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책 <보건교사 안은영>
 책 <보건교사 안은영>
ⓒ 민음사

관련사진보기

 
"저는 이 이야기를 오로지 쾌감을 위해 썼습니다. 한 번쯤 그래도 되지 않을까 했습니다. 그러니 여기까지 읽으며 쾌감을 느끼지 못하셨다면 그것은 저의 실패일 것입니다."(275쪽)

<보건교사 안은영>의 마지막 장면을 넘기고 작가 정세랑의 말을 읽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약한 사람들이 서로 연대하여 아프고 상처 입은 사람들을 위로하며 치료하는 소설을 읽고 느끼는 감동과 희망이 쾌감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M 고등학교 보건교사 안은영은 독특한 능력을 가졌다. 일반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 '엑토플라즘'을 본다. 이 '죽고 산 것들이 뿜어내는 미세하고 아직 입증되지 않은 입자들의 응집체'(14쪽)들이 사람들을 공격하고 다치게 할 때마다 그녀가 나서서 해결한다. 일종의 퇴마사와 비슷하다.

그런데 무기는 비비탄 총과 장난감 칼이다. 사람을 괴롭히는 이 덩어리를 볼 때마다 핸드백에서 자신의 기운이 담긴 총을 꺼내 쏘거나 칼로 그어 처리한다. 또 다른 주인공인 한문교사 홍인표는 학교 설립자 손자이며 학교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여러 사건들을 수습하느라 고군분투한다. 안은영 능력을 알고 난 뒤 함께 연합하여 문제를 해결한다. 

고등학교에서 어떤 문제가 벌어질까? 학교폭력, 자살, 동성애, 성희롱, 교과서 왜곡 문제 등... 결코 가볍지 않다. 특히 여학생 커플을 집단 구타한 학생은 "더러워서요. 더러워서 때렸어요"라고 말한다. 안은영은 '더러운 게 뭔지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게 교사로서 참담해' 한다(249쪽). 참담해 할 수만은 없다. 학교 땅속의 어두운 기운을 내뿜는 용이 마음 약한 아이들을 조정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온 힘을 다해 제거함으로써 사건을 일단락 짓는다.

이 소설은 학교를 넘어 다른 사회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안은영이 중학교 때 친하게 지냈던 김강우라는 친구가 어느 날 귀신이 되어 나타난다.
 
"크레인 사고였어. 넘어오는데 그대로 깔려버렸어… 비싸서 그래. 사람보다 크레인이. 그래서 낡은 크레인을 계속 쓰는 거야. 검사를 하긴 하는데 무조건 통과하더라." (189쪽)
 

책을 읽다보면, 일터에서 보호장비 없이 죽어갔던 하청 노동자들과 세월호 사건까지 떠오른다. 사람보다 비싼 기계, 큰 배, 회사 조직이 더 중요한 현실. 작가의 말처럼, '우리의 삶이 너무나 가엾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특별한 그 '능력'

자신의 일처럼 슬퍼하고 안타까워하며 온 에너지와 시간을 쏟아 사람들을 돕는 안은영. 왜 그녀는 이런 일을 할까. 안은영도 외롭고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자신의 독특한 능력 때문에 사람들과 제대로 어울릴 수 없었다. 그때 기억으로 인해 악의 기운에 조종당해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지나칠 수가 없다.

상처에 매몰되지 않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도 돕게 된 것이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학교에 새로 부임한 원어민 교사 멕킨지는 안은영과 같은 능력의 소유자이지만 자신의 이익과 보상만을 위해 살아간다. 안은영과 멕킨지가 달랐던 건 세상에 대한 친절한 마음의 여부였다. 
 
"문득 아주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았던 마음의 한 부분이 잠시 경련을 일으키듯 움직였다. 은영도 언젠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이렇게 위험하고 고된데 금전적 보상이 없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말이다. 하지만 은영의 능력에 보상을 해 줄 만한 사람들은 대개 탐욕스러운 사람들이었다.

(중략) 아주 나쁜 종류의 청부업자가 도무지 되고 싶지 않았다. 은영은 다른 종류의 보상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가, 어느새부터인가는 보상을 바라는 마음도 버렸다.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고 해서 자신의 친절함을 버리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은영의 일은 은영이 세상에 보이는 친절에 가까웠다. 친절이 지나치게 저평가된 덕목이라고 여긴다는 점에서 은영과 인표는 통하는 구석이 있었다."(117쪽)

그녀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남을 도왔을까. 그녀의 친절한 마음과 선한 행동을 보면 능력이 없어도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약한 사람들에게 다가갔을 것 같다. 나쁜 기운은 꼭 능력이 있어야만 보이는 건 아니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주변에 아프고 힘든 사람들이 보인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은, 잠깐 멈춰 서서 옆을 돌아보는 작은 친절을 발휘하는 일 아닐까.

<보건교사 안은영>은 쾌활한 분위기 속에서도 여러 사회 문제들을 잘 짚어내서 독자로 하여금 고민하도록 잘 이끌어주는 소설이다. 충분히 읽어볼 만한다. 하지만 혼을 위로하고 악한 기운을 제거하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사회적 문제들이 계속 발생하는 원인과 근본적인 대책들은 소설을 넘어서는 부분인 것 같다. 문학을 통해 현실을 공감하고 책을 읽은 우리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는 것만으로 유익한 소설이다. 

(*곧 이 소설이 드라마화 된다고 한다. 안은영 역할은 정유미 배우가 맡았다고 하는데, 정말 기대가 된다.)

보건교사 안은영

정세랑 (지은이), 민음사(2015)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