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큰 아이의 친구가 보내온 편지  초등학교 1학년 같은 반 친구가 큰 아이에게 편지와 함께 선물을 보내왔다. 아직 2학년이 되지 못한 채,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아이들이 다른 친구의 답답함을 위로해주기 위해 쓴 이 편지로 나는 '사회적 연대(Social Solidarity)'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 큰 아이의 친구가 보내온 편지  초등학교 1학년 같은 반 친구가 큰 아이에게 편지와 함께 선물을 보내왔다. 아직 2학년이 되지 못한 채,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아이들이 다른 친구의 답답함을 위로해주기 위해 쓴 이 편지로 나는 "사회적 연대(Social Solidarity)"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 송주원

관련사진보기


얼마 전 큰아이의 친구 엄마가 커다란 선물 봉투를 주고 갔다. 아이는 설레는 마음으로 예쁘게 포장되어 있던 선물을 뜯었고, 그 안에는 멋진 레고 한 상자와 아이의 친구가 정성스레 쓴 예쁜 편지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학교에 가지 못해 친구가 보고 싶었던 그 친구는 자신의 친구도 외로울까 봐 응원의 편지와 선물을 보낸 것이다. 코로나가 끝나면 같이 축구하자는 아이 친구의 편지는 오랜 자가격리로 지쳐가는 우리 가족을 다시 일으켜줬다. 채 초등학교 2학년이 되지 못한 어린이가, 자기도 힘든데, 힘들어할 다른 친구를 위로하는 마음이란! 냉장고 앞에 붙여두고 매일매일 감사하며 살아간다.

생각해보면, 김밥을 말아서 문 앞에 걸어준 이웃도, 오이가 많다며, 맛있는 두부를 샀다며, 집에 있는 아이들 간식을 많이 샀다며 문 앞에 이것저것 걸어준 이웃들도 있었다. 몇 년 동안 연락없이 지냈던 해외에 있는 지인들에게 항공편이 허락한다면 보내주려고, 휴지가 필요한지, 손세정제가 필요한지 물었다. 우리는 이렇게 전염병의 팬데믹이라는 시기에 각자의 공간에서 나름대로 연대하며 살아간다.

지난 3월 12일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의 팬데믹을 선언하고 세계 시민의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 지침을 내보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사람과 사람 간의 거리를 두고 밀접 접촉을 줄여 인간을 숙주로 하는 바이러스 전염병의 확산을 최대한 예방하는 전염병 방역 방법의 하나다.

대표적인 밀집 공간인 학교 등 교육기관의 휴교, 재택근무, 종교활동 자제, 불필요한 외출을 삼가는 자택격리 등이 이에 속한다. 가장 극단적인 사례는 중국 도시 우한의 도시 봉쇄와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주의 봉쇄 등으로 시작된 도시 및 지역 봉쇄와 국경 폐쇄다.

그런데 며칠 후, WHO는 사회적 거리두기는 오해의 여지가 있어 '물리적 거리두기'로 변경하자는 권고안을 냈다. 혹자는 영어 social은 social club(사교 클럽), social gathering(사교 모임) 등의 의미로 쓰인 것이고 사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교적'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도 한다. 일견 타당하다.

처음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표현이 나왔을 때 어딘지 모를 불편함을 느꼈다. 개인적으로는 사회학을 전공했기에 '사회'는 그야말로 세상을 보는 눈의 근본이자 전부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어려서부터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명제를 진리로 알고 살아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것의 거리라니.

연대하지 않는 사회의 뒷감당은 내게 돌아온다

물론 사회적 거리두기의 방점은 '거리두기'라는 후자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불편함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SNS에서 이웃들과 가족들과 대화할 때도 쉽게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말을 내뱉지 못했다. 사람이 사회와 거리를 둔다는 표현은 '소리없는 아우성'이나, '찬란한 슬픔', '쾌락의 고통' 같은 문학적 표현보다 더 받아들이기 힘든 형용모순으로 다가왔다. 내 존재를, 내 정체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같은 죄책감마저 들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전 세계적으로 이미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는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용어를 굳이 바꾸고, social은 사회가 아니라 사교라는 의견을 내고, 나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면서까지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점이다. 바로 '사회'다.

그렇다면, 사회란 무엇인가? 사회학은 사회 혹은 사회적인 것을 연구대상으로 하지만, 정작 "사회학자에게 사회나 사회적인 것의 개념을 정의하기보다 어려운 일은 없을 것"이라는 프랑스 사회학자 베르나르 라이르(Bernard Lahire)의 고백처럼, 사회를 표상하는 일은 쉽지 않다.

사회는 근대적 개념이다. 근대화와 산업화 도시화 등을 동시다발적으로 겪은 유럽에서 이전과는 다른 개인들의 관계적 형태가 만들어지면서 함께 형성되었다. 이 현상의 중심에는 증가하는 개인, 즉 '인구'와 다양해진 상호작용 즉 '관계'가 자리잡았다.

근대라는 역사가 진행되면서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증가한 인구는 '도시'라는 공간으로 밀집되고, 이 공간에서는 다양한 관계들이 형성되게 된 것이다. 우리는 흔히 도시화, 근대화 등을 이야기할 때, 개인주의, 소외 등을 떠올린다. 그러나, 마르크스, 베버, 짐멜과 함께 4인의 대표 고전사회학자로 일컬어지는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Emile Durkeim)은 전근대와 근대의 차이를 '관계' 더 나아가 '연대(solidarity)'에서 찾았다.

전근대 시대에는 국가와 종교의 집합적인 규범이 개인들을 몰개인적 집단으로 응집했다면, 근대에 와서는 도시라는 공간에 모인 서로 이질적인 개인들이 그들의 다양성에 기반한 '노동분업'을 통해 이전과는 다른 의미의 응집력을 나타내며 연대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은 채 개인의 삶은 영위될 수 없는 만큼, 개인은 타인과 더 끈끈한 상호작용을 통해 관계를 맺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개인 간의 유기적 연대가 기능하지 못하는 사회가 바로 일탈, 무질서, 혼란, 고립 등을 의미하는 '아노미(anomie)' 상태가 되는 것이다.
 
봄나들이도 '사회적 거리두기'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2미터) 집중 캠페인이 벌어지는 가운데 29일 오후 서울 광진구 한강변 뚝섬유원지에서 많은 시민들이 봄나들이를 나와 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4월말까지 텐트 설치가 금지된 가운데, 돚자리에 앉은 시민들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의식한 듯 다른 돚자리와 간격을 일정거리 띄워 두고 있다.
▲ 봄나들이도 "사회적 거리두기"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2미터) 집중 캠페인이 벌어지는 가운데 29일 오후 서울 광진구 한강변 뚝섬유원지에서 많은 시민들이 봄나들이를 나와 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4월말까지 텐트 설치가 금지된 가운데, 돚자리에 앉은 시민들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의식한 듯 다른 돚자리와 간격을 일정거리 띄워 두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전염병은 각 사회를 구성하는 연대의 민낯을 드러낸다. 불안과 공포는 각자도생의 극단적인 개인주의를 불러올 위험이 크다. 전염병은 아노미를 불러낸다. 나 이외의 타인을 믿지 못하고, 나 이외의 타인의 고통에 눈감아버린다. 확진자가 다녀간 식당을 공유하고, 확진자가 사는 집을 기어이 찾아내고자 한다. 감염이 확산되는 국가에서 오는 사람들을 입국 차단하고, 감염이 확산되는 지역을 봉쇄한다.

우리가 서로 불신하고 배제하는 데 시간을 할애하는 동안,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 
주민등록번호가 없어서 마스크를 타지 못하는 이주 노동자와 난민, 
공공장소가 닫히고 봉사활동이 사라져 매일의 숙식을 걱정해야 하는 노숙인,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일용 노동자,
집단감염의 위험 속에서 매일을 살아야 하는 다닥다닥 붙은 쪽방촌 주민,
늘어나는 업무량에 죽음으로 내몰린 택배 노동자,
고된 노동과 불충분한 안전 장비로 매일 사투하는 의료진...

이들의 안전과 건강은 어느덧 관심 밖의 이야기가 된다.

1976년 푸코의 유명한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의 강의를 모은 책의 제목인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는 인종 차별을 일삼던 인종주의자들이 그들의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사용한 표현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사회처럼 차별과 배제의 사회가 되도록 놔두어서는 안 된다. 1m 혹은 2m의 물리적 거리를 유지하고도 우리는 '사회'를 보호할 수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이 시기 시대정신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를 보호하고 지켜내기 위한 우리의 작은 연대적 실천이 되어야 한다.

작게는 내 이웃, 도시, 지역, 더 나아가 영토 국가와 전 지구적 시민들과의 연대를 통해, 사회를 지키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나'가 아닌 '우리'라는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연대하지 않는 사회의 뒷감당은 나에게 돌아온다.
 
"초등학교 때 피구 시합에서, 날쌔게 피하기만 하다 결국 혼자 남으면 맞서서 공을 받아 안아야 하는 순간이 왔던 것처럼."
- 한강, <소년이 온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경희대학교 인문학연구원 HK+통합의료인문학 연구단 홈페이지에 2020년 4월 1일자로 올린 글입니다. (http://hkimh.khu.ac.kr/wordpress/?p=3723)


댓글3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경희대학교 HK+통합의료인문학 연구교수 사회학 박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