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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서울중앙지법 재판부는 '긴급조치 1호' 최초 위반자로 구속된 故 장준하 선생(1918~1975)의 유족에게 "국가가 총 7억 8천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정부는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했다. 이에 항소의 부당함을 제기하고 중단할 것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요청하는 편지를 띄운다. [기자말]
존경하는 문재인 대통령님께.

지난 5월, 서울중앙지법 재판부는 '긴급조치 1호' 최초 위반자로 구속된 고 장준하 선생의 유족에게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법원의 판결에 불복한 정부가 항소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피고 쪽 소송대리인인 정부법무공단이 7월 6일 서울고등법원에 항소 이유서를 냈다는 건데요. 저는 항소의 주체가 다름 아닌 정부라는 사실에 그야말로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해당 소식을 전하는 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긴급조치 1호 발동 자체가 국민 개개인에 대한 관계에서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할 수 없다'고 판시한 2015년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중앙지법의 판결이 판례를 정면으로 반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1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정부의 항소 중단을 촉구하는 글 '故 장준하 선생에게 배상할 수 없다는 정부, 항소를 즉각 중단하라!'를 올렸습니다. 

긴급조치 1호 피해자 장준하

긴급조치가 무엇입니까. 영구집권을 획책하기 위해 유신헌법이라는 희대의 악법(惡法)을 선포한 박정희 정권이 자신들의 독재에 반대하는 이들을 잡아넣기 위해 실시한 반헌법적·반민주적·반인권적인 조치였습니다.

헌법을 비난했다는 이유만으로, 박정희 대통령을 비판했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지식인과 학생 심지어 길 가던 시민과 주부들조차 긴급조치의 굴레에 씌워 끌려갔습니다. 그들은 모두 무자비한 고문을 받고 억울한 옥살이를 해야만 했습니다.

긴급조치로 가장 먼저 구속된 인사 중 한 명이 바로 서명운동을 주도한 장준하 선생이었습니다. 박정희 정권은 유신헌법 철폐를 부르짖는 '개헌청원 100만인 서명운동'이 삽시간에 전국으로 번지자 '긴급조치 1호'를 발동해 주모자인 장준하 선생을 잡아넣은 것입니다.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선생은 병으로 인한 '형집행정지'로 석방될 때까지 1년 가까이 옥살이를 하면서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때의 옥살이는 정치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사망선고'나 다름 없었습니다. 그리고 다음해 8월 17일, 선생은 경기도 포천 약사봉에서 의문사(사실상 박정희 정권에 의한 타살)하며 한 많은 삶을 마감해야만 했습니다.

국가가 배상할 수 없다는 정부, 온당한가
 
 정부의 항소 중단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정부의 항소 중단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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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시지탄이나 2010년 대법원은 장준하 선생에게 적용됐던 긴급조치 1호에 대해 위헌·무효라고 판단했고, 헌법재판소 역시 2013년 위헌 결정을 내려 역사의 정의가 바로 서는 듯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법원의 판례 운운하며 항소하는 정부의 태도가 과연 온당한가요?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 진상규명조차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는 상황에서, 선생에 대해 최소한의 배상조차 할 수 없다는 정부는 대체 어느 나라 정부인가요.

국가는 국가의 행위로 피해를 입은 국민들을 끝까지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과거 부도덕한 정권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간첩 조작 등 반헌법적 행위에 대해 후대의 정권이 나서서 진상을 조사하고 피해자들에 대해서도 사과와 배상을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정부의 배상책임 거부는 역사의 퇴행일 뿐입니다.
 
추도사하는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17일 오전 경기도 파주 장준하공원에서 열린 고 장준한 선생 40주기 추모식에서 추도사를 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2015년 8월 17일 오전 경기도 파주 장준하공원에서 열린 고 장준한 선생 40주기 추모식에서 추도사를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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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문재인 대통령님. 

대통령님께서는 3년 전인 2017년 8월 17일, 장준하 선생 서거 42주기를 맞아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추도사를 보내 국가의 책임을 언급하셨습니다. 당시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이 대독한 추도사를 통해 대통령님께서는 "서거하신 지 42년이 흐른 지금도 선생을 우리 곁에서 빼앗아간 죽음의 진상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며 선생에 대한 죄송함과 부끄러움을 고백했습니다.

그보다 2년 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던 시절에는 장준하 선생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한 '장준하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천명하신 바도 있습니다.

정부의 이번 항소는 그동안 대통령님께서 강조한 메시지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행보입니다. 민주주의와 인권, 역사바로세우기, 적폐청산을 기조로 하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철학과도 모순되는 행보입니다.
   
존경하는 문재인 대통령님!

대통령님의 결단을 촉구합니다.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의 직권으로 항소를 즉각 중단시키고, 법원의 판결에 따라 장준하 선생의 유족에게 국가가 배상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시기 바랍니다.

긴급조치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의 배상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마지막 한 분까지 반드시 이뤄져야 할 조치입니다. 또한 한평생 조국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 헌신하신 장준하 선생의 명예회복을 위해 국가가 이행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여전히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는 선생의 의문사 진상규명 역시 정부가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국가가 나서서 진상을 밝힐 수 있도록 특별법 제정에 힘써주시기 바랍니다.

2020년 8월 1일
장준하 선생 서거 45주기를 앞두고.

덧붙이는 글 | ■ 정부의 항소 중단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Temp/SSmex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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