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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나를 붙잡은 말들'은 프리랜스 아나운서 임희정씨가 쓰는 '노동으로 나를 길러내신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딸아이를 키우고 있는 아는 언니와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근황과 코로나19에 대한 걱정을 한참 늘어놓던 중 갑자기 언니가 말했다.

"우리 지안이가 얼마 전에 집 앞 문구점에 혼자 심부름을 다녀왔잖아. 어휴. 첫 심부름이라 어찌나 걱정되던지 베란다에서 목 빠져라 쳐다봤다니까. 대견하기도 한데 너무너무 걱정되더라고."

언니는 스스로 겁이 많은 성격이라 아이에 대한 걱정도 남들보다 심했다. 아이가 첫 걸음마를 떼고 걷기 시작할 때 온종일 아이에게 눈을 떼지 못했고, 집 앞 공원 잔디밭에 나가도 아이가 뛰다 넘어지면 더 빨리 뛰어가 아이를 앉아줬다.

나는 그런 언니에게 괜찮다고, 스스로 잘 일어날 거라며 언니의 불안을 다독여 주곤 했다. 하긴 아직 아이가 없는 나는 부모의 어린 자식에 대한 노심초사를 다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언니가 아이를 좀 더 믿고 지켜봐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득 전화를 끊고 생각해 보니 그런 노심초사가 나에게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나에게는 그 대상이 아이가 아닌 '엄마'였다. 나는 아직도 일흔을 앞둔 엄마를 생각하면 애가 탄다.

어렸을 때부터 집안의 대소사를 책임지며 집안의 막내임에도 불구하고 장녀 역할에 더 충실하게 살아왔다. 한글을 잘 모르고, 배움이 짧아 아는 것이 적고, 삶의 반경이 좁아 경험이 부족한 엄마는 어린 나에게 '챙겨야 할 존재'였다.

각종 공과금을 챙기는 일과 은행 업무를 보는 일도 내 몫이었고, 어딘가 가야할 때는 길눈이 어두운 엄마 손을 잡고 내가 모시고 가야 했고, 심지어 밖에서는 자주 화장실을 찾는 엄마를 책임져야 했다. 항상 '엄마 혼자 못하니까'라는 생각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런 나의 모습에서 문득 아이에게 매번 전전긍긍하는 언니가 보였다.

지식을 뛰어넘는 삶의 나이테

그런데 다시 또 생각해 보니 내가 살아온 인생보다 두 배가 넘는 생을 엄마는 살아왔고, 그 시간 동안 내가 없었거나 아주 어려 엄마를 챙기지 못한 날들이 훨씬 길었다.

내가 엄마에게 무언가를 해 줄 때마다 엄마는 나 없이 어떻게 사냐며 핀잔을 주곤 했지만, 내가 직장 때문에 지방에 혼자 살 때도 그리고 결혼을 한 지금도 엄마는 나 없이도 잘살고 있다.

엄마가 혼자 못한다고 생각할 때는 내가 엄마를 일부러 챙길 때만이었다. 나는 가끔 엄마를 도와주고서는 부모를 살폈다 스스로 위로하고 그만큼 엄마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의 한 약국 앞에서 시민이 구입한 마스크를 손에 들고 있다. 주중에 공적 마스크를 구매하지 못한 사람들은 출생연도와 상관없이 주말에 살 수 있다.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의 한 약국 앞에서 시민이 구입한 마스크를 손에 들고 있다. 주중에 공적 마스크를 구매하지 못한 사람들은 출생연도와 상관없이 주말에 살 수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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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화요일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오늘 나 마스크 사는 날이어서 아까 약국 가서 줄 서서 마스크 두 개 사 왔어."
"오늘 엄마 번호 해당되는 거 어떻게 알았어?"
"약국 가서 물어봤지! 몇 년생이냐고 하드라? 52년생이라니까 2는 화요일이래. 오늘이라 냉큼 줄 서서 사 왔지? 두 개 주더라고."
 

나는 공적마스크 5부제가 뭔지 모르는 엄마가 걱정스러웠고 혼자 애태웠다. 어김없이 또 '내가' 마스크를 사서 엄마에게 가져다 줘야지 생각하고는 나 없이 마스크도 못살 엄마를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 오랜 세월 동안 모르는 만큼 묻고 도움을 구해 생의 많은 것들을 해결해 왔을 엄마의 노련함을 나는 왜 몰랐을까.

전화를 끊고 생각했다. 언니에게 아이를 좀 더 믿고 지켜봐주길 바랐던 마음은 무엇보다 내가 엄마를 향해 가져야 할 마음이라는 것을. 부모가 어린 자식의 능력을 믿어주어야 하듯, 다 커버린 자식도 늙은 부모의 연륜을 인정해야 한다. 그 삶의 나이테는 지식을 뛰어넘는 선명한 자국이다. 나도 경험해 보지 못한 긴 시간이 부모에겐 있다.

그러니 나는 그것을 인정하고 엄마에 대한 걱정을 덜어야 한다. 딸의 첫 심부름에 불안해했던 언니의 마음과 마스크 하나에도 엄마를 과소평가했던 나의 마음은 아이의 성장과 엄마의 능숙을 속단한 것이었다.

아이는 혼자 심부름을 해본 경험은 없지만 내가 잘 할 수 있다는 '의지'가 있고, 엄마는 공적마스크 5부제가 뭔지는 모르지만 직접 약국을 찾아 방법을 물어 살 수 있는 노련함이 있다. 언니도 나도 그 의지와 노련함을 인정해야 한다.

이제 자식인 나는 배움과 지식을 뛰어넘는 부모가 가진 긴 생의 숙련을 존중하며 노심초사하지 않을 것이다. 나이와 관계를 뛰어넘어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믿고 응원해 주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필자의 브런치(www.brunch.co.kr/hjl0520)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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