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금융정의연대와 참여연대,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회원들이 지난해 10월 2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모펀드 피해 방지를 위한 금융감독과 제도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금융정의연대와 참여연대,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회원들이 지난해 10월 2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모펀드 피해 방지를 위한 금융감독과 제도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이제 누굴 믿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환매연기 이후로 대인기피증이 생겼어요. 믿었던 우리은행에 전세자금 4억원을 맡겼다가 전부 잃을 수도 있다는 걱정에 이렇게 된 거죠. 이혼 위기까지 왔었습니다."

지난 15일 서울 서초구 인근에서 만난 정아무개(49세, 가명)씨는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그는 2019년 4월 우리은행 쪽 권유로 '더플랫폼 아시아무역금융 1Y 전문투자형 사모투자신탁(아래 사모무역신탁)'에 가입한 뒤 계약만료를 앞둔 지난해 3월 환매(계약해지) 연기를 통보받았다. 투자처의 사정이 어려워져 당분간 돈을 돌려주기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이후 약 1년이 지났지만 정씨는 여전히 투자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는 "그동안 한두 달에 한 번씩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어볼 때마다 은행은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 투자금은 안전하다'고 하기에 그런 줄로만 알았다"며 "투자금을 아예 잃을 수도 있다는 건 최근 2~3개월 전에야 알게 됐다"고 말했다. 

40년 주거래은행을 믿었는데...

정씨가 거액을 투자한 계기는 우리은행의 광고 문자메시지였다. 어렸을 때부터 40여년 동안 거래해온 우리은행에서 보낸 '특판 상품 소개 라임 Top2밸런스, 기간 6개월, 수익률 연 3% 수준'이라고 명시된 문자메시지를 보고 정씨는 은행 지점을 찾았다.
  
그가 처음으로 VIP실에서 마주한 부지점장은 광고와 다른 상품인 사모무역신탁을 소개했다. 정씨는 '100% 보험에 가입돼있어 안전하다', '연 4% 수익이 나온다', '무역금융채권 투자펀드(ATFF)라는 탄탄한 펀드에 투자되는 상품'이라는 설명을 듣고 2019년 4월 해당 상품에 가입했다.

투자금은 NH투자증권에서 발행한 파생결합증권(DLS)에 투자됐다. 그런데 이 DLS가 은행의 설명과는 달리 ATFF가 아닌, 그 가운데 일부인 OPAL-TA 펀드에 투자됐다. 정씨를 비롯한 많은 투자자가 이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  

또 정씨는 우리은행이 ATFF에 대해서도 사실과 다르게 설명한 것으로 의심된다고 했다. 은행이 일부 투자자에게만 제공한 펀드제안서를 보면, ATFF는 1과 2 두 가지로 나뉘는데 각각의 수익률이 담긴 운용성과표가 포함돼 있었다. 여기에서 ATFF1의 경우 2014년부터 2019년 4월까지의 수익률(누적 기준 33.61%)이, ATFF2의 경우 2017년말부터의 수익률(누적 기준 10.54%)이 명시돼 있었다. 

그런데 ATFF1은 상품 판매 당시 이미 청산된 펀드였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은행은 비교적 긴 기간 고수익을 냈던 펀드를 주로 이용해 투자자를 모집했는데, 실제 투자금은 이보다 운용기간이 짧고 수익도 낮은 ATFF2에 흘러갔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투자자성향 조작, 보험상품 실체도 안갯속  
 
정아무개(가명)씨가 지난 2019년 4월 우리은행 쪽 권유로 '더플랫폼 아시아무역금융 1Y 전문투자형 사모투자신탁(아래 사모무역신탁)'에 가입할 당시 받은 투자설명서. 단 1장으로 이뤄진 설명서에는 '100% 신용보강보험 가입'이라는 문구가 강조돼있다.
 정아무개(가명)씨가 지난 2019년 4월 우리은행 쪽 권유로 "더플랫폼 아시아무역금융 1Y 전문투자형 사모투자신탁(아래 사모무역신탁)"에 가입할 당시 받은 투자설명서. 단 1장으로 이뤄진 설명서에는 "100% 신용보강보험 가입"이라는 문구가 강조돼있다.
ⓒ 조선혜

관련사진보기

 
더불어 그는 은행이 규제를 피해 사모형태로 이 상품을 판매하려 이른바 '쪼개기'를 했다고 주장했다. 공모상품의 경우 투자자 보호를 위해 분산투자 등 자산운용에 대해 규제를 받고 외부감사 등을 받아야 하지만, 사모상품의 경우 이런 규제를 받지 않는다. 해당 사모무역신탁은 1~10호로 나눠 판매됐는데, 사실상 모두 같은 조건으로 설정된 상품이었다. 그런데도 은행 측이 규제를 피하기 위해 사모형태로 쪼갠 것이라고 정씨는 의심하고 있다.

무엇보다 정씨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은행이 상품설명서와 구두로 '100% 보험에 가입되는 상품'이라고 했지만, 어느 보험사의 어떤 상품에 가입된 것인지 등 상세내용을 전혀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는 "처음에는 그저 보험에 든 상품이라는 것만 알았다"며 "이후 우리은행에 상품을 소개한 플랫폼파트너스자산운용사와 ATFF가 모두 채무불이행 상태에 이르러야 보험금이 나온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은행에선 무조건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고만 하고 있어 어느 것이 사실인지 여전히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의문에 우리은행 측은 보험에 가입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세부 내용은 확인하기 어렵다는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보험은 100% 가입돼있다"고 했지만 '어느 보험사의 어떤 상품에 가입된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그에 대해서는 좀 (답변하기 어려운) 그런 상황"이라고 피했다.

또 정씨는 나중에서야 그의 투자자성향이 조작됐다는 것을 알게됐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그는 "사모무역신탁에 가입한 날 나름대로 분산투자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다른 공모펀드에도 가입했다"며 "나중에 서류를 받아보니 공모펀드 계약서에는 내 투자성향점수가 87점으로 기록돼 있고, 무역신탁 계약서에는 95점으로 기록돼 있었다"고 밝혔다. 테스트를 받지 않은 그를 대신해 우리은행 직원이 임의로 점수를 적었다는 것.

투자자는 잠 못 드는데... 은행은 선취수수료 16억원 수익
 
사모무역신탁 환매가 연기됐지만 은행앱에는 수익률이 4%, 5% 등으로 표시되고 있다.
 사모무역신탁 환매가 연기됐지만 은행앱에는 수익률이 4%, 5% 등으로 표시되고 있다.
ⓒ 조선혜

관련사진보기


정씨는 이번 사모무역신탁과 관련한 피해자는 180명, 피해금액은 16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는 "현재 (투자자) 카톡방에는 25명 정도 있는데 그 중 제가 가장 젊은 편에 속한다, 대부분이 노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환매가 연기된 상황인데도 은행앱에는 사모무역신탁의 수익률이 4%, 5% 등으로 나오고 있어 아직 피해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라며 "은행에서는 '확정수익이 아니라 예상치'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고 답답해 했다. 정씨의 말이다.

"최소투자금액이 1억원이니 2~3억씩 든 사람이 많은데, 10억을 투자한 피해자도 있습니다. '전쟁이 나기 전에는 안전하다'는 설명을 듣고 가입한 거죠. 대부분 잠도 제대로 못 잘 정도로 일상이 무너진 상황입니다. 남편 퇴직금을 투자했다가 지금은 남편이랑 얼굴도 제대로 못 보고 있는 피해자도 있고요. 가정주부인 다른 투자자는 자녀 집 구입자금을 맡겼다가 결국 쓰러졌어요. 정말 암담합니다."

이런데도 우리은행과 금융감독당국은 여전히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것이 정씨의 주장이다. 그는 "은행은 '운용사와 협의를 진행할 예정' 등 애매한 말로 기다리라고만 하고 있다"며 "답답한 마음에 지난달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제기했지만 아무 소식이 없어 다시 문의하니 '담당 직원이 바뀌어 어차피 처리 못 한다, 기다려라'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금이 1600억원으로 몇조원에 달했던 라임·옵티머스펀드보다 적은 편이어서 금융회사도, 금감원도, 언론도 별다른 관심이 없다"며 "은행은 이미 선취수수료로 투자금의 1%, 16억원가량 수익을 본 상태여서 사고가 터져도 나몰라라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 "불완전판매 가능성 높다"... 은행측 "대화 계속할 것"

전문가들은 우리은행의 불완전판매 정황이 짙으며, 실사 결과에 따라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도 가능할 것으로 판단했다.

신장식 법무법인 민본 변호사는 "ATFF1이 청산된 이후에도 우리은행이 수익률 등을 똑같이 설명하고 판매했다면 굉장히 큰 기망행위에 해당한다"며 "라임펀드 등의 경우에도 기초자산을 속여 팔았다는 점에서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 결정이 나왔는데, 이번 사건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은행이 공모 규제를 피하기 위해 상품을 쪼개 판매한 점도 문제"라며 "또 신용보강보험이 100% 들어가는 상품이라고 했지만, 실제 어느 지점까지 커버하고 있는 상황인지 알기 어려운 점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상임대표도 "피해자들이 정확한 투자구조를 알지 못한 채 '100% 보험가입'이라는 말만 믿고 가입한 정황이 많아 불완전판매는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며 "또 피해자들이 받은 문자메시지를 보면 우리은행은 마치 홈쇼핑처럼 '선착순, 5초 안에 마감' 이런 식으로 가입을 유도했는데 모두 자본시장법 위반"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실제 보험사로부터 100%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면 은행이 우선 피해자들에게 투자금을 돌려준 뒤 보험사에 구상권을 청구하면 된다, 판매사인 은행이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은행은 환매연기 문제가 해결되기 전 투자금을 돌려주는 것은 배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투자금을 선지급할 수 있는 여러 요건을 갖추지 않으면 배임에 걸릴 수 있다"며 "선지급 가능성을 검토해볼 수 있지만, 이는 운용사와의 협의 등 다른 방법을 시도해본 이후 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밝혔다. 

투자자성향테스트 조작 등 불완전판매 의혹에 대해서는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면 향후 조사 등을 통해 명백히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해당 상품은 라임펀드처럼 문제 있는 곳에 투자된 것은 아니다"라며 "자본시장법상 판매사가 대응할 수 있는 부분이 한정돼있어 은행 역시 답답한 상황이다, 투자자들과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한편 우리은행은 보도 이후 해당 펀드가 가입한 보험사 등 상세 정보를 공개하는 등 추가 해명을 전해 왔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신용등급이 인베스트먼트그레이드(Investment Grade) 이상인 보험사가 보험계약에 참여했다"며 "악사(AXA), 로이드(Lloyd), AIG 등"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보험 청구는 대출자(수출상)가 대출상환을 하지 않은 경우 가능한데, 이는 판매사인 우리은행이 아닌 자산운용사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며 "(제보자가 의심하는 것처럼) 자산운용사와 ATFF 모두 채무불이행 상태여야 보험금이 나온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태그:#우리은행, #사모펀드, #아시아무역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