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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백범 김구 선생님께.

안녕하세요, 선생님!
선생님의 71주기 기일을 맞아 편지 한 장을 띄웁니다.
지금 계신 곳에선 평안하신지요?

선생님께 제일 먼저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바로 어제 서울공항에서 열린 '6.25 전쟁 70주년 기념식'을 어떻게 보셨는지요?

저는 어제 문재인 대통령의 기념사를 들으면서 선생님을 떠올렸습니다. 대통령의 메시지는 선생님이 생전에 동포들에게 강조하셨던 메시지를 꼭 닮아 있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서울공항에서 열린 6·25전쟁 70주년 행사에서 국군 전사자들의 유해에 참전기장을 수여한 뒤 묵념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서울공항에서 열린 6·25전쟁 70주년 행사에서 국군 전사자들의 유해에 참전기장을 수여한 뒤 묵념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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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늘 평화를 말씀하셨지요.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서 말이지요.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는 것이 선생님의 지론이었습니다.

어제 대통령 또한 선생님과 비슷한 이야기를 하더군요. 우리 군은 어떤 위협과 도발도 용납하지 않을 만큼 강한 국방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원한다고 말입니다.
     
백범 서거 71주기, 여전히 얼어붙은 한반도
  
 백범 김구 선생 흉상 (충칭 연화지 청사 전시실)
 백범 김구 선생 흉상 (충칭 연화지 청사 전시실)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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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편지의 첫머리에서 선생님께 '평안하시냐'고 여쭙는 게 조금 민망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세상을 떠나신 지 7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한반도는 선생님께서 살아계시던 때와 달라진 게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지난 2018년 4월 27일의 '판문점 선언'과 뒤이은 '9.19 군사합의'로 한반도는 여느 때와 달리 따뜻한 봄을 맞이하나 했지만, 최근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폭파와 함께 급속도로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지금 한반도는 북한의 연이은 군사적 위협, 남북 간의 삐라 살포 대결로 그 어느 때보다 엄혹한 상황입니다.

솔직히 저 역시 이번에 북한의 행보에 매우 큰 실망을 느꼈던 게 사실입니다. 과연 저들과 손을 잡고 통일을 할 수 있을까 회의감도 들었고, 도대체 우리 민족에게 왜 이런 시련이 계속되는 것인지 하늘이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이대로 문을 닫고 북한과 남처럼 사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대북 선제타격'이라는 극단적인 단어마저 머릿속에 아른거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북한에서 발굴된 우리 국군 전사자 147위의 유해가 귀환하는 장면을 보면서 잠시나마 놓았던 이성의 끈을 되찾았습니다. 적대적 경쟁은 전쟁이라는 파국으로 이어지고, 전쟁 끝에 다가오는 것은 우리 민족의 공멸이기 때문입니다.

선생님, 저는 6.25 전사자들의 유해를 발굴하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서 유해발굴병으로 복무하며 전국 산야에 흩어진 유해들을 보았습니다. 짧지 않은 군 생활 동안 온전한 형태로 발굴되는 유해를 본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두개골, 대퇴골 등 단일 부위의 유해들만 나와서 도대체 이분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이 유해의 주인은 누구인지 가늠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장렬한 죽음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지금의 우리는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은 참혹한 최후를 맞이했던 것입니다. 유해발굴 현장에서 지켜본 전쟁의 참상은 그랬습니다.
 
 2012년 6월, 강원도 인제에 위치한 명당산 유해발굴현장에서 유해를 수습하고 있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소속 발굴병의 모습
 2012년 6월, 강원도 인제에 위치한 명당산 유해발굴현장에서 유해를 수습하고 있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소속 발굴병의 모습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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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역시 전쟁이 가져올 참상을 예견하셨기에, 많은 사람들의 비난에도 굴하지 않고 끝끝내 남북협상의 길을 걷고자 하셨던 것이겠지요? 선생님은 1948년 남북협상을 위해 평양으로 떠나시기 직전, 만류하는 동포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70평생을 동족을 사랑하고 국가를 사랑하고 독립을 위하여 사는 나로서 일신의 안일을 위하여 우리 삼천만 형제가 한없는 지옥의 구렁으로 떨어지려는 것(한국전쟁을 의미)을 보고만 있을 수 있겠는가. (중략) 나는 여하한 모욕과 모략을 무릅쓰고 오직 우리 통일과 독립과 활로를 찾기 위하여 피와 피를 같이한 동족끼리 마주 앉아 최후의 결정을 보려고 결연히 가련다." - <서울신문> 1948.4.17

비록 회담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하셨지만 "앞으로 각자가 노력하며 남북 지도자들이 자주 접촉하는 데서 원만히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라며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으셨고, 또한 지속적으로 대화를 이어나가야 한다고 역설하셨습니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는 것이니 우리가 이것으로써 만족을 느낄 수는 없는 것이다. 이미 거두어진 성과를 가지고 최후의 성공을 하는 것은 오직 우리의 애국동포 전체가 일치하게 노력하는 데 있을 뿐이다." - <양김 공동성명>, 1948.5.6
 
 1948년 4월 19일, 남북협상을 위해 평양으로 가던 도중 38선 위에 선 백범 김구. 왼쪽은 비서 선우진, 오른쪽은 아들 김신
 1948년 4월 19일, 남북협상을 위해 평양으로 가던 도중 38선 위에 선 백범 김구. 왼쪽은 비서 선우진, 오른쪽은 아들 김신
ⓒ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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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사실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많습니다. 늘 뒷통수만 치는 저들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고 말이지요.

선생님이 살아계실 때도 다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당시 어떤 이는 선생님께 "당신이 말하는 남북협상으로 평화통일을 하자는 이상만은 애국적 양심에서 당연한 주장이다. 그러나 공산당이 타협을 원하지 않고 평화를 파괴하는데 어떻게 남북통일이 실현될 수 있겠는가?"(<새한민보> 1949년 7월 중·하순호)라고 따져 묻기도 했지요.

그러자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협상과 추종은 판이한 것이다. 우리가 협상을 하자는 것은 공산주의자로 하여금 현 단계에서 민주정치 제도를 접수하고, 또한 폭력으로써 이를 파괴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따져 보기 위한 것이다. 피차에 주장하는 바가 무엇인지, 평화통일이 실현될 수 있다든지 없다든지, 한번 서로 만나서 따져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이러한 환경과 조건이 조성될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 <새한민보>, 1949년 7월 중·하순호

지금 우리가 선생님께 배워야 하는 정신이 바로 평화통일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믿음 그리고 어떠한 시련과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앞으로 전진하는 담대함인 것 같습니다.

누가 백범 정신의 올바른 계승을 말하는가
 
 26일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내 백범 김구 선생 묘소에서 열린 71주기 추모행사에서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이날 행사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별도의 행사 없이 묘소 참배로 진행됐다.
 26일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내 백범 김구 선생 묘소에서 열린 71주기 추모행사에서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이날 행사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별도의 행사 없이 묘소 참배로 진행됐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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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최근 선생님의 정신을 올바르게 계승하겠다며 '진정한 보수'를 표방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들은 앞에서는 선생님의 묘소 앞에 머리를 조아리면서도, 뒤에서는 선생님이 지독하게 싫어하셨던 친일 분자들을 영웅으로 떠받들고 있습니다.

조선인으로 하여금 조선인을 탄압하고 학살하기 위해 만들어진 간도특설대에 복무했던 이를, 훗날의 자그마한 공적으로 한국사의 명장이요 영웅으로 떠받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선생님과 함께 풍찬노숙하며 독립운동을 했던 동지들이 잠들어 계신 현충원에 나란히 잠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은 북한과의 대화 역시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습니다. 친일을 미화하고 남북평화를 방해하는 그들이 과연 선생님의 정신을 올바르게 계승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선생님 영전에 부끄럽기만 할 따름입니다.

남북평화를 반대하는 이들은 우리 주위 곳곳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번에 볼턴 회고록을 통해 일본의 아베 정권 역시 뒤에서 한반도 평화를 방해하고 이간질하고 있음이 드러났습니다. 남과 북의 대결이 결국 일본은 살리는 꼴이라는 선생님의 혜안이 맞아떨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남북에서 외부의 힘에 아부하는 자만은 혹왈 남정(南征)이니 혹왈 북벌(北伐)이니 하면서 막연하게 전쟁을 희망하고 있지만 전쟁이 폭발된다 하여도 그 결과는 세계평화를 파괴하는 동시에, 동족의 피를 흘려서 왜적을 살리는 길 밖에 아무 것도 아니 될 것이다." - <조선일보> 1948.2.12

백범의 길, 우리가 따르겠습니다

"현실적이냐 비현실적이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정도(正道)냐 사도(邪道)냐가 생명이라는 것을 명기해야 한다."

돌이켜보면 선생님께서는 70평생 늘 정도(正道)를 바라보며 걷고자 하셨습니다. 그 어떤 시련과 좌절에도 굴하지 않고, 오늘 내가 걷는 이 길이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라는 믿음으로 꿋꿋하게 걸어가신 그 거인의 발자취를 오늘의 우리가 따르려 합니다.
 
 효창공원 내 백범 김구 주석 묘소
 효창공원 내 백범 김구 주석 묘소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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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언젠가 우리 한반도에 봄이 찾아오고 우리가 다시 옛날처럼 하나가 되는 날, 선생님께 다시 기쁜 마음으로 편지를 올릴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고대하며 이만 글을 줄입니다. 부디 계신 곳에서 저희를 굽어 살펴주세요.

2020년 6월 26일
백범 김구 선생 영전에 김경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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