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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피해가 극심한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교민 309명을 태운 전세기가 1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인 가운데, 교민들을 숙소로 인솔할 경찰들이 전신방역복을 입고 대기하고 있다.
 "코로나19" 피해가 극심한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교민 309명을 태운 전세기가 1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인 가운데, 교민들을 숙소로 인솔할 경찰들이 전신방역복을 입고 대기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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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 정부는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하면서도 "버티고 이겨내면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다"는 분위기를 만든다. 일상 회복이 필요하지만 과거의 일상이 모두 행복했던가. 여유 있는 사람들이야 재난으로 파괴된 일상도 별로 없다. 그러니 불편하고 힘들고 마음에 안드는 사람들이 떠들어야 한다. 하지만 성장제일주의에 대한 성찰을 얘기하면 "인기 없으니 그런 얘기하지 마라"는 충고를 듣는다. 그럼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 이전처럼 살자는 건가. 버티고 이겨내면 그렇게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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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계가 죽거나 인간계가 죽거나

파이를 키워야 나눌 것이 많다는 오래된 '파이론'이 있다. 파이를 나누기 보다 키우기에 신경 쓰자는 얘기다. 토속적으로 말하면 '곳간에서 인심 난다' 이런 사고는 성장을 중요하게 여기도록 한다. 성장제일주의는 동전의 양면처럼 마이너스 성장하면 인심 따위는 없는 거고, 생존경쟁, 너 죽고 나 살자며 차별과 혐오를 만든다.

산업화를 통해 성장하던 자본주의는 공황과 함께 세계대전이라는 최악의 폭력을 통해 사회를 파괴했다.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등 위기에 빠지면 성장만이 고통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출구처럼 여긴다.

인간의 키나 몸집은 어느 정도에 이르면 멈추지만 욕망은 끝이 없다. 내 아파트, 내 주식은 계속 오르기를 바란다. 물가도 생계비도 오르니 임금도 오르기를 바라게 된다. 적당함을 잃은 인간계는 무한성장을 추구한다. 욕망은 풍요를 낳지만 과도하면 파괴적이다. 차별과 혐오는 위기가 지나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부딪치는 욕망경쟁을 위한 사회적 장치가 된다.

인류는 '성장 - 위기 - 성장'을 오가는 왕복운동을 한다. 성장은 생태계를 파괴하고 위기는 인간계를 파괴했다. 급기야 자연계에서 바이러스의 역습으로 인간계에 위기가 왔다. 지구 생태계에서 잠깐 살다가 사라질 비정규직에 불과한 인간은 자연에 맞서 "너 죽고 나 살자"를 반복한다.

코로나를 이겨내는 것은 다시 인간이 자연을 정복하는 것인가. 그리고 다시 쭉 성장하는 것이 유일한 길인가. 그런데 기후변화로 인한 온난화, 바이러스의 역공은 더 강하고 빠르게 반복될 것이라고 한다.

세쌍둥이가 된 성장 - 임금 - 고용

미국에선 코로나로 인한 실업자가 2천만 명을 훌쩍 넘었다고 한다. 해고공포를 벗어나지 못한 노동계는 "모든 해고 반대, 총고용보장"을 외친다. 각국 정부도 고용유지에 신경 쓴다. 그런데 '경제성장 - 임금인상 - 고용안정'은 세쌍둥이다. 코로나19가 몰고 온 지구적 재난 속에서 오래된 프레임을 깨고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수 있을까.

'성장 = 임금인상'이라는 프레임은 '위기 = 임금삭감'을 당연한 것으로 만든다. 예외도 있다. 사용자는 성장한 만큼 임금인상을 하지 않기에 '성장 ≠ 임금인상'이 되고 성장을 거듭해도 양극화가 일어난다. 노조가 있으면 회사가 어려워도 임금을 유지하거나 소폭이라도 인상하기에 '적자 ≠ 임금삭감'이 된다. 그러나 대다수 산업과 기업에서 '위기 = 임금삭감'이 관철된다.

성장과 고용도 마찬가지다. '성장 = 고용, 위기 = 해고'라는 프레임이 작동한다. 복잡한 세상에 '고용 없는 성장'이 일어나기도 한다. 일시적 위기가 온다고 해도 강한 노조가 있다면 '위기 ≠ 해고'가 된다. 하지만 대체적인 경향은 '성장 = 고용, 위기 = 해고'다.

노동시간도 이 프레임 안에 있다. '성장 = 시간증가, 위기 = 시간단축'이다. 이 등식은 단순하게 관철되지 않는다. 성장에도 불구하고 야간노동이나 잔업특근을 줄이려는 운동이 강하면 노동시간이 단축될 수 있다. 위기로 사회 전체 노동시간은 줄어들 수 있지만, 해고를 통해 비용을 절감하는 기업에서는 오히려 일인당 노동시간이 증가한다.

국가는 잘할까 당할까

사회적 안전을 위해 평소에 세금을 늘리고 사회복지를 늘려야 한다. 노조는 개별 노사관계에서 임금인상에 적극적이지만 직접 바꾸기 어려워 효능감이 떨어지는 사회복지 확대에 소극적인 경향이 있다. 기업은 늘 법인세 인하 등 세금감면을 요구한다. 부자들은 "세금폭탄"이라며 조세개혁에 저항한다.

사회 관계에 따라 달라지는 국가를 아직도 계급지배의 도구로 보는 극단주의자들은 위기가 오면 "국가가 다 책임지라"고 한다. 반대로 규제철폐를 외치며 국가개입을 꺼리던 시장주의자들은 위기가 닥치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정부에게 손을 벌린다. 이러다 보니 "잘나갈 때는 지들끼리 해먹다가 위기가 오면 국가에게 의존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기업들은 아웃소싱을 통해 위험하고 힘든 일을 하청에게 떠 맡겨왔다. 위험의 외주화가 습관인 기업들은 위기를 외주화하기 마련이다. 재난이 오면 고통을 아웃소싱한다. 망해가는 기업에 국가가 돈을 준다. 기업과 시장에서 버려진 시민들을 국가가 보호해야 한다. 이러니 2008년 금융위기 때도 "설거지는 국가가 한다"는 얘기가 나왔었다. 싸는 놈과 치우는 놈이 다른 셈이다. 이렇게 보면 돈을 마구 풀어대는 국가는 잘하는 걸까, 당하는 걸까.

2020년, 지구적 재난이 오자 기본소득이나 긴급재난소득이 탄력을 받고 있다. 국가는 '성장 - 임금 - 고용'에 사회안전망을 추가한다. 위기에 이르렀을 때 '적자 = 임금삭감 = 국가의 임금보존'으로 갈 수도 있다. 세계 곳곳에서 코로나19로 다가온 재난을 넘어서기 위해 임금과 소득을 국가가 보전해준다.

보완인가, 대안인가

20대 총선에서 시민들은 정부의 재난 대응에 좋은 점수를 주었지만 사각지대가 보인다. 얼마전 참가한 재난극복을 위한 시민사회운동단체 토론에서 정부 대책에서 비어있는 지점을 들었다. 재난으로 고통받는 여성, 장애인, 이주노동자, 플랫폼 노동, 특수고용직, 농민, 영세자영업자들의 상황을 들었다.

고용보험을 비롯해 사회안전망에서 배제된 사각지대를 꼼꼼하게 살피고, 고용보험을 확대해 사회안전망을 새로 짜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다른 한편에서는 사각지대에만 주목하면 결국 시민사회운동이 정부정책의 보완자에 머물게 된다는 지적도 있다. 코로나로 인한 재난을 계기로 사회를 새롭게 디자인하자는 목소리다.

정부정책에서 빈 사각지대를 발견해 빠짐없이 대책을 만들어가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 통해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한 탄탄한 내용을 갖출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코로나 이후의 세상을 새롭게 디자인하려 노력할 때 인류는 더 나은 미래를 열 수 있을 것이다. 사회를 새로 디자인하는 일은 탁월한 상상력도 필요하지만 우리안에 있는 것을 재발견하고 재해석하면서 시작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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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순환을 만들자

사용자는 고용을 보장하고, 노조는 임금인상을 자제하고, 국가는 임금보전을 하는 위기극복협약이 떠오른다. 독일금속노조의 사례를 따라 한국의 대기업 노사가 유사한 논의를 하고 있다고 한다. 한편에서는 귤이 회자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걱정도 있다.

협약의 결과가 아니라 협약을 만든 주체들과 그들이 만든 프레임을 보자. 재난극복을 위한 이런 사례에서 '위기 = 해고 = 임금삭감'이라는 프레임은 깨진다. '위기 = 고용유지 = 임금보전'이라는 새로운 프레임이 등장한다. 이런 협약을 만드는 것은 '노조 - 사용자 - 국가'다.

기업가는 더 많은 이윤을 위해 성장기에는 더하기를 하고 위기에는 비용절감을 위해 고용과 임금에서 빼기를 한다. 국가는 나누기를 해야하지만 부자와 기업의 압력을 받아 더하기나 빼기만 할 때가 있다. 시민의식이 튼튼하고 시민이 강할 때 국가는 나누기를 잘한다. 때문에 '노동시민 - 자본가 - 국가'가 역동적 균형을 이뤄야 한다. 이런 관계를 가진 사회가 적정사회다.

'위기 = 임금삭감 = 해고'라는 프레임을 깨고 '위기 = 소득보존 = 고용유지'라는 새로운 프레임이 작동할때 적정사회가 된다. 노조 없는 기업은 노동권이 약하고 경영권이 너무 강해서 균형을 잃는다. 이런 기업에서 '위기 = 임금삭감 = 해고'의 프레임이 작동한다. 건강한 노조가 있는 기업은 노동권과 소유권이 균형을 이룬다. 이런 기업에서 '위기 ≠ 임금삭감 ≠ 고용유지' 프레임이 작동한다. 이렇게 노동권과 소유권이 균형을 이루는 기업이 적정사회에 필요한 적정기업이다.

재난 상황인 지금이야말로 각 기업에서 노사간 재난극복과 미래를 위한 협약을 만들고 확산시킬 기회다. 이런 흐름이 산업과 기업 현장에서 활발하게 일어나면 새로운 프레임을 담을 사회협약의 에너지가 될 것이다. 지금 필요한 노조운동은 이렇게 새 프레임을 만드는 촉진자가 되는 것이다.

이런 노력이 모아지면 '성장-위기-성장'의 자본주의적 왕복운동을 벗어나 인간계와 생태계가 균형과 순환을 이루는 적정사회에 이를 것이다. 코로나와 싸워 이기려는 자세만이 아니라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준 교훈을 얻으려는 노력이 적지 않다. 뭉치는 단결이 아니라 흩어지는 연대, 적정거리를 통한 새로운 소통, 빛나지 않던 산업의 재발견, 적정기업, 적정경제 등 새로운 프레임을 발굴하고 확산시켜 나갈 때 코로나 이후 인류는 다른 세상을 만날 것이다.

태그:#적정사회, #코로나이후, #성장패러다임깨자, #새로운순환, #프레임을바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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