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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지난 겨울,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유럽을 덮치기 직전 한 달 동안 이탈리아에서 지낸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기자말]
아랫마을을 연결하는 케이블카 저 멀리 아드리아해가 아스라이 보인다. 유일하게 외부와 연결되는 도시, 리미니는 아드리아해에 면해있다.
▲ 아랫마을을 연결하는 케이블카 저 멀리 아드리아해가 아스라이 보인다. 유일하게 외부와 연결되는 도시, 리미니는 아드리아해에 면해있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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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우리나라 교민이 단 한 명만 사는 나라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미국의 LA 한 도시에만 11만여 명의 교민이 산다는데, 명색이 한 나라에 달랑 한 명뿐이라니. 그땐 워낙 생소한 나라여서 듣고 돌아서자마자 잊어버렸지만, 지난 겨울 코로나가 휩쓸기 전 이탈리아에서 한 달을 살면서 다시 떠올리게 됐다.

'가장 고귀한 산마리노 공화국.' 지리부도에는 그냥 '산마리노'라고 적혀 있지만, 공식 명칭에는 자화자찬 식의 낯 뜨거운 형용사가 붙어 있다. 과거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 애용한 수식어라는데, 현재는 산마리노에만 남아 있다. 역사상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공화국으로, 바티칸처럼 이탈리아에 둘러싸여 있다. 바티칸, 안도라에 이어, 유럽에서는 세 번째로 작은 나라다.

교민이 한 명뿐이라는 건,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는 이야기도 된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이왕이면 우리나라 관광객이 적고, 유명하진 않아도 독특한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곳을 찾다 보니, 급기야 여기까지 오게 됐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만 생소할 뿐, 산마리노는 유럽에서 꽤나 알려진 관광지다. 인구가 고작 3만여 명에 불과한 이곳을 찾는 한 해 이방인 관광객이 대략 200만 명이고, 국가 재정의 절반이 관광 수입으로 충당된다고 한다. 인구의 대부분이 관광 관련 산업에 종사한다는 통계도 있다.

하지만, 내로라하는 관광지라면서도 이탈리아 내에서조차 산마리노를 찾아가기란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공항은 말할 것도 없고, 그 흔한 기차역도 없다. 오로지 아드리아 해에 면한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리미니의 기차역에서 셔틀버스를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다.

리미니에서 산마리노를 오가는 버스는 하루에 열한 차례, 1시간 15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그나마 주말에는 여덟 번만 왕복하므로, 배차 간격이 더 넓다. 거리는 25km 남짓에 불과하지만, 시내버스 마냥 곳곳에 정차하다 보니 1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버스 요금은 편도 5유로다.

리미니 도심을 벗어나자 산마리노가 아스라이 보인다. 도시가 산꼭대기에 걸려 있는 데다, 주변에 야트막한 구릉과 들판이 펼쳐져 있는 까닭에 어디서든 볼 수 있다. 산마리노의 국기가 세워진 이탈리아와의 국경선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구절양장의 꼬부랑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어딜가나 압도적 풍경, 심지어 돈도 안 드네
 
산마리노의 상징, 티타노 산 정상의 요새 산마리노 국기에 그려져 있을 만큼, 국가의 상징이다.
▲ 산마리노의 상징, 티타노 산 정상의 요새 산마리노 국기에 그려져 있을 만큼, 국가의 상징이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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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마리노는 도시 자체가 요새다. 가파른 도로가 나기 전까지는 동서남북 어디에서도 오르기는커녕 쳐다보기조차 힘든 천혜의 조건을 갖췄다. 아랫마을에서 정부 청사가 위치한 산꼭대기로 가려면 케이블카를 타야 한다. 인도는 모두 돌계단이고, 차도는 모두 지그재그로 나 있다.

산마리노에는 이탈리아의 여느 도시처럼 유서 깊은 박물관이나 유적지가 없다. 박물관이라는 이름을 걸어놓은 곳은 많지만, 규모도 작고 눈에 띄는 소장품도 많지 않다. 그래선지 어느 박물관에 가나 한산하기만 하다. 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다. 도시 자체가 감동적인 볼거리기 때문이다.

산마리노는 대부분 지역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천 년도 넘은 중세 시대 건물들이 즐비하고, 건물 대부분이 가파른 벼랑에 아슬아슬하게 세워져 있다. 호텔과 식당, 카페 등 어디서건 창문만 열면 발 아래로 장쾌한 풍광이 펼쳐진다.

산마리노는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여행자의 천국이다. 산꼭대기에 늘어선 망루 등 몇몇 관광지는 입장료를 받지만, 그다지 부담스럽진 않다. 여섯 곳의 대표적인 관광지를 둘러볼 수 있는 통합 입장권 가격이 10유로다. 사실상 기간 제한도 없고, 하루 이상을 머무는 관광객은 7.5유로만 내면 된다.

로마나 피렌체, 베네치아에 견준다면 거의 공짜나 다름없다. 하긴 산마리노의 물가는 무척 저렴하다. 인근 리미니 사람들이 장을 보러 산마리노까지 부러 차를 몰고 온다는 이야기도 있다. 당장 이탈리아의 도시마다 부과하던 '관광세'가 없어, 여행자에겐 더욱 부담이 적다.

산마리노를 다룬 여행안내서는 시중에 거의 나와 있지 않다. 인터넷 블로그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도 제한적이다. 이탈리아의 여느 도시처럼 소개하고 말고 할 게 없다고 여긴 탓일 테지만,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면 이곳만의 이색적인 볼거리와 이야깃거리가 적지 않다.

우선, 산꼭대기 망루에서 내려다본 풍광은 가히 압도적이다. 우리식으로 이름 붙인다면, 단연 '산마리노의 제1경'이다. 약간 구름이 낀 날씨였지만, 탁 트인 시야를 방해하진 못했다. 저 멀리 아펜니노 산맥의 스카이라인과 아드리아해의 수평선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

지금껏 이탈리아에서 찾아간 도시마다 두오모와 종탑에 올랐지만, 이런 감동은 느끼지 못했다. 나름 이국적인 정취를 느꼈을지언정 저절로 탄성이 터져 나올 만큼 대단한 건 아니었다. 인간이 지어낸 그 어떤 걸작도 자연이 주는 경외감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망루에 서서 발아래를 내려다보면, 자연스럽게 산마리노의 역사가 궁금해진다. 이 작은 나라가 줄곧 독립국을 유지한 건 난공불락의 요새여서일까. 전란을 피해 숨어들 만한 곳임에 틀림없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해답은 산마리노 특유의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중용'과 '협치'의 문화에서 찾아야 할 성싶다.

자유인들의 국가, 산마리노
 
유럽 회의 70주년 기념물 산마리노의 중심인 자유의 광장 옆 건물에 이슬람교의 상징인 초승달과 기독교의 십자가, 유대교를 상징하는 다윗의 별이 나란히 세워져 있어 눈길을 끈다.
▲ 유럽 회의 70주년 기념물 산마리노의 중심인 자유의 광장 옆 건물에 이슬람교의 상징인 초승달과 기독교의 십자가, 유대교를 상징하는 다윗의 별이 나란히 세워져 있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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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정관으로 불리는 산마리노의 국가원수는 두 명이다. 2000년 전 로마 공화정의 전통을 지금껏 계승하고 있는 셈인데, 좌파와 우파를 대표하는 두 명의 정치인이 6개월 임기로 교대하며 국가를 대표한다. 하지만, 국가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건 그들이 아니라, 60명으로 이뤄진 국가평의회와 집행부 격인 10명의 국가회의다.

소수 현자의 결정보다 다수 민중의 선택이 옳다는 것을 법제화시킨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공화국이라는 별칭이 생긴 이유다. 비록 중세 교황령에 복속되기도 하고, 제국주의 시대 풍전등화의 위기도 겪었으며, 제1차 세계대전 직후 파시스트 정권이 수립되기도 했지만, 공화정의 뿌리 깊은 전통은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졌다.

한편, 산마리노는 시민의 자유 보장이 국가의 존재 이유임을 공식적으로 표방한다. 그 어떤 이념도 자유의 가치를 넘어설 수 없다고 천명한 것이다. 산마리노 국기와 휘장마다 '자유(Libertas)'라는 글자를 새겨 넣은 이유다. 정부 청사 건물인 푸블리코 궁전도 '자유의 광장'을 거쳐야만 출입할 수 있다. 산마리노는 '자유인'들의 국가다.

산마리노 거리에는 국가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기념물이 많다. 공공건물에는 모두 휘장 문양을 새겨놓았고, 길이 한데 모이는 광장마다 자유와 독립을 상징하는 인물들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그런가 하면, 산마리노와 별 관련이 없을 것 같은 기념물도 쉽게 눈에 띈다.

예컨대, 도시의 남동쪽 끄트머리 광장에는 인도의 정치가 마하트마 간디의 이름이 붙어있다. 산마리노 국영 방송국의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이곳에는 간디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그의 이름 아래로 인도 시민과의 '우애'와 '평화'를 기원한다는 짤막한 글귀가 적혀 있다.

시내 방향에서 간디 광장에 이르는 길 이름도 'J. F. 케네디'다. 미국의 대통령으로서 전 세계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기여했다는 의미를 부여해 그렇게 이름 붙인 것이다. 산마리노는 우리와 2000년 공식 외교 관계를 맺었으며, 북한과도 4년 뒤인 2004년에 수교했다.

셔틀버스 종점에서 정부 청사 오르는 길, 학교 건물 지붕에 낯선 기념물도 눈길을 잡아끈다. 돌로 초승달과 십자가, 다윗의 별을 차례대로 깎아 세워놓았는데, 마치 종교와 문화권의 갈등을 해소하는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는 듯 보인다. 1949년 결성된 유럽 회의 70주년을 기념해 얼마 전 설치한 것이라고 한다.

참고로,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본부를 두고 있는 유럽 회의는, 회원국 가입에 제한을 두지 않고 EU처럼 주권의 포기를 강요하지 않아 유럽 대부분의 나라가 속해 있다. 유럽의 통합과 인권 보장을 최우선 목표로 한 국제기구다. 현재 산마리노는 EU 가입국은 아니다.

우리에겐 이탈리아 사람들에 대한 꽤나 완고한 편견이 하나 있다. 유색인종, 특히 동양인을 극도로 혐오한다는 것. 흔히 세리에 A는 동양인 축구선수들이 왕따 당하는 리그라거나, 동양인 혐오의 발원지가 이탈리아라는 등의 이야기가 이미 진실처럼 굳어져 버렸다. 심지어 소매치기들이 동양인 관광객들만 노린다는 황당한 이야기도 회자된다.

그렇다고 믿는 사람도 산마리노에 오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될 것이다. 종교와 역사를 공유하는 같은 문화권인 데다, 같은 이탈리아어를 쓰는 산마리노 사람들이지만, 그들에게서 인종적 편견과 문화적 차별은커녕 마치 한 가족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그들 특유의 문화적 포용성이 타인에게 친절하고 관대하며 모두가 이웃 같은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정부 각료들이 회의를 마치고 청사 옆 식당에서 피자를 주문하고, 종업원과 농담을 주고받는가 하면, 때마침 들어온 손님과 반가워하며 일어나 하이파이브를 나누는 모습이 부럽기만 하다. 국민 대부분이 서로 아는 사이여서, 혹여 법적 분쟁이 생기면 재판의 중립을 위해 외국인 법률가를 초빙한다는 나라가 바로 산마리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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