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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태일의 친구들 이재동 이사장과 전태일의 동생 전태삼씨,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등이 전태일 열사의 50주기를 하루 앞둔 12일 대구시 중구 남산동 전태일이 어릴 적 살았던 집에서 명패를 달았다.
 (사)전태일의 친구들 이재동 이사장과 전태일의 동생 전태삼씨,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등이 전태일 열사의 50주기를 하루 앞둔 12일 대구시 중구 남산동 전태일이 어릴 적 살았던 집에서 명패를 달았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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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나야 할 전태일 / 우리가 찾아야 할 전태일은
청계천에도 있고 / 대구 남산동에도 있다

과거에도 있었고 / 현재 이곳에도 있다

전태일이 걸었던 길 / 전태일의 생각과 / 삶이 형성되었던 곳
유년의 기억 / 청옥고등공민학교에서 / 남산동 골목길을 돌아
전태일이 살았던 옛집 / 지붕이 낮아 골목길에서
마당이 훤히 보이던 / 어린 전태일이 살았던 집


전태일 열사가 어릴 적 살았던 대구 중구 남산동 집에 '전태일'이라는 이름의 문패가 내걸렸다.

'(사)전태일과 친구들'은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하루 앞둔 12일 오후 시민들의 모금으로 마련한 전태일 열사의 집에 문패를 달고 매입 기념식을 가졌다.

이날 행사에는 전태일 열사의 친동생 전태삼씨와 이재동 전태일의 친구들 이사장,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전태일 열사의 청옥고등공민학교 시절공부를 가르쳤던 이학규 선생님, 대구시민 등 50여 명이 참석했다.  
 
전태일 열사가 어릴 적 살았던 대구 중구 남산동 집에서 12일 오후 전태일 명패 달기 행사가 열린 가운데 전태일 열사의 친동생 전태삼씨가 당시의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다.
 전태일 열사가 어릴 적 살았던 대구 중구 남산동 집에서 12일 오후 전태일 명패 달기 행사가 열린 가운데 전태일 열사의 친동생 전태삼씨가 당시의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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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태삼씨는 "조그마한 판자 집 안에 미싱을 2대 놓고 아버지는 재단하고 형이 미싱을 돌리면서 옷을 만들면 어머니가 오일장에 팔러 다녔다"며 "당시 집 앞에 배추밭이 있었고 청옥고등공민학교 담장에 탱자나무가 심어져 있어 학교가 훤히 보였다"고 기억했다.

전씨는 "형이 15살 때 아버지가 학교를 그만 가라고 했다"며 "'너하고 나하고 학교 가는 시간에 옷을 더 만들어 팔아 집과 공장을 분리하고 난 후에 학교에 갔으면 좋겠다'고 했으면 좋았는데 공부를 못하게 되자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평화시장에서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게 된 계기가 이 집에서 시작됐을 것"이라며 "형이 가장 행복했다고 했던 이 집이 전태일 기념관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어 기쁘다"고 덧붙였다.

이재동 전태일의 친구들 이사장은 "우리 지역에서 열사의 삶을 추적하면서 이 집을 찾아내고 또 이 집을 지키기 위해 많은 분들이 나섰다"며 "오늘 그 노력들이 모여 열사께서 짧은 생애 중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보냈던 집에 전태일의 이름을 걸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시민들의 마음이 모여... 다시 찾은 전태일의 집
 
전태일 열사가 어릴 적 살았던 대구 중구 남산동 집. (사)전태일과 친구들은 전태일 열사의 50주기를 하루 앞둔 12일 이 집에 '전태일' 명패를 달았다.
 전태일 열사가 어릴 적 살았던 대구 중구 남산동 집. (사)전태일과 친구들은 전태일 열사의 50주기를 하루 앞둔 12일 이 집에 "전태일" 명패를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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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열사가 어릴 적 살았던 대구 중구 남산동 집. (사)전태일과 친구들은 전태일 열사의 50주기를 하루 앞둔 12일 이 집에 '전태일' 명패를 달았다.
 전태일 열사가 어릴 적 살았던 대구 중구 남산동 집. (사)전태일과 친구들은 전태일 열사의 50주기를 하루 앞둔 12일 이 집에 "전태일" 명패를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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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은 "전태일이 지독하게도 가난했던 시절, 그럼에도 한 번도 누굴 원망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삶을 이어나갔던 그 시절을 상징하는 이 집을 매입해 기념관으로 만드는 것이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순수한 모금을 통해 이 집을 매입하고 전태일의 문패를 달고자 했던 대구 전태일의 친구들에게 너무나 고맙다"면서 "전태일이 배고픈 어린 여공들에게 풀빵을 사주고 손을 잡았던 것처럼 서울의 전태일재단과 대구의 전태일 기념관이 함께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황규관 시인은 "전태일의 길, 그 길을 기억하고자 하는 것은 과거를 잊지 않으면서 현재의 전태일을 만나고자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전태일을 찾고 전태일이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대학생 친구가 되어 그 곁에 서 있고 싶기 때문"이라고 노래했다.

조기현 시인은 "몸 없이 살아온 50년 동안, 집 없이 살아온 10년을 더 보태 봐도 아직 바다는 멀고 강물은 몸을 비틀고 떨고 가며 바윗덩이를 굴리고 있다"며 "이 모든 것은 오막살이에서 시작됐다. 오막살이가 그것을 가능하게 했고 오막살이만이 마르지 않은 샘물이었다"고 했다.
 
전태일 열사와 어머니 이소선 여사의 목판화.
 전태일 열사와 어머니 이소선 여사의 목판화.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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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를 마친 참가자들은 전태일이 살았던 집에서 전태일이 다녔던 청옥고등공민학교(현 명덕초등학교)까지 열사의 발자취를 따라 함께 걸었다.

전태일의 친구들은 지난 1년 8개월 동안 시민모금을 통해 4억3000여만 원의 성금을 모아 지난 10월 전태일 열사가 어릴적 살았던 집을 매입했다. 성금 모금에는 예술인들과 시민 등 3000여 명이 참여했다.

이 집은 리모델링을 거쳐 전태일 기념관으로 다시 태어날 예정이다.

태그:#전태일, #명패달기, #전테일 50주기, #전태일 기념관, #전태일 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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