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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산 과정에서 치료와 진료가 거부되거나, 적절하게 의료적 조치를 받지 못하는 의료공백의 상황이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기고 '코로나19와 의료공백'을 통해 의료공백의 문제점을 인권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평등하게 치료받고 진료받을 권리에 대해 짚어 보고자 합니다.[기자말]
지난 2020년 봄, 대구·경북 지역에서 코로나19가 처음으로 크게 확산했을 때 정유엽씨는 적절한 치료 없이 13차례의 코로나19 검사 끝에 세상을 떠났다. 지난여름, 동자동 쪽방촌의 윤주민(가명)씨는 절단 부위 염증으로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 세 곳을 돌았으나 고열로 인한 진료 거부를 당한 뒤 집에서 홀로 해열제를 삼키며 이틀을 버텼다. 12월, 하혈하는 응급상황에서 코로나19 검사 결과를 기다리던 산모는 태어나지도 못한 아기를 떠나보내야 했다.

코로나19 위기가 일상을 잠식하고 순식간에 해가 바뀌었지만, 변한 것이 없다. 얼마 전 크리스마스 즈음 각종 SNS에는 산타클로스는 2주간의 자가격리 때문에 크리스마스가 아닌 1월 9일에 온다는 농담이 유행했다. 같은 시기 감염병 확산으로 거리두기가 강화되는 와중에 뉴스는 연일 소란스러웠다. 병상이 몇 개 남았는지, 대기 환자는 몇 명인지, 매일 줄지어 보도되는 '확진자 수'와 함께 숫자들이 난무한다. 아파도 치료받지 못하는, 아픔조차 두려운 이들의 공포와 절망은 숫자들로 말해질 수 없다.

K-방역은 '사람'을 갈아 넣은 결과물이었다 
 
 22일 현재 모두 2명의 코로나19 사망자를 낸 경북 청도에 위치한 청도대남병원 전경. 맨 윗층은 22일자로 코호트 격리된 상태다.
 2020년 2월 22일 현재 모두 2명의 코로나19 사망자를 낸 경북 청도에 위치한 청도대남병원 전경. 맨 윗층은 22일자로 코호트 격리된 상태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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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작년(2020년)이 되어버린 봄, 청도대남병원의 격리병동에서 첫 코로나19 사망자가 나왔을 때 의료공백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진주의료원이 폐쇄된 지역에서 코로나19가 크게 확산됐다. 환자는 넘쳤다. 물론 코로나19가 아닌 환자들도 많았다. 위기 상황이 아닌 일상 속에서도 아픈 사람은 항상 많다.

방역 당국이 확보할 수 있는 병상은 전체 병상보다 턱없이 적었다. 의료 인력도 마찬가지였다. 감염병 확산 상황에서 환자도, 보건소도, 구급대원도, 병원도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제대로 된 정보도, 전달 체계도 없이 혼란은 계속됐다. 고 정유엽씨의 사망이 이 상황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당시 그는 열이 나도 병원에 가지 말라는 정부의 지침이 있어 해열제를 먹으면서 이틀을 버텼다. 이후 선별진료소가 있는 A중앙병원에 갔으나, 진료소는 문을 닫은 상태였고, 방역당국 지침에 의해 응급실에 들어가지 못한 채 밖에서 체온만 잰 뒤 해열제와 항생제만 처방받을 수 있었다. 위급한 상황에서 찾아갈 수 있는 진료소와 정보도 적절히 받지 못한 상태였다. 다음 날 A병원을 다시 찾아갔으나 위급하니 다른 병원으로 옮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3차 진료기관인 대구의 B병원에 입원했으나 13차례의 코로나 검사를 받고 인공호흡기가 빠지는 등 여러 혼란을 겪으며 사망했다.

1차 대확산 이후 어쩌다 위기가 잠시 봉합되고 K-방역을 자화자찬했지만, 위기를 봉합한 것은 잘 정비된 방역 시스템도 의료 시스템도 아니었다. '사람'을 갈아 넣어 만들어낸 미봉책이었을 뿐이다. 지금도 대확산이 반복되고 있다. 우리는 2015년 메르스라는 감염병 위기를 이미 겪었다. 도대체 얼마나 더 아파야만 상황이 나아질 수 있을까.

건강할 권리

바이러스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지만 바이러스 앞에 특히 취약한 사람들은 분명 있다. 동자동 쪽방촌의 윤주민씨는 2020년 여름, 절단 부위 염증으로 극심한 통증과 고열, 죽음의 공포까지 느끼면서도 체온이 37.5도가 넘는다는 이유로 세 군데의 응급실에서 진료를 거부당한 뒤 해열진통제로 이틀을 홀로 버텨야 했다.

윤주민씨와 같은 진료거부 사례는 지금 너무나도 많이 쌓여있다. 쉽게 병원 문을 열 수 없어 공공병원을 주로 이용했던 쪽방 주민, 노숙인, HIV 감염인, 이주민 등의 사회적 약자는 공공병원이 코로나19 전담 병원으로 전환된 이후 마땅히 갈 곳이 없다.

뻥 뚫린 의료공백 속에서 이들은 코로나19 상황이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려야만 한다. 사고와 질병은 때를 기다려주지 않음에도 말이다. 숫자로 환산되어 대서특필되는 감염병이 모든 우선권을 잡아버린 지금 상황이 과연 괜찮은 것인지 물어야 한다.

건강할 수 있는 권리는 모두의 권리다. 아파도 존엄하게 아플 수 있고, 필요한 치료를 마땅히 받을 수 있음은 사람으로서의 권리다. 빈곤으로 인해, 차별과 혐오로 인해 진료와 치료를 거부당하는 것은 물론 이것이 당연해져 버려 병원에 가는 데조차 큰 결심이 드는 사회는 분명 건강하지 않다.

경제적 격차, 사회적 지위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달라지는 의료서비스의 문제, 공공병원·병상의 부족, 의사·간호사 등 의료노동자 노동권의 문제, 사회적 약자·소수자 등 취약계층에 대한 미흡한 대책, 민간병원을 중심으로 한 의료계층화 문제 등 의료 시스템, 더 나아가 건강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는 다양하다. 위기를 겪기 전에 정비되어야 했지만, 위기를 겪는 중에도 이 문제들에 대한 대안은 여전히 없다.

만나지 못하고, 모이지 못하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마스크를 사이에 두고 생활하고 있는 지금, 그 무엇보다 답답한 것은 서로의 관계를 온전히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타인의 체온을 느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상이고 자유롭게 숨 쉬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감각인지를 깨닫는다.

나의 일상이 누군가의 감염 경로가 될 수 있다는 공포, 감기라도 걸리면 병원에도 못 가고 홀로 앓아야 한다는 두려움, '고위험군'으로서 더 불안하고 조심하는 마음은 혼자 견뎌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나 혼자만의 안전을 챙기기에도 급급한 위기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더욱더 크고 작은 연결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리두기에 기반을 둔 방역이 지금까지 가능했던 이유 역시 그 거리를 누군가의 노동과 관계가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코로나19 위기도, 의료공백 상황도 모두의 연대를 필요로 한다. 지금은 위기 상황이니 '어쩔 수 없다'는 말 대신 모두가 존엄하고 평등하게 생존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위기는 불현듯 찾아오지만, 위기가 확산되는 토양은 우리 사회가 이미 만들어둔 것이다.

이윤의 논리에 따라 의료가 등급화하고 시장화하는 정책 속에서 이윤을 내지 못하는 환자는 병원에서 환영받지 못하게 되었다. 의료 정책을 돌아보고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더 이상 눈앞의 급한 불을 끄는 주먹구구식 대응이 아닌, 존엄하고 평등한 생존을 위한 의료의 관점에서 이 시스템을 재정비해야 한다.

코로나19 상황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감염병 상황이 지속해서 발생하리라는 것은 모두 알고 있다. 위기 상황마다 누군가를 '어쩔 수 없다'고 희생시키며 일상의 회복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 재난의 위기에서 모두가 존엄하고 평등하게 생존할 수 있는 삶이 보장될 수 있도록 존엄과 평등이라는 인권의 가치를 바탕으로 대안 마련에 나서야 할 때이다. 이미 늦었지만 더 늦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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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질적인 거북목 때문에 힘들지만 재밌는 일들이 많아 참는다. 서울인권영화제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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