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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해 한시적 재택근무가 시작되었다. 지하철이 한산해졌고 점심시간마다 쏟아져 나오던 직장인 무리도 사라졌다. 400번 저어 만드는 달고나 커피를 만들거나 화상 회의를 위해 상의만 갖춰 입는, 우리의 편안하지만 이상한 일상이 시작되었다.

재택근무는 많은 변화를 가져왔지만 그중 가장 큰 것은 '일'에 대한 사고의 변화였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일은 오전 7시 기상을 시작으로 불편한 옷 안에 갇혀 칸막이 너머 상사의 동태를 살피는 것을 포괄한다. 모르는 건 물어보라고 해서 물어봤다가 '아직도 모르냐'는 꾸중을 듣는 것도, 한번 혼이 난 제안서를 그대로 제출했더니 '그래 이렇게 하란 말이야' 소리를 듣는 확률 없는 게임 또한 일의 포함이다.

마우스 대신 마이크를 잡거나 술보다 쓴 야근 커피를 마시는 것은 덤이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회사는 일만 잘해서는 '그럴 거면 혼자 일하지 왜 회사를 나오냐'는 말이 자연히 들려오는, '일터'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있다.

'회사 생활'이라는 이름처럼 회사는 -세대가 달라 말은 안 통하지만 간섭은 하고 싶어 하는 부모(과장), 내 방에선 내 편인 척하다가 밥상머리에선 결국 부모 편드는 형제(대리), 다 그럴 수 있다며 너그러운 척 방관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갑자기 나서서 판 깨는 조부모(부장)- 사이에서 잘 버티는 거다.

물론 수없이 많은 반박 논문과 실증에도 관료제도는 장점이 있고, 모든 일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고 싶었는데, 재택근무를 경험한 이상 그 생각을 지키기 어려워졌다. 다음과 같은 재택근무의 장점을 몸소 체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택근무의 세 가지 장점
  
 독일의 자유로운 재택근무
 재택근무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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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일의 속도다. 신기하게 같은 일도 재택근무를 할 때가 수 배 빠르다. 상사들의 자식 이야기, 주식 이야기하는 걸 듣는 대신 일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까. 생각해보면 딱히 재밌는 이야기도 아닌데 서로 위안 삼자고 탕비실 드나드는 시간이나 점심 메뉴 고민하는 시간, 쓸데없는 카톡으로 퇴근까지 때우는 시간이 줄어드니까. 게다가 각자 가장 편한 공간에서 가장 편한 상태로 일에만 전념하니 당연히 효율이 오를 수밖에 없다.

어떤 상사들은 그렇게 하면 기강이 해이해진다, 소속감이 떨어진다 지적하기도 하는데, 기강은 이미 퇴근한 지 오래고 소속감은 입사 자소서에만 있다는 걸 안다면 '재택근무'가 나쁜 거라고 얘기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 않아도 될 걸 규칙이라며 강요해 해야 될 걸 제대로 못하게 만드는 것이지, 재택근무가 아니다.

둘째는, 커뮤니케이션 속도다. 노트북 하나씩 갖고 다니는 현대사회에서 모여야 소통이 된다는 사고 자체가 구식이긴 하지만, 본격적 재택근무가 시행되자 그룹웨어 등을 활용한 실시간 소통으로 의사결정과정이 단순해지고 불필요한 감정 소모가 줄어들었다. 게다가 자신의 의견을 글로 적어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상대를 배려하는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도 장점이다.

셋째는, 출퇴근으로부터의 자유다. 직장인들이 직장을 싫어하는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한가지를 선택하라면 바로 '출퇴근'이다. 내릴 의사가 없었는데 알아서 내리게 되는 마법이 매일 일어나는 출퇴근이라는 걸 매일 하다 보면, 우리가 뭔가를 잘못하긴 했나 보다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회사에서 권장하는 '일과 가정의 양립'도 사실 직장에 어린이집을 짓는 게 아니라 집에 머물 시간과 집에 도착했을 때의 에너지를 보장하는 데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출퇴근하지 않으니 화장할 시간에 운동하는 게 가능해지고, 화장 지울 시간에 가족과 한 마디라도 더 나눌 시간이 생긴다. 이건 가히 '혁명'이라 부를 만하다.

재택근무에 대한 찬사를 늘여 놓으면 '기업들이 바보라 재택근무를 안 하겠냐'는 반박이 자연히 따라올 텐데, 나의 대답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이다. 기업이 이제까지 재택근무를 적극적으로 시행하지 않은 건 사실 그럴 만한 인프라가 갖춰져 있지 않았다는 것과 사람들의 '일'에 대한 인식 때문이다. 우리가 머릿속으로 그리는 직장인이란 셔츠를 입고 만 원 지하철에 몸을 싣고 수백 개의 창문이 호위하고 있는 네모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생각해봐라. 넥타이를 한 직장인보다 자율 복장을 하는 직장인이 많아지고 있다. '기업들이 바보라 정장 입히겠냐'는 반박은 없었을까? 그때도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는 살얼음만큼이나 얇은 근거로 인한 반발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는 변했다. 왜? 그게 옳은 방향이니까. 그게 더 쉬운 방향이고 더 많은 직원이 일을 잘할 수 있는 방향이니까. 지금은 머리를 모아야 회의고 종이로 뽑아야 제안서지만, 언젠가는 직장이 '직장 생활'에서 '일터'로 변화하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예기치 않게 주어진 지금의 재택근무 경험이 그 변화를 더 빠르게 가져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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