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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6일, 청량리에서 출발한 마지막 열차가 임청각을 서행으로 지나고 있다.
▲ 임청각 철도  12월 16일, 청량리에서 출발한 마지막 열차가 임청각을 서행으로 지나고 있다.
ⓒ 이항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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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특별히 한 일이 있겠습니까? 일제가 임청각을 훼손하기 위해 철도를 부설한 지 80년 만에 철거하게 된 것은 오로지 임청각에 대한 많은 분의 끊임없는 관심과 애정으로 가능했던 것이지요."

안동 임청각을 세운 이상룡 선생의 증손인 이항증(79) 선생이 전화 통화에서 들려준 이야기다. 일제는 독립운동의 산실인 임청각의 정기를 끊고자 1942년 2월 중앙선(청량리-안동) 철로를 부설했다. 안동역으로 가는 직선코스를 놓을 수 있었음에도 일제는 일부러 임청각을 가로지르는 우회 철로를 놨다.

민족의 자존심이던 임청각 집 앞에 철로를 놓아 밤낮으로 굉음을 울리게 하던 '징그러운 괴물 열차'는 지난 16일 밤 마지막 열차 운행을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역사적인 순간을 기억하고자 마지막 열차가 도착한 16일 밤 7시께, 안동역에서 작은 행사가 있었다. 다음날일 17일 임청각에서는 조상에게 고하는 고유제가 열렸다. 코로나19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임청각에 드리운 일제의 흔적을 지우는 행사'에 참여해 지난한 세월 속에서 묵묵히 버텨온 임청각의 꿋꿋함에 크게 손뼉을 쳤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17년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석주 이상룡 선생의 본가인 임청각을 높이 평가하면서 "대한민국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상징하는 공간"이라며 "임청각처럼 독립운동을 기억할 수 있는 유적지는 모두 찾아내겠다"고 다짐했다. 일제는 독립운동의 산실인 임청각을 '불령선인(일제가 불온하고 불량한 조선 사람을 일컫던 말)을 다수 배출한 집'이라고 규정하고, 중앙선 철로를 관통시켰다. 당시 누천년 이어오던 50여칸의 행랑채와 부속 건물을 모두 헐어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쓰라린 역사의 현장인 임청각. 철로 폐쇄가 있던 지난 17일, 많은 언론들이 앞다퉈 '임청각을 지나는 마지막 철로'에 대한 기사를 쏟아냈다. 고유제에서는 증손 이항증 선생의 떨리는 목소리도 들렸다.
 
12월 16일(수) 저녁 7시 30분 , 안동역에 도착한 열차(마지막 열차는 이날 밤 10시50분 도착 열차였음)를 환영나온 시민들
▲ 안동역 열차 12월 16일(수) 저녁 7시 30분 , 안동역에 도착한 열차(마지막 열차는 이날 밤 10시50분 도착 열차였음)를 환영나온 시민들
ⓒ 이항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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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년만에 열차 중단을 증손 이항증 선생과 지켜본 시민들이 감회를 적고 있다.
▲ 감회를 적는 시민들  78년만에 열차 중단을 증손 이항증 선생과 지켜본 시민들이 감회를 적고 있다.
ⓒ 이항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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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 이상룡 선생의 증손인 이항증 선생이 숙원이던 열차 종단을 기념하여 찍은 손도장
▲ 이항증 손도장 석주 이상룡 선생의 증손인 이항증 선생이 숙원이던 열차 종단을 기념하여 찍은 손도장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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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임청각에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던 시절, 임청각에 이항증 선생을 찾아가 나눈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의 증조부 이상룡(李相龍), 조부 이준형(李濬衡), 아버지 이병화(李炳華) 3대가 50여 년을 전 재산을 바쳐가며 독립투쟁을 했지만 대일항쟁기의 피해가 고스란히 남은 집 임청각과 유족을 국가는 외면했다. 조부인 석주 이상룡 선생은 헌법상 국가원수(대한민국정부 국무령)이지만 훈장(독립장) 하나로 때웠다.

보훈의 참뜻은 '나라가 유족을 책임지니 걱정하지 말고 나라 사랑 하라'는 의미다. 그러나 이렇게 보훈유족이 생계마저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으니 누가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내놓을 것이며, 안보가 지켜질 것인가?"


유족이 생계를 이어가기 힘들 뿐 아니라 임청각의 소유권 문제로 이항증 선생은 노구의 몸으로 산더미 같은 서류뭉치를 혼자 챙기며 동분서주했다. 그 고통의 시간을 누가 기억해 줄 것인가?
 
임청각 앞 기차 종단 기념행사가 열린 임청각 앞마당
▲ 임청각 앞마당 임청각 앞 기차 종단 기념행사가 열린 임청각 앞마당
ⓒ 이항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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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청각 앞 마당에 설치된 방음벽을 망치로 부수는 참가자들
▲ 방음벽 부수기 임청각 앞 마당에 설치된 방음벽을 망치로 부수는 참가자들
ⓒ 이항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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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날보다 날카로운 삭풍이 / 차갑게 내 살을 도려내네/ 살 도려지는 건 참을 수 있지만 / 창자 끊어지는데 어찌 슬프지 않으랴 (아래 줄임), 1911년 1월 27일 중국 망명길에 석주 선생이 쓴 시를 새긴 목판을 들고 있는 석주 선생의 증손인 이항증 선생(왼쪽)과 주손 이창수 선생
▲ 이항증과 이창수 칼날보다 날카로운 삭풍이 / 차갑게 내 살을 도려내네/ 살 도려지는 건 참을 수 있지만 / 창자 끊어지는데 어찌 슬프지 않으랴 (아래 줄임), 1911년 1월 27일 중국 망명길에 석주 선생이 쓴 시를 새긴 목판을 들고 있는 석주 선생의 증손인 이항증 선생(왼쪽)과 주손 이창수 선생
ⓒ 이항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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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청각을 훼손한 중앙선 철로를 78년만에 철거하기 시작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다. 늦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모든 게 끝난 건 아니다. 그 집, 독립운동의 산실인 임청각을 지켜낸 후손의 한 맺힌 사연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될 것이다.

사실 기자는 이 역사적인 날을 취재하고자, 16일 오후 3시 38분 서울 청량리역 발 안동행 열차(오후 6시 54분 도착)를 사놨었다. 78년 만에 운행을 마치고 민족의 한(恨), 하나가 걷히는 현장을 달려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이날 마지막 중앙선(청량리-안동) 열차는 저녁 7시 1분에 청량리역을 출발해 임청각을 지나 안동역에 도착(밤 10시 50분)했다. 그러나 너무 야심한 시각에 막차가 도착하기에 안동역에서는 청량리발 3시 38분, 안동 도착 열차를 기준으로 마지막 열차에 대한 조촐한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확산되고 있어 이항증 선생으로부터 하루 전날 '모든 행사가 취소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득불 마지막 열차표를 취소하고 말았다.

"이 선생, 코로나19로 행사를 안 하려고 했는데 사람들과 기자들이 밀려들어서..."
 
석주 이상룡 선생의 증손인 이항증 선생. 2019년 10월 22일 임청각에서 뵙고 대담때 찍은 사진
▲ 이항증 석주 이상룡 선생의 증손인 이항증 선생. 2019년 10월 22일 임청각에서 뵙고 대담때 찍은 사진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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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항증 선생은 나의 열차표 취소에 대해 미안해했다. 그러나 참으로 다행이었다. 그것은 임청각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뜻이었으니 말이다. 이러한 관심이 앞으로도 지속하길, 나아가 임청각이 한국 독립운동의 산실로 국내는 물론 전 세계인으로부터 주목받는 곳이 되길 마음속으로 빌어본다.

덧붙이는 글 | 우리문화신문에도 보냈습니다.


태그:#임청각, #이상룡, #이항증, #독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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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시인.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한국외대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냄 저서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국어사전》,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10권,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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