 심의의결서에는 "엄윤희(엄익근 선생 장남)는 그 부친의 제적등본상 엄익근의 1남으로 등재돼 있다"면서 "(독립유공자 유족 등록) 신청인인 엄근학, 엄운학, 엄창휘는 중국 측 발행의 친속관계증명과 당안자료 등에 의거 엄윤희의 자녀로 확인된다.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 의거 자녀에 해당된다"라는 명확한 기록이 존재했다. 보훈처 공식자료에 엄익근-엄윤희-엄창휘 등으로 이어지는 3대가 친족관계임을 인정한 것이다.

"독립운동가 후손이지만 법적으로는 중국 일반 귀화자"
 
독립유공자 엄익근 선생 손주 엄창휘씨
 독립유공자 엄익근 선생 손주 엄창휘씨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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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엄창휘씨 등 삼형제는 왜 독립유공자 후손으로 인정받았음에도 법적으로는 후손임을 인정받지 못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관련법이 미비하기 때문이다. 

법무부 예규인 '외국국적 동포의 국적회복 등에 관한 업무처리 지침' 제3조에는 "중국국적 동포는 1949년 10월 1일부로 중국국적을 취득함과 동시에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한 것으로 본다"라고 적시됐다. 1964년 중국에서 태어난 엄씨의 경우 독립운동가의 후손임이 명징하지만 귀화 처리 과정에서 독립유공자 후손을 위한 관련법이 미비해 중국인 동포가 한국으로 일반귀화 하듯 법적처리가 이뤄졌다. 

실제로 2007년 12월 호적법이 폐기된 후 시행된 가족관계등록법에는 독립유공자 후손이 특별귀화 과정에서 본과 성씨를 획득하는 구체적인 방법이 마련돼 있지 않다. 제96조 국적취득자의 성과 본의 창설 신고에서만 "외국의 성을 쓰는 국적취득자가 그 성을 쓰지 아니하고 새로이 성(姓)·본(本)을 정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그 등록기준지·주소지 또는 등록기준지로 하고자 하는 곳을 관할하는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고 그 등본을 받은 날부터 1개월 이내에 그 성과 본을 신고하여야 한다"라고 명시됐다.

가족관계 사항을 등록하는 구청 관계자가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독립유공자(가족) 확인서가 호적을 등록하는 서류가 인정되면 좋겠는데 가족관계등록법에는 관련 내용이 부재하다"면서 "차라리 독립유공자 후손과 가족들을 위한 적확한 법안이 있었으면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텐데 도움을 드리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라고 말한 이유다. 
 
광복군 전신인 한국청년전지공작대가 1939년 11월 서안으로 떠나기 전 찍은 기념사진. 사진 속 가운뎃줄 우측 두번째 빨간색 원으로 표기한 남성이 엄익근 선생이다.
 광복군 전신인 한국청년전지공작대가 1939년 11월 서안으로 떠나기 전 찍은 기념사진. 사진 속 가운뎃줄 우측 두번째 빨간색 원으로 표기한 남성이 엄익근 선생이다.
ⓒ 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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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씨의 할아버지 엄익근 지사는 3·1 운동 이후 조직된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가입한 혐의로 일본 경찰에 쫓겨 1920년께 중국으로 몸을 피한다. 이후 1940년 광복군 창설과 함께 광복군 의무대 군의관으로 활약했다. 당시 엄 지사는 '왕인석'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그러나 중국으로 망명한 엄 지사에게는 훗날 엄창휘씨의 조모와 아버지가 되는 윤을남 여사와 엄윤희씨가 있었다. 서울에서 머물던 이들은 1943년께 남편을 찾고 일제의 강제징집을 피하기 위해 중국으로 몸을 피했다. 문제는 이후에 발생했다. 중국으로 몸을 피한 모자(윤을남과 엄윤희)는 엄익근 지사를 만나지 못했다. 해방 후엔 기회를 놓쳐 귀국하지 못했다. 그사이 엄익근 지사는 독립군 동료였던 광복군 출신 송영집 지사와 결혼했고 광복 이후 홀로 귀국하면서 연락이 끊겼다. 엄익근 지사는 1950년 2월 29일 사망했고 이후 호적에는 엄 지사와 송 지사 사이에 태어난 자녀만 등록됐다.

엄씨 삼형제 "고향 한국에 돌아오는 것은 당연한 일"  
 
독립유공자 엄익근 선생 손주 엄창휘씨. 보훈처의 미진한 처사에 분노를 쏟아내고 있다.
 독립유공자 엄익근 선생 손주 엄창휘씨. 보훈처의 미진한 처사에 분노를 쏟아내고 있다.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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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씨는 중국에서 조선족으로 살았지만 어려서부터 아버지 엄윤희씨와 할머니 윤을남 여사를 통해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왔다. 이는 엄씨가 중국 육군사관학교를 나와 군인으로 복무하면서도 이어졌다. 엄씨의 형인 근학과 운학이 고국을 향해 떠나고자 마음먹자 본인 역시 모든 기반을 접고 한국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엄씨가 <오마이뉴스>를 만나 한 말이다.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고국으로 돌아오는 이유는 독립유공자 후손이기 때문입니다. 많이들 한국에 왜 왔냐고 묻는데, 고향이니까 당연히 돌아오는 겁니다.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엄씨는 "어릴 때부터 이런 생각을 갖고 지냈는데 1991년 한중 수교가 되자 본격적으로 '한국으로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2000년대 들어 때마침 독립유공자 후손들은 특별귀화 할 수 있다는 걸 알았고 실행에 옮겼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특별귀화의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1982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은 할아버지의 기록은 국가보훈처에 명징하게 남았지만, 자신과 할아버지가 혈연관계라는 증명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보훈처는 엄씨 형제에게 '아버지 엄윤희씨가 엄익근 지사의 아들이란 것을 증명하고, 본인들이 후손인 것을 입증하라'라고 요구했다. 결국 엄씨보다 수년 먼저 한국에 들어와 일용직으로 전전하던 엄씨의 큰형 근학씨가 불법체류자 신분 상태에서 이를 증명해야 했다. 

다행인 것은 엄씨 형제가 부친 엄윤희씨가 서울 거주 시 매동초등학교에 다녔다는 기록을 기억해냈다는 점이다. 2005년 3월 엄씨 형제는 서울 매동초등학교 25회 졸업생(1933년) 가운데 엄씨 부친과 한자까지 이름이 같은 '엄윤희'(嚴允熙)를 찾아냈다. 또 1939년 11월 17일에 찍힌 한국청년전지공작대 환송식 사진에 조부 엄익근 지사의 모습이 담겨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 엄익근 지사의 모습은 부친의 모습과 꼭 닮았다. 결정적으로 부친 엄윤희씨가 고향마을의 공산당위원회에서 "우리 부친은 조선 독립을 위해 싸웠던 독립운동가"라고 말한 자료가 발견됐다. 결국 보훈처는 2007년 5월 이들이 독립운동가 후손임을 심의를 통해 최종적으로 인정했다. 

이에 대해 엄창휘씨는 24일 오후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중국에서 귀화한 독립유공자 후손이 성씨나 본을 인정받지 못하는 건 100% 보훈처의 잘못"이라면서 "법안이 미비하다는 이유로 사법부로 책임을 떠넘기는 건 책임을 방조하는 행위다. 나를 포함해 형제들이 이 문제로 정부와 다투는 건, 처음부터 국가보훈처가 자신들의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아서다. 오랜 시간 외국에서 생활한 탓에 말도 잘 못하는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위해 법안에 특별조항을 추가하든지 관련법을 새로이 만들든지 보훈처 역할을 해야하는 거 아니냐"라고 지적했다. 

2006년 11월 귀화한 엄씨는 당초 익숙하지 않은 법률용어와 한국생활 적응 등을 이유로 호적 관련 문제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그러다 2010년께 자신과 형제들의 제적등본에 본과 성씨 등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걸 확인하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백방으로 움직였다. 그렇게 벌써 1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다. 최근 엄씨는 가족들과 함께 본관을 되찾기 위한 행정소송을 준비 중이다.

한편 광복회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에 "현재 법률상 가족관계 등록여부는 법원의 판단을 받도록 돼 있다. 이로 인해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본관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소송을 하는 방법밖에 없다"면서 "이러한 부분은 독립유공자와 후손들을 위해 정부가 나서서 먼저 개선해할 지점"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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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팀 취재기자. 오늘도 애국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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